하늘이 머문 자리

by Ken

행주산성에 오르던 날, 하늘은 유난히 깊고 넓었습니다.

창가 너머로 비쳐 들어오던 햇살은 오래된 책장 위에 얹힌 먼지를 털어내듯, 마음의 묵은 그림자를 조금씩 걷어내고 있었습니다. 구름은 하얀 종잇조각처럼 흩어졌다 모였다 하며, 잠시도 머물지 못하는 시간의 얼굴을 보여주었습니다.


다리 위에 섰을 때, 노을은 하루의 마지막 인사를 건네듯 강물 위에 금빛 띠를 길게 드리웠습니다. 그 빛은 마치 우리 앞에 놓인 길을 비춰주는 등불 같았고, 그 길 위에서 함께 나눈 웃음소리와 눈빛은 노을보다도 더 찬란하게 번져갔습니다.


풍경은 늘 그 자리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풍경은 달랐습니다. 하늘이 특별했던 까닭은, 곁에 함께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며 같은 순간을 나누는 일, 그것이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은밀한 축복인지도 모릅니다.


돌아오는 길에 문득 깨달았습니다.
아름다운 하늘은 늘 머리 위에 있었지만, 그 하늘을 바라보게 하는 건 결국 사람이라는 것을. 좋은 사람과의 만남은 하늘을 더 푸르게 하고, 노을을 더 따뜻하게 물들입니다.

행주산성에서 만난 그 하루는 단순한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 빚어낸, 세상에서 가장 고운 하늘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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