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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들레는 민들레 Jul 09. 2024

이삿날 발가락이 골절되었다

병원에서 외출해서 새 집에 첫 발을 딛고 이삿짐을 정리했다

10시 40분 즈음 진료실에서 나왔다. 남편에게 전화로 치료과정을 알리고 의사가 허락했으니 2시에 외출을 다고 했다. 남편은 이왕에 이렇게 되었으니 자기가 이삿짐을 정리하겠다고 했다. 나는"으메. 내가 있어야제. 2시까지 병원 주차창으로 오소."라고 말했다. 큰 아이에게도 전화해서 상황을 알렸다. 도서관에 있던 큰아이는 일단 버스 타고 아파트 지하주차장으로 가서 냥냥이의 동태를 살피고, 집 앞 도서관에서 기말시험을 준비하겠다고 했다. 담당 교감선생님께 전화를 걸어 다치게 된 상황과 의사가 말한 치료과정을 말씀드렸다. 다음 주 개교기념일과 현충일을 제외한 3일은 학교보건 인턴 강사를 위촉하겠다고 하셨다. 나는 부주의한 행동으로 피해를 줘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다. 교감 선생님께서는 살다 보면 그럴 수도 있다고 일단은 치료에 신경 쓰고 상황에 변화가 생기면 다시 연락하라고 하셨다. 같이 근무하는 1,4, 5학년 담당 보건선생님께 전화해서 상황을 설명했다. 내가 근무하는 곳은 과대학교라 하루 평균 80명 이상의 학생을 의료적으로 처치해야 한다. 도저히 보건교사 혼자 근무 할 수 없는 곳이다. 이사 때문에 올해 처음으로 연가를 썼는데  이런 일이 생겼다. 나의 부주의 함으로  일주일 이상 병가를 쓰게 될 것이다.  같이 근무하는 보건 선생님에 대한 미안함이 죄책감이 되어 나를 휘감았다.  오후 5시부터 8시까지는 교육청에서 진행하는 글쓰기 연수  출장이 잡아져 있었다. 지금까지 피곤해도 퇴근 후에 결석 없이 잘 참석했었다. 마지막 연수라 강사분에게 싸인 받으려고 강사분이 저술한 책도 두권이나 샀는데 다 소용없게 되어 버렸다. 담당 연구사님께 상황을 알리고 연수에 불참하게 되어 미안하다고  문자를 보냈다.    

 

진료실 간호사가 병동 간호사실에 가라고 했다. 병동 간호사는 목발을 내 키에 맞게 조절해 주었다. 간호사는 이제 깡충깡충 뛰지 말고 목발을 짚으라고 했다. 간호사는 발바닥부터 정강이 중간까지 부목을 댄 후 붕대로 감아주고 정형외과 깁스 신발 초록색을 줬다. 엉덩이에는 주사 두 대를 맞고 팔에서는 피를 10cc 정도 뽑았다. 주사는 맞기 전에는 아플까 봐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막상 맞으면 생각했던 것보다 덜 아프다. 예전에도 그랬고 오늘도 그랬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나는 주사를 맞을 때마다 항상 주사에 속아 넘어가는 것 같아 기분이 영판 별로다. 간호사는 입원 안내문을 주고 입원환자가 지켜야 할 사항과 수술 전 검사에 대해 알려주었다. 간호사가 소변 용기를 주면서 용기의 2/3만큼 소변을 받아오라고 했다. 나는 그의 지시대로 작은 아이랑 화장실에 가서 소변 용기에 소변을 담아 간호사에게 주었다. 간호사는 305호 병실이 오후 늦게 자리가 빈다며 일단은 남녀 공동병실인 306호로 가라고 했다. 간호사는 2시에 간호사실 내려와서 외출증 끊고 8시까지 병원으로 돌아와야 한다고 알려주었다.   

  

작은 아이랑 306호 병실에 가서 내  이름표가 붙여진 침상에 앉았다. 간호사는 305호에 환자복을 두겠다고 일단은 입고 온 옷을 입고 있으라고 해서 시키는 대로 했다. 병실의 맨 앞 병상에는 30대 중반으로 보이는 포니테일 머리를 한 30대 초반의 스마트해 보이는 여성이 있었다. 그녀는 핸드폰으로 누군가에게 업무지시를 하고 있었다. 말투로 봐서는 직장 내에서 직위가 좀 높은 것 같았다. 상황이 어느 정도 정리되니 배도 고프고 따뜻한 커피도 생각났다. 작은 아이에게 커피와 김밥을 사 오라고 하고 침대에 누웠다. 30대 중반의 여성이 전화를 끊더니 나에게 다친 경위를 물었다. 또 한 번 오늘 아침 상황을 설명했다. 나는 예의가 있는 사람이라 그분에게 입원 경위를 물었다. 그분은 몇 달 전부터 이유 없이 발목이 아파 MRI를 찍었고 오늘 오후에 결과보고 내일 퇴원한다고 했다. 내일이라는 말이 유난히 내 귀에 크게 들렸다. 작은 아이가 사 온 김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침상에 좀 누워있다 보니 2시가 되었다.  

   

간호사실에 가서 외출증을 끊었다. 오른쪽 발에 부목을 하고 초록색 정형외과 신발을 신고 목발을 짚으며 주차장에 갔다. 남편은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남편이 날 짠하게 바라봤다. 나에게 아침에 화낸 일이 미안했나보다.  뒷 자석에 냥냥이가 위축된 모습으로 이동장에 누워있었다. 조그만 녀석이 이사 간다고 고생하는 것 같아 왠지 짠했다. 사람이라면 상황이 이러하다고 설명해 줄 텐데 동물이다 보니 말이 안 통한다. 이런 경우 너무 답답했다. 냥냥이는 사람 같은데 사람이 아닌 특징이 있다. 차를 타고 우리는 새집으로 향했다. 새집은 전에 살던 아파트와 같은 단지다. 남편은 이사 가는 집의 전주인이 잔금을 다 치른 11시 30분까지 키를 주지 않았다고 했다. 청소업체가 11시에 왔는데 전 주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아 30분이나 밖에서 기다렸다며 정말 지독하다고 했다. 짐을 넣겠다는 것도 아니고 잔금 치를 때까지 청소만 하겠다는데 내 상식에서도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되지 않는 걸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내 머리만 아프다. 나는 남편에게 “빨간색이 빨간색인 것처럼 그분은 원래 그런 사람인가 보네. 새집 들어가는 가는 마당에 기분 좋게 있는 그대로 의미 부여하지 말고 빨간색은 빨간색으로 받아들이세.”라고 말했다. 남편은 2004호 전 집에서 이삿짐센터가 피아노를 운반하다 벽지가 찢어져 주인이 배상을 요구했다고 했다, 전 집 전세 계약할 때 반려묘를 키우는 조건으로 이사 갈 때  청소를 해주기로 했기에 전세금에서 백만 원을 제하고 받았단다. 남편은 그간 그 집에서 무탈하게 잘 살았으니 줄 돈은 기분 좋게 주자고 했다.


새집 지하주차장에 도착했다. 작은 아이는 새집은 청소 중이고 냥냥이만 혼자 있으면 불쌍하다고 냥냥이랑 자동차에 있겠다고 했다. 남편과 나만 새집으로 향했다. 청소업체 분들이 분주하게 청소를 하고 계셨다. 이 집은 사기 전에 한 번 와서 대강 봤었기에 구조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전에 살던 집과 타입이 달라졌기에 집 구조를 얼른 살펴보고 물건 배치를 그 짧은 시간에 대강 구상했다. 역시 나의 순발력은 대단하다. 전집보다는 훨씬 구조가 맘에 들었다. 나는 남편에게 “이 집에서 우리 진짜 잘 먹고 잘 살아보세.”라고 작게 말했다. 남편이 미소로 답했다.     


부동산 폭등기에 이 집은 분양가에서 이억 가까이 올랐다. 이 집을 사려고  대출을 받았다. 대출금을 갚아야 하는 부담감은 생겼지만 집 없는 서러움은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니 속이 다 시원했다. 누구는 나에게 꼭지에 집을 샀다고 했지만 퇴직 전 감당 가능한 대출이었기에 그냥 저질렀다.  우리 부부는 빚을 무서워했다. 그런데 지난 부동산 폭등기에 알았다. 집을 사지 않는 것이 더 무서운 것이라는 걸.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출이라는 금융 제도를 이용했다. 나는 이제 좋은 말로는 은행의 고객 또 다른 말로는 은행의 봉이 되었다. 신이 있다면 제발 집 가지고 장난 좀 그만하면 좋겠다.

  

청소업체를 소개해 준 사촌 오빠가 업체 사장님이 나의 중학교 2년 선배라고 했다. 업체 사장님께 인사드리고 혹시 우리 언니를 아냐고 물었다. 사장님은 언니가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하고 이쁘고 착했다며 선생님 됐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언니 안부를 물어 서울에서 잘 산다고 알려주었다. 사장님은 청소사업을 시작한 지 8년이 되었다고 했다. 커트 머리에 검은색 작업복을 입고 날렵하게 창문을 닦는 모습이  멋져 보였다. 웃면서 동창 동생 집이니 더 깨끗이 해주겠다고 했다. 원래 예약 시간인 3시간이 이미 끝났는데 돈 안 받고 조금 더 해주신다고 했다. 사업은 잘 되냐고 물었더니 그럭저럭 잘 된다고 하셨다. 청소가 끝나고 평당 만오천 원인데 후배 집이니 만삼천 원에 해주겠다고 했다. 나는 그럼 내 마음이 불편하다고 말하고 이미 준비한 오십만 원을 드렸다. 이사 갈 때마다 돈 아까워 나랑 남편이랑 같이 항상 청소했는데 이번에는 전주인이 잔금 치를 때까지 열쇠는 주지 않는 바람에 이렇게 청소업체를 이용하게 되었다.      


청소가 막바지에 이삿짐이 들어왔다. 결혼하고 지금까지 남편과 나는 침대를 사용하지 않았다. 나는 바닥에 이불 깔고 자면 되는데 몇백 주고 침대를 사는 일을 사치라생각했었다. 최근 작은 아이 방 침대에서 잘 일이 몇 번 있었다. 침대가 방바닥 보다 편했다. 남편에게 말했더니 이번에 이사 가면서 침대를 사자고 했다. 나는 가격이 부담스러워 좀 더 생각해보자고 했다. 내가 망설이는 동안  남편은 침대의 종류와 가격을 알아보고, 날 설득하기 시작했다. "백화점 카드 사용하면 많이 할인도 해 주고 무이자야.  우리 이 정도는 벌잖아. 그냥 사자.  이 바보야. 잠을 잘 자야지 일을 잘하고 빚도 갚지?"라고 말했다. 그래서 결국 큰 결심하고 침대를 사게 된 것이다.  왜 이렇게  날 위해 돈을 못 쓰는 걸까? 분명 병이다.  중에서도 큰병이다. 

   

이삿짐센터는  큰집 큰오빠가 운영하는 곳이다. 여기에 큰집 둘째 오빠가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나는 이 오빠랑 연락을 주고받는 사이다. 작은 오빠를 포함해 4명의 직원이 사다리차로 짐을 옮겼다. 오랜만에 둘째 오빠를 보니 반가웠다.  둘째 오빠에게 “점심 사줄라고 했는데 미안하네.”라고 말했다. “삐삐야. 너희 신랑이 직원들까지 다 사줘서 잘 먹었다. 커피까지 사주더라. 발가락은 괜찮냐?”라고 물었다. 나는 “괜찮네. 시골에 말하지 마소. 어른들 걱정한 게.”라고 했다.  나는 의자에 앉아서 물건을 놓아야 하는 위치를 말로 설명하거나 목발을 짚고 알려주었다.  주방용품 정리는 흰머리가 군데군데 섞여 있고 살찔 틈이 없는 빠른 움직임과 깔끔한 용모를 갖춘 육십 대 후반의 여성분이  했다. 그분은 “이모, 내가 작은 삼춘 동생이다고 해서 냉장고 깨끗이 청소했네. 새 냉장고 버렸어.”라고 하셨다. 실은 내가 청소하긴 했는데 대충대충 했기에 더러워 보였을 수 있다. 나는 "감사합니다"라고 멋쩍은 웃음을 지었다. 그분의 정리솜씨가 보통이 아니었다. 몇 년 했냐고 물었더니 18년이라고 하셨다. 오월에 두 번 밖에 쉬지 못했다며  일이 요즘 너무 많다고 했다. 그분은 냉장고 모델명 적어서 전자제품 서비스 센터에 가면 냉장고 안에 깨지고 없는 선반들과 채소, 과일함을 살 수 있다고 알려주었다. 냉장고 선반이 깨진 지 한참 되었다. 냉장고도 하나 사긴 해야 하는데 비싸기도 하고 아직 성능도 쓸만하고 버리면 아까워서 데리고 왔다. 나는 물건을 잘 사지도 않지만 버리지 못한다. 이것도 내가 가지고 있는 고쳐야 할   중에 하나다.   


새집은 드레스롬 넓어서 그곳에 큰아이의 피아노와 옷장을 넣을 수 있었다. 이렇게 쉬운 일인데 아침에 큰 아이에게 왜 그렇게 쌀쌀맞았나 싶어서 또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맨날 후회하고 또 후회하고 진짜 나는 왜 그런지 모르겠다. 이삿짐이 80% 정리되어 갈 때 즈음 작은 아이가 냥냥이가 진정되었다고 새집보고 싶다며 언니랑 왔다. 아이들이 활짝 웃으며 이삿짐센터 직원들에게 인사했다.  큰아이는 옷장과 피아노가 사라지니 방이 넓어 보인다고 좋아했다. 작은아이는 유아 때 사용했던 침대, 오늘 아침에 내 발가락을 부러뜨린 침대 대신 새 침대가 왔다며 만족해했다. 아이들이 전집보다 마음에 든다며 좋아하니 나도 좋았고, 그 모습이 귀엽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들어오면서 나와 남편을 주려고 내가 좋아하는 쭈쭈바와 남편이 좋아하는 하드 하나를 사 왔다. 아이들에게 업체 직원분들 것도 사 오라고 한 말을 사촌오빠가 듣고는 아니 됐다고 자신은 담배 한 개비면 된다고 했다. 애들에게 아이스크림 사 와서 고맙다고 먼저 말했어야 했는데 또 그 말을 놓친 것이 생각나 또 미안했다. 아이들에게 고맙다고 늦은 인사를 했다.     


남편은 새집에 발을 디딘 후 이삿짐센터에서 어련히 알아서 정리해 줄 물건들을  함께 정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남편이 아침 일찍 일어나 마누라 없이 이삿짐 챙기고 잔금 치르느라 고생도 했고 오늘 밤 야간 근무였기에 좀 쉬기를 바랬다. 이삿짐센터 직원들의 눈치가 보였지만 내 남편도 소중하다는 이기적인 마음으로 뻔뻔스럽게 “아따, 오빠가 다 알아서 해 준 게 당신은 좀 쉬소.”라고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다섯 시 즈음 이삿짐 정리가 거의 마무리되었다. 작은 오빠에게 이사비용 백 오십만 원을 현금으로 주었다. 그 돈은 어차피 회사에 들어갈 돈이다. 나는 오빠가 이삿짐 정리를 끝내고 나가려고 할 때  잠깐 사람들 없는 곳으로 불러 “오빠! 많이 안 된 게 저녁이라도 사 먹으소.”라고 말하며 주머니에 십만 원을 살짝 넣어줬다.

     

병원에서 외출해서 새집에 첫 발을 딛다.

오늘 같은 날 쉬면 좋을 텐데 포돌이인 남편은 오늘도 야근이라며  6시에 출근을 했다. 융통성이라고는 일도 없는 조직이다. 무엇을 탓하랴. 시간을 돈과 바꾸고  있는  능력 없는 우리의 신세를 탓해야지.


남편이 출근하고 작은 아이가 좋은 생각이 났다며 자기 방에서 의자를 가져와 의자에 바퀴가 달렸으니 휠체어처럼 타고 다니라고 했다. 나는 아이말처럼 의자를 타고 다니며 아이들에게 이삿짐 정리를 시켰다. 아이들은 드레스룸부터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말 입지 않는 옷들이 많기도 했다. 버린다고 버렸는데 아직도 버리지 못한 옷들을 보며 욕망 덩어리인 나 자신을 바라본다.  몇 년 전부터 나는 거의 옷을 사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입지 않는 옷들이 너무 많다. 다시 한번 앞으로 옷을 사지 않기로 다짐한다.


이사를 왔는지 모르는 냥냥이는 포복자세로 계태세. 숨을 만한  곳을  찾아  집안을  돌아다녔다. 냥냥이에게 이사 온 거라고, 여기가 새집이라고, 겁내지  말라고 했지만 냥냥이는 알아듣지 못했다. 냥냥이를 지키기 위한 무모한 내 사랑을 저 녀석이 알기나 할까 싶었다. 다시 한번 오늘 아침 일이 후회되었다. 오늘 벌써 몇 번째 후회인지, 앞으로 몇 번을 더 후회해야 멈출 수 있을까?


7시 30분. 큰아이가 이사기념으로 치킨을 시켜 저녁을 대신했다. 발가락 사고 때문인지 맛이 예전 같지 않아 두어 조각 먹다가 말았다.


 8시 즈음 입원 안내문을 보며 입원에 필요한 물건들을 준비했다. 수건 석장, 칫솔, 치약, 속옷, 화장품, 읽을 책을 가방에 넣었다. 9시까지 병원에 복귀해야 했기에 8시 30분에 카카오택시를 부르고 작은 아이랑 집을 나섰다. 입원하면 생수가 필요할 것 같아 작은 아이에게 생수를 사 오라고 하고 나는 먼저 아파트 정문으로 갔다. 택시가 대기 중이었다. 운전기사에게 아이가 물을 사러 갔으니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부탁했다. 작은 아이가 도착하고 우리는  택시를 타고 어둠  속의 병원으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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