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가락 골절 환자가 목발로 휠체어로 본 세상
목발과 휠체어 사용해 보니 안 보이던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발가락이 골절되어 한쪽 다리만 사용해야 하는 환자에게 가장 필요한 물건을 단연코 휠체어와 목발이다. 왜냐하면 이동의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목발과 휠체어가 없다면 나는 움직이지도 못하고 침상에만 있었을 것이다. 그럼 대소변, 양치, 세수도 모두 침상에서 해결해야 했을 것이고 타인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에게 타인의 도움을 받는 것은 권리이기는 하나 생각만으로도 끔찍하다. 목발과 휠체어 덕분에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었다. 누가 발명했는지 모르지만 혹시 만나게 된다면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평생 나와는 별개라고 여겼던 휠체어를 내가 타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내가 입원한 병실에는 척추질환 3명. 발목골절 1명, 그리고 나, 이렇게 다섯 명이 있었다. 이 중 휠체어가 필요한 이는 지인 예식장 갔다 오는 길에 넘어져 발목에 금이 간 뽀글이 할머니와 나였다.
입원하고 2~3일 목발을 짚느라 과도한 힘을 사용해 겨드랑이와 손바닥이 아파오기 시작했다, 그래도 목발이 있었기에 목발에 의지하여 이곳저곳 돌아다녔다. 그러나 링거를 맞을 땐 링거 때문에 꼼짝없이 침대에 잡혀있을 수밖에 없었다. 휠체어는 주로 뽀글이 할머니께서 타고 다녔다. 나는 링거 맞으며 화장실에 가야 할 때만 기죽은 목소리로 "할머니, 저 휠체어 좀 타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그러면 뽀글이 할머니께서는 "그래. 타. 병실 건 게 필요하면 나한테 물어보지 말고 타"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나보다 어르신에게 휠체어가 더 필요할 거라고 생각되기도 하고, 병실에서는 제일 신참이었기에 어떤 말과 행동을 하는데 항상 조심스러웠다. 화요일에 뽀글이 할머니께서 발목에 금이간지 3주 만에 퇴원하셨다. 할머니께서 퇴원하시고 허리가 아픈 분이 입원하셨기에 휠체어는 오로지 내 차지가 되었다.
링거가 없는 상태에서 화장실과 물리치료실 갈 때만 목발을 사용했다. 휠체어는 작은 아이가 병원에 있을 때만 썼다. 병원 안은 문턱이 없고 바닥이 수평이었기에 휠체어를 타고 움직이기에 매우 적합했다. 바깥바람과 내리쬐는 햇빛이 그리울 때는 휠체어에 탄 나를 작은 아이에게 맡기고 병원 주차장과 병원 앞의 50m의 거리를 왔다 갔다 했다. 작은 아이가 세게 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인도에서는 휠체어가 흔들리면서 내 몸도 경운기 탄 것처럼 흔들거렸다. 휠체어가 흔들거려 무섭다고 말했더니 작은 아이가 괜찮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말은 나를 전혀 진정시키지는 못했다. 휠체어에 타니 인도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인도의 시멘트로 된 부분 곳곳에 홈이 있었고 보도블록들은 틈틈이 볼록 튀어나와 있었다. 상가 입구는 대부분 턱이 존재했다. 휠체어를 타기 전에 병원 주변 거리를 수천번 걸었는다. 그때는 안 보였던 인도나 가게 입구의 사나움이 그제서야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봐도 보지 못했던 세상을 보니 흥분되기보다는 부끄러웠다.
한 번은 커피가 너무 고파 혼자서 목발을 짚고 커피숍에 가기로 맘먹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목발을 짚고 문턱을 뛰어넘은 후 왼쪽 다리에 기대어 몸으로 카페의 여닫이 문을 힘들게 여는데까지 성공했다. 카오스크에 서 주문하지 않고 아르바이트생에게 가서 직접 주문했다. "커피 한 잔 주세요. 제가 다리가 이래서 그러는데 문 앞 테이블까지 커피를 가져다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다. 아르바이트생이 순간 인상을 찌푸리고 펴더니 툭명스러운 목소리로 "네. 그런데 좀 많이 기다리셔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네. 많이 늦어도 괜찮습니다."라고 공손히 말했다. 커피도 혼자 들고 가지 못하는 주제에 커피 마시러 가서 여러 사람 불편하게 하는 존재 같아 금세 나는 주눅이 들었다. 아르바이트생 입장에서는 바쁜데 오천 원짜리 커피주문하면서 가져다주라고 하니 어이없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내 마음을 아는지 카페 가기 전에 '딸깍, 딸깍 ' 명쾌한 소리를 냈던 목발이 무뚝뚝한 둔탁음을 냈다. 아르바이트생이 테이블에 커피를 가져다주었다. 원래는 한 시간 정도 나 혼자 병원 밖에서 음악 들으며 글을 쓰려고 했었다. 그런데 환자복 입고 커피 마시는 걸 다른 사람들이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꿀꺽, 꿀꺽 물 마시듯 커피를 마시고 컵 고리를 잡고 목발을 짚어 컵을 배식구에 갔다 놓았다. 속으로 이제 환자복 입고 이 다리로는 이 커피숍에 다시는 가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장애인들이 많은데 밖에 장애인들이 안 보이는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았다. 본인이 장애를 입고 싶어서 입은 것도 아니고,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밖에 나오면 불편하고 주변의 시선도 신경 쓰여 그들이 안 보이는 것이리라.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이동의 즐거움은 누려야 하는 건 당연한데 내가 비장애인이라고 그들의 이동의 즐거움을 모른척하고는 있지 않은지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경험하지 않고 모른다면 이미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의 말을 들어줄 수 있는 귀가 있는 사회면 좋겠다. 발가락을 다쳐서 한쪽발을 사용하지 못해 휠체어를 타고 목발을 짚어보니 그간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내가 좀 더 현명한 사람이었다면 경험하지 않고도 알았을 것이다. 무식한 나. 바보 같은 나,부끄러운 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