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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리 Oct 10. 2019

기억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겁이 많은 나

나는 겁이 많은 편이다.

가족들 모두 겁이 없는데 비해 어린 시절부터 난 유난히 겁이 많은 아이였다. 


그중에서도 어두운 곳에 혼자 있는 건 나에게 있어 가장 큰 공포 중 하나였다.


별것도 아닌 작은 소리에도 깜짝 놀라기 일쑤였고 창문을 통해 들어온 이름 모를 벌레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할 때에는 산속에서 곰이라도 만난 것처럼 소리를 지르며 도망 다니곤 했다. 


가족들이 외출하고 집에 혼자라도 있게 되는 날엔 텔레비전 볼륨을 높이고 거실과 모든 방에 불을 환하게 밝히고 나서도 언제쯤 가족들이 돌아올까 초조함에 벽에 걸린 시계를 보고 또 보곤 했었다.


한 번은 새벽에 목이 말라 주방으로 향했다가 거실 커다란 통유리창에 비치는 내 모습을 보고도 까무러치게 놀란 적이 있다. 내 짧고 높은 비명 소리에 부모님께서 놀라 거실로 나오셨다가 서로가 민망해 각자 방으로 흩어졌던 그 날의 기억.


여름날 휴일 가족들이 모여 무서운 내용의 드라마나 영화를 보기라도 하는 날엔 난 항상 혼자 눈을 반쯤 게슴츠레 뜨고 이건 본 것도 아니 안 본 것도 아니라는 자세로 이불을 둘러쓰고 얼굴만 빼꼼 내놓은 채로 끝나는 시간까지 화면 한번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렇게 한 시간에서 두 시간 가까이 공포영화나 드라마가 끝나고 나면 게슴츠레 뜬 눈에 경련까지 일 정도였다.


영화 보는 것을 너무 좋아하지만 내게 있어 공포영화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높은 장벽과도 같았다. 공포영화를 보고 나면 짧게는 삼일에서 길게는 일주일까지 제대로 잠조차 이루지 못했다.


대학 신입생 시절 두 시간 정도의 공강 시간이 있었던 어느 날. 친구들과 함께 가까운 영화관으로 향했다. 


그런데 하필 친구들이 고른 영화가 한국 공포물이었다. 화장실로 향하는 벽면에 공포영화의 포스터가 떡하니 자리 잡고 있었는데 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는 그 포스터에 담긴 주인공과 눈 하나 마주칠 수가 없었다. 


포스터가 살아있는 것도 아니고 만들어낸 가상 스토리라는 것도 알고 있지만 어쩐지 서늘해지는 기분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보고 싶었던 영화라며 기대에 잔뜩 부풀어 있는 친구들을 두고 "난 너무 무서워서 못 볼 것 같아." 하기에는 그 시절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그렇다고 다음 수업이 남아 있는데 핑계를 대고 빠져나와 집으로 돌아갈 수도 없는 일이었다.


그렇게 해서 들어간 영화관 안. 평일 낮 시간대라 사람들이 그리 많지도 않아 화면 가운데 중앙 좌석에 우리는 나란히 자리했다.


두 시간 남짓한 그 시간 동안 내가 기억나는 건 장면이 아닌 소리가 전부였다. 비명소리, 무언가 달려오는 소리, 시끄럽고 으스스한 배경음악과 귀에 속삭이는 낮고 높은 찢어질 듯한 소리들. 


친구들은 나 역시 영화에 몰입 중인 줄 알았겠지만 난 사실 끝날 때까지 이건 본 것도 아니요 안 본 것도 아닌 게슴츠레 권법을 사용 중이었다.


그날 밤 두 시간 동안의 그 소리만으로 난 가위에 눌렸었다. 


돌이켜 생각해보니 내가 이렇게 겁이 많은 이유, 특히 어두운 곳을 극도로 무서워하는 이유는 일곱 살 때의 잊을 수 없는 기억 때문이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아버지께서 사업에 크게 실패하신 후 우리 가족은 작은 단칸방을 전전하며 힘든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그 시절 사업 실패의 후유증이란 만만치가 않았다.


내가 일곱 살이 되던 해, 네 식구가 겨우 몸을 눕힐 수 있던 그 집. 


이층으로 된 그 집엔 오래되어 낡은 빨간색 자전거를 매일 끌고 다니던 집주인 할아버지가 있었다. 


그런데 할아버지에겐 항상 입으로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다니는 습관이 있었다. 마치 피터팬에 등장하는 후크선장의 시계를 차고 있던 팔을 먹어버린 시계 악어처럼. 


시계 악어처럼 째깍째깍 소리를 내는 건 아니었지만 집주인 할아버지가 다니던 곳엔 늘 바람소리도 아닌 쇳소리도 아닌 끼익 거리는 이상한 소리가 들렸었다.



집주인 할아버지가 월세를 받으러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멀리서부터 끼익 하는 그 소리가 들렸었다. 그 시절의 난 할아버지를 끽끽 할아버지라 불렀다.


엄마와 나 단둘이 있던 어느 날. 저녁 준비로 바쁜 엄마를 돕겠다며 혼자 목욕을 하러 사람 한 명 들어서기도 힘들 만큼의 작은 욕실로 들어갔었다. 


일곱 살이 그렇듯 서투르고 어설프게 열심히 한참 씻고 있던 그때 갑자기 정전이 되었는지 욕실 안 불이 꺼지고 말았다. 



갑자기 불이 꺼지자 일순간 암흑천지가 된 욕실은 어둠 그 자체였고 발 밑 어딘가에 있었을 세숫대야조차도 보이지 않았다. 


몸에 비누칠을 하고 있던 상태라 나갈 수도 없고 몸을 씻자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그냥 그렇게 자리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데 잠시 후 밖에서 낯익고도 어쩐지 싫은 그 끽끽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이어 끽끽 할아버지와 엄마의 싸우는 듯한 목소리. 정확히 말하자면 고함에 가까운 고성을 지르던 끽끽 할아버지의 목소리와 "죄송하다"를 반복하던 엄마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어린 나이였지만 그 정도 대화 내용은 누구라도 알 수 있었을 것. 어려운 형편에 두 달 밀린 월세를 받지 못한 끽끽 할아버지가 말도 없이 전기 차단기를 내려버린 것이었다.


불이 꺼진 이유는 정전이 아닌 밀린 월세 때문이었다.


비누가 묻은 채 욕실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어린 내 눈에선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캄캄한 어둠 속 끽끽 할아버지가 내지르는 카랑카랑한 목소리에 엄마를 부르며 목놓아 한참을 울었다.


일곱 살이란 그날의 기억을 잊어버리기에 그리 적은 나이가 아니었나 보다.


많은 시간과 오랜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날의 기억은 내 머릿속, 가슴속 깊숙한 곳에 또렷하게 남아있다. 


어른이 된 지금도 어둠을 무서워하는 난 어쩌면 아직도 일곱 살 그때의 내가 아닐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어느 시절의 아프고 시리고 씁쓸했던 기억이 때로는 누군가에게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지나고 나면 그저 태연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추억이 되기도 한다는 사실.


지독하게 지워버리고 싶은 기억도 추억이라 말할 수 있을까 싶지만 그 기억 역시도 내 인생의 한 조각이다.


가슴 깊숙한 곳 그 날의 기억을 간직한 채 여전히 혼자 있는 것도 어두운 곳도 싫어하는 나로 살아가고 있지만 그럼에도 난 때론 웃으며 때론 울기도 하며 오늘 하루를 그렇게 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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