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잘리 Oct 24. 2019

싱글이 죄송할 일인가요?

정해진대로만 사는 게 맞는 건 아니니까요.


직장 연수도 약속도 없던 모처럼만의 휴일.

미뤄두었던 머리를 하러 미용실로 나섰다. 얼마 전 동네에 새로운 미용실이 오픈을 해 한번 가 볼까? 생각하고 있던 차 미용실 문에 적힌 메모를 보니 백 프로 예약제라 되어 있어 며칠 전 미리 전화로 예약을 해 두었다.



예약한 시간에 맞춰 안으로 들어서자 오픈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깨끗하고 심플하게 인테리어 된 실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예약제라 손님은 나밖에 없어서 바로 머리손질을 시작했고 삼십대라는 원장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다른 친구들에 비해 일찍 결혼을 했다고 서른이 되기도 전 결혼을 한 탓에 학교 졸업하고 곧바로 미용실에 취직해 여행다운 여행 한번 가보지 못했고 일해서 돈을 모아 개인 미용실까지 오픈하게 되면서 적어두었던 버킷리스트는 많았는데 해보지도 못 결혼한 게 아쉽다며 자신의 결혼 이야기를 천천히 털어놓았다.


한참 이야기가 오고 간 후 원장이 내게 "남편 분하고는 언제 만나셨어요?"물었다.

"저 결혼했다고 한 적 없는데요?"

"아, 죄송해요 아까 말씀하실 때 저희 오빠도 이러셔서..."


내가 말한 건 친오빠를 말한 거였는데 보통 사람들이 말할 때 오빠라고 하지 우리 친오빠가 하지는 않는데.

웃으며 "저 싱글이에요."를 말하는 내게 뭔가 큰 실수라도 한 것처럼 원장은 두 번이나 "죄송해요."만 반복했다. 그리 미안할 일도 아닌데 앉아있는 내가 괜스레 무색해질 만큼.


난 모태솔로도 비혼 주의자도 아닌 그저 싱글일 뿐이다. 요즘 학교를 졸업해 경제적으로 자립할 나이가 되었는데도 부모 곁에 머물며 경제적으로 의지하는 젊은이들을 일컬어 캥거루족이라 한다는데 부모님께 넉넉한 용돈은 드리지 못해도 조금의 내 밥벌이는 하고 있으니 굳이 따지자면 캥거루족보다는 그냥 결혼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싱글녀가 맞겠다.


10대에는 입시, 20대에는 취업, 30대에는 결혼, 나이에 따라 해야 할 일이 딱 정해진 것도 아닌데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준과 달리 그 나이 때에 맞지 않게 조금이라도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면 기차가 탈선이라도 해 큰일이라도 난 것처럼 당사자인 나보다 더 걱정을 하며 유난이다. 아직도 어쩔 수 없는 우리 사회의 현실인가 싶기도 하다.


명절이 되어 할머니 댁에 내려가면 30대를 훌쩍 넘긴 싱글녀의 고달픔은 극에 이르게 된다.

"아직 시집도 안 가고 어쩌려고 그랴?" "여자는 혼자 못 살아, 나이 들수록 남자가 있어야지." "시집 언제 가서 얘는 또 언제 낳을라고 그러는 거여?" 동네 어른들이 모이실 때마다 나를 향한 관심사는 오직 남자와 결혼뿐이었다.



20대엔 취직했어? 월급은 많이 받고? 돈은 꾸준히 모으고 있지? 를 궁금해하던 사람들이 30대가 넘어서면서부터는 오로지 결혼과 아이 이야기뿐이니 그나마 요즘은 명절에 부모님께서만 내려가시는 에 동네 어른들의 관심거리로 부터는 조금 멀어졌지만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면서 만나는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게 현실 아닌 현실이다.


언젠가 두 자녀를 키우며 워킹맘으로 일하는 친한 언니를 만나 커피숍에서 이야기를 나누다 "넌 결혼할 거면 늦게 해라, 해보고 싶은 일도 다 해보고 아니 뭐 굳이 능력 있음 안 해도 되는 거고 요즘 백세 시대라는데 마흔에만 결혼한다 해도 한 사람하고 60년을 살아야는데 그렇게 생각하니까 나도 참 대단하다."며 웃던 언니 모습이 떠오른다.


결혼하지 않고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사람들이 늘어서 문제고 그로 인해 생긴 저출산이 문제인 시대, 사랑의 종착역이 결혼이고 결혼의 완성이 출산이라는 인식은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그래도 결혼과 출산은 나이에 따른 의무가 아닌 개인 자유의 선택이라는 것, 싱글 라이프를 즐기며 사는 것도 그 사람의 선택이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하는 게 아닐까...


솔직히 말해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이들이 외롭지 않다고 한다면 거짓말일 것이다. 나 역시도 햇살이 비치고 선선한 바람이 부는 그런 날에 문득, 정신없이 출퇴근하는 길에 문득, 차를 타고 가다가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을 보면서도 문득 이유 없이 외로워지는 날이 있다.


슈퍼맨이 돌아왔다는 프로그램에 나오는 사랑스럽고 귀여운 아이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 너무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운 건 딱 거기까지.


결혼을 한다고 해서 아이들이 있다고 해서 외롭지 않은 것도 아니고 인생은 누구나 외롭고 그건 단지 곁에 누가 있고 없고의 문제는 아니라 생각한다.


나에게 명절 때마다 그렇게 결혼 안 하면 큰일 나는 것처럼 말하시던 어르신들 대부분이 마루 끝에 걸터앉아 "자식새끼들 많으면 뭐혀, 크면 다 나가 불고 혼자 이래 살다가 나 혼자 가는 거재." 탄식 뒤섞인 한숨과 함께 내뱉으시는 말들. 그런 한숨 섞인 말을 듣고 있자면 품 안에 자식이라는 말이 괜히 생긴 말은 아닌 듯하다.


혼족, 혼밥, 혼술을 즐기는 것보다 어쩌면 함께 어울리는 삶이 더 따뜻하고 좋을 수야 있겠지만 싱글라이프를 즐기는 이들에게 결혼과 출산이라는 것은 끝내지 못한 숙제가 아닌 자신이 원해서 스스로 선택한 길이라는 것.  


결혼과 출산이 아닌 정해진 생각과 조금 다른 개인의 삶을 선택했지만 싱글서 즐거움을 느끼며 자유를 느끼며 소소한 행복을 느끼며 살아간다면 그 역시 나쁘지 않은 인생. 누구의 기준과 판단에 의해 좌우될 수 없는 오롯이 내가 선택한 나의 삶일 뿐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기억도 지나고 나면 추억이 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