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로잘리 Dec 03. 2019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라는 생각

원치 않는 배려 어쩌면 잘못된 내 판단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아홉 살이었던 해 우리 가족은 꽤 넓은 마당 작은 텃밭이 달린 파란 지붕 집에 살았다.

다른 사람 소유의 집, 우리 집은 아니었지만 문을 열면 마당이 보이고 마당 한 구석에 비파나무와 감나무가 있었던 그 집이 나는 참 좋았었다.


늦봄과 초여름 사이 마당 한편 자리 잡은 감나무에선 팝콘을 닮은 노란 감꽃들이 투두둑 하나둘씩 땅으로 쏟아져 내렸고 그 감꽃에서 나 코끝을 간지럽히 달콤한 향기는 아직도 어렴풋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손재주가 많고 꽃과 식물을 너무 좋아하시는 아빠 에 파란 지붕 집으로 이사를 하고 얼마 되지 않아 텅 비어 삭막하기까지 했던 그 집 마당엔 예쁜 꽃과 식물들이 하나둘씩 늘어갔다. 흔히 알고 있는 봉선화, 백합, 채송화부터 시계의 바늘 모양을 닮은 시계초와 잘 익어 벌어진 틈으로 보이는 빨간 열매로 가득 찬 여주라는 이름을 가진 식물까지 지지대를 타고 올라간 갖가지 식물들을 보는 건 어린 내게도 즐거운 일이었다.


집 한 구석 작은 텃밭 역시 풍성하긴 마찬가지였다. 텃밭에는 아빠가 심고 가꾼 상추, 고추, 토마토, 깻잎, 가지, 오이 등의 야채와 채소들이 각각의 싱싱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좋은 땅에서 오로지 자연의 힘으로 가꾸고 기른 오이나 토마토를 그 자리에서 따서 먹는 맛은 사서 먹는 것에 비할 수 없었다. 당시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면 텃밭에 가서 시간을 보내고 꽃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하루가 너무 짧기만 했다.


파란 지붕 집 마당 한가운데엔 웅덩이처럼 생긴 알 수 없는 커다란 구멍도 파여 있었다. 무슨 용도로 만들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주인의 동의를 얻어 그 공간에 아빠께선 금붕어들을 키우기로 하셨다. 종아리 정도 깊이의 땅에 시멘트로 흙을 메꾸고 동그란 모양 돌까지 둘러쌓아 제법 그럴싸한 모양으로 점점 완성되어갔다. 처음엔 한, 두 마리로 시작하던 금붕어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늘어나 열다섯 마리까지 채워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은 자연 수족관이나 다름없이 멋있게 변해 있었다.

말 못 하는 생명체들이었지만 어린 나에게 금붕어들은 또 다른 가족이나 다름없었다. 같은 종류의 금붕어라 해도 생김새나 모양이 모두 제각각이었고 열다섯 마리 모두에게 난 어울릴만한 이름도 지어주었다.


예쁜이, 알록이, 깜장이, 씽씽이... 다른 사람들에겐 모두 같아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생김을 보면 한눈에 난 누군지 구분할 수 있었다. 금붕어들 중에는 양쪽 두 눈이 볼록 튀어나온 툭눈이 금붕어라 불리는 종류도 있었는데 그중 까만색 금붕어 한 마리가 양쪽이 아닌 한쪽 눈만 나와 있었다. 그래서 내가 지은 그 금붕어의 이름은 툭이었다.


툭이가 들어온 날부터 난 툭이에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한쪽 눈만 튀어나와있던 탓인지 먹이가 눈 앞에 있는데도 먹지 못하고 스쳐 지나가 버리기 일쑤였다. 물에 띄워놓은 부레옥잠에도 매번 부딪혀 깜짝 놀라 몸을 휙 돌리는 툭이를 가만 보고 있자면 왠지 모르게 마음 한 구석이 짠졌다.


집에 놀러 오던 친구들이나 동네 어른들은 알록달록한 다른 금붕어들을 보며 예쁘기도 하다 밝은 웃음 지었지만 난 다른 금붕어들보다 어딘가 다른 모습의 툭이에게 자꾸만 신경이 쓰였다.


큼지막한 돌 및 그늘이 생기는 작은 틈이 있었는데 그곳이 툭이가 가장 좋아하던 장소였다. 햇빛이 내리쬐는 날에도 그곳에 들어가 있으면 가림막처럼 그늘이 생겼고 다른 금붕어들처럼 몰려다니지도 활발하게 헤엄치지도 않고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작은 틈 속에 꼼작 않고 들어가 있었다.


먹이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툭이가 매일 너무 걱정이 되었고 다른 금붕어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모습에 괜스레 코끝이 찡해지기도 했다. 눈 앞에 있는 먹이를 두고도 못 먹는 툭이에게 기다란 나무 막대를 가지고 와 물에 퉁퉁 불어버린 동그란 먹이를 입 주변으로 밀어주면 그제야 겨우 하나씩 먹는 툭이를 보며 저러다 혹시 죽는 건 아닌지 나날이 내 걱정만 쌓여갔다.


학교를 다녀오면 제일 먼저 난 마당에 있는 커다란 수조로 달려가 툭이에게 별일 없는지를 살피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툭이에 비해 날렵하게 헤엄쳐 다니는 다른 금붕어들을 볼 때면 건강하게 지내줘서 다행이다 싶으면서도 어쩌다 툭이가 다가가면 곧바로 흩어져 다른 곳으로 몰려가 버리는 모습들이 어린 마음에 얄밉게 느껴졌다. 그 시절 내 일기장에 툭이가 자주 등장했으니 툭이에 대한 나의 애정이 얼마가 깊었는지는 가족들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건은 일어났다.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요일 아침.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졸린 눈을 비비며 습관처럼 마당으로 향해 툭이를 찾았는데 수조 어디에도 툭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순간 불길한 예감이 머리를 스치며 지나갔고 방망이질을 하며 빠르게 뛰는 심장움켜 잡고 천천히 아무리 찾고 또 찾아보아도 툭이는 온데간데 어디에도 없었다. 툭이가 즐겨 찾는 돌 및 작은 틈에도 툭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마을에 흔히 도둑고양이라 불리던 길고양이들이 많았는데 아무래도 밤사이 툭이가 일을 당한 듯싶었다.

마당에 수조가 생긴 뒤로 틈만 나면 주위를 어슬렁거리며 호시탐탐 노리더니 결국 일을 내고야 말았다. 나머지 금붕어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평소처럼 헤엄쳐 다녔지만 툭이의 모습만 사라져 버렸다.


"고양이 온 줄도 모르고 도망도 못 갔나 봐, 불쌍해서 어떡하니?" 엄마의 말에 순간 울컥 눈물이 차올랐다. 툭이가 집에 오고 한 달이 넘는 시간 동안 매일을 잘 보이지 않아 힘들어하는 툭이를 보살폈는데 잡아먹은 고양이를 원망해야는지 밤에 물 위로 그물망이라도 덮어놨어야는데 미처 생각지 못한 우리 탓이었는지.


그때는 어려서 툭이가 그렇게 사라져 버린 것에 너무 마음이 아팠는데 시간이 지나고 돌이켜보니 내가 툭이를 위해 했던 일들이 오히려 툭이를 그렇게 만든 건 아 싶었다.


먹이 하나 제대로 먹지 못하는 툭이에게 입 앞으로 먹이를 밀어주었고 자꾸만 부딪히고 다니는 툭이가 불쌍해 부레옥잠이며 물레방아들을 알아서 먼저 치워줬던 게 오히려 툭이에게 독이었던 걸까? 


무조건적인 도움보다 어려운 상황들이 왔을 때 스스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해 주는 게 어쩌면 더 현명한 거였는지도 모르겠다. 툭이가 스스로 어려운 상황들을 헤쳐나가게 두고 지켜봐 주지 못한 게 오랜 시간이 지나고서도 내내 마음에 남아있었다.

 

길을 가다 걸음이 서투른 아이들이 실수로 넘어지기라도 하면 놀란 마음에 달려가 먼저 일으켜 주는 게 맞는 거라 여태껏 생각했는데 넘어진 아이들이 손을 털고 스스로 일어날 수 있게 기다려주고 지켜보는 게 더 나은 방법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때로는 도움이라 배려라 여기는 내 행동과 판단들이 오히려 상대방 입장에선 부담이 되었거나 불편한 일이 아니었을지.


  



매거진의 이전글 울리지 않는 전화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