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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잘리 Jun 03. 2020

그리운 계절의 추억

잊을 수 없는 외할머니의 손맛

전라남도 고흥군 두원면. 나의 외갓집.

아주 어린 시절부터 중학교 입학 전까지 해마다 여름, 겨울방학이 되면 난 늘 외갓집을 찾았다.

전체 가구수가 워낙 적어 서로의 세간부터 형제와 그 형제의 자식들, 자식들의 손주 이야기까지 속속들이 모르는 것 하나 없는 마을 전체가 친척이자 한 가족 같은 그런 동네였다.


그 시절 내 기억 속 외갓집의 여름은 마을 입구에 있는 커다란 정자나무에서부터 시작한다. 그 나무를 지나 작은 샘터를 따라 올라가면 외갓집이 나왔었고 정자나무 그늘 아래선 더위를 피해 이른 새벽일을 마친 동네 어른들이 막걸리와 부추전, 삶은 옥수수, 감자 등 다양한 먹거리들을 드시며 "이장댁 손녀 왔구먼." 부끄러움이 많던 그때의 어린 나를 반겨주셨다.


외할아버지 집 바로 옆에 자리한 푸른 대나무 숲에선 후덥지근한 여름 바람이 불 때마다 대나무 잎들이 부딪치며 스스스 소리를 냈고 대나무밭 안에 버려진 조개껍질과 흙, 이름 모를 꽃과 풀들은 자연 그대로 최고의 놀잇감이었다. 손이 시릴 만큼 시원함을 자랑하던 빨래터 샘물과 졸졸 흐르던 물에 가재와 검은물잠자리, 작은 물고기들이 살던 냇가까지 여름 외갓집 풍경은 모든 것들이 푸르게 눈부셨고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자연 자체였다.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렇듯 그 시절엔 삼시세끼 집밥이 당연시되던 때여서 오랜 시간이 지나 마을 전체가 가스를 사용하기 전까지 식사 때가 되면 마을 곳곳에 장작 타들어가는 매캐한 냄새와 함께 시커먼 무쇠 가마솥을 올려놓은 아궁이 굴뚝으로 모락모락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곤 했다. 무거운 솥뚜껑을 열면 부엌 한가득 하얀 김과 고소한 밥 냄새가 풍겨 나왔다.

 

밥이 거의 다 되어갈때즘이면 난 마당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잘 보이지 않는 곳에만 알을 낳는 외갓집 닭들의 달걀을 찾아다니기 시작했고 땔감으로 모아놓은 장작더미부터 대나무밭까지 숨겨놓은 알들을 보물찾기 하듯 찾으면 그것 역시 나에겐 재미있는 놀이 중 하나였다. 갓 지은 고슬고슬한 밥에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달걀을 부쳐 올려 먹으면 내가 살고 있던 마트에서 산 달걀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고소한 맛이 입안 가득 퍼져나갔다.


오랜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도 절대 잊을 수 없는 외할머니의 손맛 첫 번째 바로 "칠게장"이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곳이라 물이 빠져나가는 썰물 때가 되면 마을회관 확성기를 통해 칠게 공동작업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고 방송이 끝나기 무섭게 마을 할머니들은 칠게를 담을 커다란 대야와 양철통, 호미, 그물망, 장화를 들고 바다로 이어져있던 뒷산의 지름길을 따라 작업장으로 향했다.


어른들은 그곳을 뒷개라고 불렀는데 어렸던 나는 정확히 뒷개가 무슨 의미인지는 몰랐지만 물이 빠져나가고 바닥을 드러낸 바닷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두 시간 쯔음 지나고 한참을 기다리면 외할머니는 그물망이 담긴 커다란 양동이 한가득 칠게를 잡아 돌아오셨다. 후다닥 달려 나가 양동이를 들여다보면 회색빛을 띠고 있는 싱싱한 칠게들이 양동이를 벗어나려 아등바등 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외할머니는 잡아온 칠게들을 마당 수돗가에서 뻘이 나오지 않을 때까지 깨끗하게 씻어내셨고 그렇게 깨끗이 씻어낸 칠게에 장독대 항아리에서 직접 담그신 국간장을 퍼 와 칠게가 잠길 정도로 가득 부었다. 짜디짠 간장을 온몸으로 맞으면서 다리를 버둥거리는 칠게들을 보며 뛰는 가슴을 잡고 외할머니 뒤에 숨어 고개만 빼꼼 내밀었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하룻밤이 지나고 밤새 칠게들을 품었던 국간장을 따로 덜어내어 솥에 팔팔 끓이셨다. 국간장을 끓이는 과정을 거쳐야 변하지 않고 맛있는 칠게장이 된다 하시며 끓인 국간장을 마루에 두고 천천히 식혔다. 뜨거울 때 간장을 부으면 칠게 발이 다 떨어져 나갈 수도 있어 항상 식힌 간장을 천천히 다시 칠게에 부었다. 그리고 통마늘과 청양고추들을 썰어 넣어 뚜껑을 닫고 3-4일이 지나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도둑 칠게장이 완성되었다.


외할머니는 장날에 맞춰 사 오신 짭짤하게 간이 잘 배어있는 갈치의 살 한 점씩을 뜯어 내 밥그릇 위에 올려주시곤 했는데 갈치의 맛도 좋았지만 물 마른밥 한 숟갈에 칠게의 다리를 하나씩 올려먹는 맛이 더 좋았었다. 외갓집 마루에 앉아 뜨거운 여름 바람을 쐬며 먹는 칠게장의 맛은 그 어느 것에도 비교할 수 없었다.

짧기만 한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 외갓집에서 열흘간의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날.

겨울방학 때 다시 놀러 오겠다고 말하고 돌아서면서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과 서운한 마음은 왜 그렇게 컸는지... 한동안 난 외할머니가 해주시던 음식들과 외갓집에서 지내던 기억들이 머릿속에 내내 맴돌아 가끔씩 떠올리며 남은 여름을 그렇게 보냈었다.


그리고 돌아온 겨울방학.

겨울의 외갓집 풍경은 여름 하곤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날이 몹시 추워진 탓에 정자나무에 자리하고 계시던 어른들은 없었지만 방학을 맞아 놀러 온 아이들의 썰매 타는 모습과 꽁꽁 얼어붙은 처마 밑으로 이어진 고드름을 따서 칼싸움하던 모습들을 자주 볼 수 있었다. 여름철 옥수수를 삶던 내던 아궁이엔 굵고 붉은 고구마와 밤이 자리해 있었고 외할머니께서 담가놓은 살얼음이 동동 떠 있는 동치미가 항아리에 가득했다.


여름철 칠게장과 함께 잊을 수 없는 두 번째 겨울의 음식은 피굴이다. 

고흥에서 주로 해 먹던 음식이라 알고 있어 이름만 들어서는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겨울철이면 외할머니 동네에선 별미 중의 별미였다. 추운 겨울이 되면 마을 사람들은 뒷개에 가서 굴을 따고 운 좋게 잡은 낙지를 가지고 돌아왔다. 양식이 아닌 자연산 굴로 그 맛이 깊고도 진했다. 외할머니도 자루 한 가득 굴을 가져오셨는데 가져온 굴은 바로 껍질채 깨끗이 씻어 바로 커다란 찜통에 삶아내셨다.


굴이 다 삶아지면 군불을 넣어 뜨끈 뜨근한 방 안에서 가족들 모두 둘러앉아 굴을 까기 시작했다. 나는 굴을 까기보다는 얻어먹는 편이었지만 옆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막 삶은 굴을 먹는다는 건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맛과 즐거움이었다.


피굴에서 중요한 건 굴을 삶아낸 물이었는데 삶은 물을 버리지 않고 잔여물을 가라앉힌 후 살짝 윗물만 그릇에 조심스럽게 부어내는 것이 피굴 맛을 결정하는 핵심이었다. 부어놓은 국물에 까놓은 굴을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후 통깨와 송송 썰어놓은 잔파를 띄우면 피굴이 완성되었다. 피굴은 미지근하게 먹어도 차게 먹어도 어느 것 하나 모자람이 없었고 코끝을 스치는 굴의 향기와 함께 입안을 감도는 달달함과 시원함이 쉽게 그릇을 내려놓을 수 없게 만드는 맛이었다.


선선한 바람과 함께 울긋불긋 단풍들이 온 산을 물들이며 아름다웠던 작년 10월. 외할머니께서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평소 가을을 좋아하셨던 외할머니는 가장 좋아하던 계절에 편안하게 눈을 감으셨지만 외할머니에 대한 추억이 유독 많은 나여서 외할머니를 보내고 한동안 많이 힘들었다.


어린 시절 여름과 겨울을 물들이던 음식 칠게장과 피굴 역시 이제는 추억의 음식이 되어 외할머니의 손맛을 그대로 이어받으신 엄마를 통해 가끔씩 먹어볼 수 있는 음식들이 되었지만 똑같은 맛인데도 어쩐지 그때의 칠게장, 피굴과 다르게 느껴지는 건 음식에 담긴 그 시절 그 계절의 추억과 기억들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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