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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로 Mar 18. 2023

이동한다 그래서 나는 존재한다

머무를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고민이 생길 때 완벽하게 자유롭다

자유. 거창한 관념어 '자유' 말고 그저그런 자유. 정확하게 표현하면 자유분방함을 좋아한다. 갑자기 나는 내가 카메라 렌즈로 변신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내가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뭔가를 뚜렷이 지켜보는데, 상대는 나를 전혀 의식하지 않고 있을 때, 그런 기분에 사로잡힌다. 낯선 시선으로 그들을 봐도 그들은 그런 시선은 하도 많이 봐서 상관없다고, 볼 테면 봐요라는 당당함으로 나를 대한다. 나는 자연스러움에 압도당해 하루 종일 그 거리, 그 향기, 그 기분을 생각한다. 아니 생각에 사로잡힌다. 이런 신비한 경험은 낯선 기후를 지닌 여행지에서만 느낄 수 있다.  






여행자는 시각에 민감하다고 한다. 

어느 날 나는 여행지에서 당혹감을 느꼈다. 갑자기 코를 자극하는 향에 놀라움을 느꼈다. 공항을 감도는 기이한 향에 아, 여기는 정말 한국이 아니구나 깜짝 놀랐다. 향으로 된 커튼을 누가 친 것 같았다.

그 향의 정체는 팍치였는데 우리나라에선 고수 나물이라고 부른다. 일부 지방에선 고수 나물을 취식하기도 한다. 향이 낯설었지만, 현지인들은 고향의 냄새로 인식하고 있었다. 마치 우리나라의 청국장과 비슷하달까. 외국인들은 당혹해하지만, 한국인들의 입가에 침을 고이게 하는 고향의 향이란 점에서 비교할 수 있다. 




그 향을 경험하기 좋은 장소는 방콕의 수완나품 공항이었다. 고수 향을 뒤로 하고 걸음을 옮겼다. 

공항에서 공항철도를 타고 시내로 이동했다. 해가 지는 풍경을 보여주는 바깥 풍경은 완벽했다. 황금빛으로 빛나는 사원들, 후끈한 열기, 가로등 불빛과 주택들이 뿜어내는 풍요로운 색깔들, 이런 이미지들은 인생을 보여주는 드라마의 장면들처럼 보였다. 방콕 미술관에서 보던 유화가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오전에 길을 나서니, 현지인들은 바쁘게 다니는데, 관광객들은 한가롭게 흐느적거리는 자태로 걸어다녔다. 완벽하게 출근에서 자유로운 사람들 모습이었다. 출근에 자유로운 사람들은 테이블에 앉아 주스 혹은 맥주, 팟타이 등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초여름 같은 날씨를 흠뻑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근처 쇼핑몰로 갈까. 아니면 시내에 위치한 태국 식당에서 식사할까, 고민했지만. 낭만이 느껴지는 주택을 개조한 식당에서 파인애플 볶음밥을 먹었다. 후식으로 땡모반(수박주스)을 마시며 지도를 살폈다. 정신 없는 여정을 차분히 정리하는 시간을 보냈다. 나는 계획 없이 무턱대고 여행 왔다. 온라인 쇼핑몰에서 특가 항공권을 보고 덜컥 예매했고 숙박할 곳만 정한 후, 출발 당일 부랴부랴 타고 온 것이었다. 어젯밤까지 밤새 해결해야 했던 일부 업무가 생각나지 않았다. 당장 한국 시간으로 오전 10시에 주문 메일을 보낼 것이 있는데, 주변 태국의 기후와 열기를 느끼니, 한국에 있던 업무 내용이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한국과의 시차도 고려해서 계산해서 주문서를 작성해야 했는데 들뜬 마음이 내 정신을 지배했다.






그러던 와중에 지도에 카오산로드란 지명을 보고 깜짝 놀랐다. 

한때 여행 분야 베스트셀러를 차지했던 도서 '카오산로드'가 생각났다. 그 카오산로드가 이곳인가. 조금 부끄러운 이야기인데 태국에 무지했던 나는 '카오산로드'를 산 이름으로 알고 있었다. 험난한 등반 여행서적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출판 디자이너가 카오산도 모르냐며 카오산에 대해 설명했다. 카오산로드가 배낭 여행자들이 모이는 곳이며 뿜어내는 젊음의 열기가 엄청나다고 했다. 

그 당시 말이 떠올랐다. 정신없이 내달리는 오토바이, 택시, 툭툭, 알 수 없는 물음표 같은 난해한 태국 간판들, 또는 얼굴에서 잃지 않는 낙관적인 미소들, 한참을 바라보았다. 

아, 생명력 넘치는 미술 작품이었다. 달리고 뛰는 풍경의 예술 같았다. 하품을 하는 유럽인, 이곳에 정착한지 놀러온지 알 수 없는 관광객, 대낮에 식당을 찾아 두리번거리는 행인, 대지를 은근히 데우기 시작하는 초여름의 열기,   



그래서 나는 혼자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곳이야말로 동양과 서양이 공존하는 미스테리한 도시였다. 언제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지 망설여졌다.

아 여기서 이 낯선 풍경이 익숙해질 때까지 바라보고 싶었다. 마치 아름다운  미술품을 관찰하듯이.

이곳에 마치 내가 찾는 자유가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생각이 들 때 자유라는 관념어는 나를 흥분시키는 자유로움이란 단어로 변모한다.   


그래서 귀국하는 날이면 난 고민하게 된다. 머무를 것인가, 돌아갈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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