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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하바 Dec 19. 2022

싼마이 취향

그런 것도 취향이라고 할 수 있을까?


거칠게 말해서 싼마이 취향. 조금 포장해 말하자면 가성비 취향.


어느 날 뒤돌아보니 내가 선택한 것들은 모두 싼마이였다. 브랜드로 따지자면 1등이 아닌 2등이나 3등. '같은 브랜드라면 할인 중인 제품. 누군가는 지극히 합리적인 소비 취향을 가지고 있으니 칭찬받아 마땅하다 할 수 있겠다. 구매를 하고 사용을 하면서 나도 같은 만족을 느끼고 있다면 마땅히 그러하다 생각할 테다. 하지만 난 늘 아쉬웠다. 사실은 난 다른 걸 갖고 싶었어. 


첫 휴대폰은 019였다. 016 번호를 두어개 쯤 거치고, 처음으로 011 번호를 가지게 되었을 때 '나도 드디어!' 싶었지만 사람들에게 번호를 알리면서도 내 것이 아닌 양 어색하게 중얼거렸다. 다시 019로 돌아가고 나서야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꼈다. 하기야 덕분에 첫 직장에 합격한 것도 같다. 과거의 내 번호들이 어찌 되었든 입사지원서를 제출할 때 적어 낸 번호는 019였고, 난 엘지텔레콤에 입사했다. 


남들은 미국으로, 영국으로 하다못해 필리핀이나 영어권 사용 국가들로 연수를 갈 때 난 중국을 향했다. 막연히 영어권 국가들은 비싸다는 생각이 일단 1번. 현시점 세계 공용어, 그러니까 1위라고도 할 수 있는 영어보다는 두 번째로 많은 사람들이 사용한다는 중국어를 택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실제로도 중국의 물가는 정말 저렴했고, 인생 처음으로 먹고 싶은 것들 먹는 데 돈을 고민하지 않고 양껏 고를 수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다. 


나의 20년 가까이 된 취미이자 오랜 부업은 사진 찍으며 돌아다니고, 정보성 글을 써서 블로그를 운영하는 것. 그렇게 많은 곳들을 돌아다니는데 맛집이나 카페 정보는 잘 올라오지 않는 이유는 간단하다. 일단 혼자 돌아다닐 때는 돈이 아까워서 가급적 먹지 않는다. 맛집이나 유명한 곳들은 언감생심, 편의점에서 간단히 때우는 날이 많다. 간혹 카페를 가도 늘 시키는 메뉴는 아메리카노. 이쯤이면 내가 아메리카노를 좋아해서 주문하는 건지, 가장 저렴하기 때문에 아메리카노를 고르게 된 건지 주문하면서도 늘 헷갈린다. 요즘은 가끔 포스팅을 위해 사진에 예쁘게 담길만한 것들을 주문하지만, 예산을 초과하지 않도록 항상 신경 쓴다. 여행블로거라 칭하지만 발품만 팔면 되는 무료 여행지들이 더 많은 것도 같은 이유일 테다. 


아이는 다르다. 일부러 그러라고 해도 쉽지 않을 정도로 공산품이던, 먹을 것이던 귀신 같이 비싼 것들을 골라서 원한다. 나도 그랬던 나이가 있었을 테다. 네 딸 중의 장녀로 철이 빨리 들었다지만, 어려운 부모님의 주머니 사정을 알면서도 또래집단에서 뒤처지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엄마 표현을 빌려 '그놈의 메이커 타령'을 해대던 시기도 있었다. 그랬던 주제에 그때의 엄마 나이가 된 지금, 내 주머니에서 나가는 돈이라고 벌벌 떨며 가성비 취향으로 선물을 고른다. K 장녀로 부모님과 나눠지었던 동생들의 무게가 버거웠었기 때문이라고 핑계대어 본다. 


이 모든 상념의 시작은 아이 친구 엄마가 입고 온 몽XXX 패딩 때문이다. 친구 엄마 1과 친구도 몇 백만 원짜리 그 패딩을 입고 있었는데 다른 친구 엄마 2도 같은 브랜드를 입고 있다. 며칠 전 남대문에서 아이 옷들 샀다며 자랑하는 친구 엄마의 말에 남대문은 나도 잘 안다고 나답지 않게 떠들어댔던 게 부끄러웠다. 같이 남대문 시장에 가서도 가성비를 따지느라 몇 개 구매하지 못하고, 나중에 혼자 따로 가서야 잔뜩 사 왔더랬다. 다른 사람들은? 시장에서 몇 십만 원 우습게 썼댔다. 몇 백만 원짜리 패딩을 살 수 있으면서 순전히 시장 옷들이 예쁘고 가성비가 좋아서 사는 것과, 시장 옷을 두고도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는 엄연히 다르다. 


그래서 그 몇 백만 원짜리 패딩이 입고 싶냐 묻는다면, 여전히 모르겠다. 그동안 익숙해져 버린 싼마이 취향 탓인지 무슨 옷 한 벌에 몇 백만 원? 싶으면서도 사실 돈만 있으면 당연히 입고 싶겠지 싶기도 하다. 적어도 물질적인 부분이 아닌 경험의 취향에 있어서는 마냥 싼마이가 아닌 내가 좋다. 소유보다 경험을 중요시 하기에 - 물론 몇 백만 원짜리 패딩에 명품백들을 들고 다니는 그녀들은 경험조차 풍부하지만 - 소유한 것들은 싼마이라고 할지라도 경험의 취향만은 가성비 최고라 자랑하고 싶다. 


다만 문제는 내 안에 깊게 자리 잡은 비교로 인한 자격지심이다. 넌 왜 항상 너보다 위에 있는 사람들만 보면서 비교하느냐 안타까워하던 엄마의 마음을 이기적이지만 나는 알고 싶지 않다. 내 아이는 나처럼 '가격'따라 만들어진 취향이 아닌, 많은 것들을 즐기고 경험하며 만들어진 자신만의 향기가 묻어나는 취향을 가진 사람으로 자라났으면 좋겠다. 비록 지금 아이가 경험하는 많은 부분들이 엄마의 오랜 부업인 블로거 활동을 통해 얻은 무료 체험의 기회들이지만, 지불한 비용이 경험의 질을 결정하는 데 영향을 주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싼마이지만 가성비 좋은 나의 장소에 대한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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