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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Sep 04. 2023

` 길이 아닌 길 위에서 `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

 3년 전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필사를 했습니다. 몇 권의 노트를 사고 첫 번째 노트에 그렇게 썼습니다. `나는 나를 필사하고 싶다.`

 그리고 3년이 지난 지금, 나는 여전히 나를 마주하고 있지만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습니다. 마주 보면 볼수록 백지를 보는 느낌이고 끝없는 사막 한가운데서 발걸음을 떼지 못하는 나를 발견합니다. 


 세례 받듯이 샤워를 하고 기분 좋은 향수를 뿌려 봅니다. 다시 책을 펼치고 활자가 주는 영감에 빠져 봅니다. 하지만 방향을 정하지 못하고 서있습니다. 정작 문 밖으로 나왔지만 갈 곳이 없는 사람처럼 망설이고 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끊임없이 자신과 마주하고 반추하는 일이라고 하지만 나와 맞닥뜨리고 있으면 풍경만 남고 나는 사라져 버립니다. 내 목소리로 말하고 싶은데 말 더듬이처럼 어눌하게 발성하는 나를 보게 됩니다. 유일한 스승인 아내는`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는`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다고 일러줍니다. 3 년이 지나서 무언가 실적을 남겨야겠다고 생각했던 나의 계획은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 길을 찾아 나서는 사람에게 조급함은 금물입니다. 많은 작가들이 게으르고 느리다고 표현하는 습성은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닙니다. 

 나는 며칠 전 가게로 날아온 사마귀 한 마리를 잠시 관찰했습니다. 사마귀는 느리게 움직이고 고개를 들어 갸웃거리며 주변을 둘러보곤 했습니다. 가끔 기도하듯 앞발을 모으고 한참 동안 꼼짝하지 않았고 그대로 잠든 것 같기도 했습니다. 나는 사마귀를 보면서 서두르지 않는 느긋함에 매료되었습니다. 다른 곤충들이 주변의 시선을 피해 날렵하게 자취를 감추는 것에 비해 사마귀는 자신을 숨기려고 급급해하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그의 느긋한 습벽을 보면서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조금은 보이는 듯했습니다. 그 길을 찾기 위해선 천천히 생각해야 하고 무연히 응시할 줄 알아야 하며 기도하듯 사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오르한 파묵이 글쓰기는 `바늘로 동굴을 파는 일이다`라고 인용했던 이유를 알 것도 같습니다.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는 길을 찾아서 많은 이들이 길을 떠납니다. 그 길은 길이 아닌 길 일지도 모릅니다. 오직 자신이 내딛는 걸음으로 발자국을 만드는 스스로를 찾는 길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젠가 그 길에서 나를 필사할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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