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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Sep 24. 2023

` 미제 스팀다리미 `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

 내겐 오래된 스팀다리미가 있다. 30년 가까이 사용한 스팀다리미다. 다리미 헤드는 쇠로 만들어져 제법 묵직하고 뜨거운 김이 나오면 열전도가 되어 주름을 펴는데 용이하다. 특히 다리미의 손잡이가 나무로 만들어져 잡을 때 감촉이 좋고 쇠로 구성된 헤드와 조화를 이뤄 견고하고 단단한 느낌이다. 나무 손잡이는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잡히는 부분은 반들거리고 귀퉁이는 흠집이 나있다. 다리미는 전체적으로 단순하지만 기능에 충실한 모습을 하고 있다.


 내게 스팀다리미를 전해준 친구는 옆건물에서 옷가게를 하던 후배였다. 그는 업종 변경을 하면서 나를 보더니

" 형~ 이거 미제야."

하면서 웃었다. 뜻하지 않게 `미제 스팀다리미`를 선물로 받고 나는 무척 기뻤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아직까지 그걸 사용하면서 아르바이트생이 들어오면 그렇게 말한다.

" 이 다리미는 너보다 오래 살았고, 미제야~."


 내가 옷을 다림질할 때는 보통 두 가지 경우다. 첫째는 신상품이 들어왔을 때고, 둘째는 생각이 널브러져 있을 때다. 

 신상품이 온 날은 거의 하루종일 스팀다리미가 김을 뿜어대며 옷의 구김을 편다. 좀 떨어져서 김이 올라가는 장면을 보고 있으면, 스팀다리미가 작은 증기기관 같고 옷을 다리는 사람은 산업혁명 시대의 노동자 같아 보인다. 그런 날은 다리미가 잠시도 쉬지 못한다. 가끔 스팀 나오는 구멍이 막혔는지 스타카토로 끊어지듯 김이 불규칙하게 나오는 시기가 있다. 그럴 때면 불안감이 몰려온다. 그 소리가 마치 단말마의 비명처럼 느껴지면서 내가 몹쓸 짓을 하고 있다는 자괴감이 든다. 서둘러 전원 스위치를 끄고 다리미의 동태를 살핀다. 그리고 기다린다. 열기가 식기를.


 옷을 다리면 마음이 편해진다. 구겨진 면이 바르게 펴지는 순간이 오면 내 맘속의 어떤 구김마저 반듯하게 회복된 기분이다. 옷을 다리는 일은 숭고한 작업이다. 마대 속에서 차곡차곡 개켜진 채 도착한 옷들은 펼쳐보면 시간과 중력의 무게를 고스란히 새긴 주름을 갖고 태어난다. 뜨거운 열정과 정성이 아니면 살릴 수 없는 비천한 생명체다. 이럴 때 다림질은 생명의 숨통을 열어주는 숭고한 입맞춤 같다. 다림질은 누군가를 사랑하는 일이다. 천천히 그리고 뜨겁게 다가가서 화인처럼 분명하게 자신을 새기기 때문이다.

 다림질은 서두르지 말고 마음속에 회반죽을 바르게 펴서 바르듯이 해야 한다. 반복적인 일은 몰입하게 된다. 그리고 단순함의 반복이 주는 심취는 또 다른 경지가 된다.

나는 다림질을 통해서 머릿속을 정리하기도 하고 마음을 다잡기도 한다. 그런 의미에서 `미제 스팀다리미`는 내게 없어서는 안 될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어제 그의 가쁜 호흡이 이어지더니 끝내 뜨거운 김을 뿜어내지 못했다. 그의 사망을 인정할 수 없는 나는 아직도 그가 평소에 있던 자리에서 치우지 못하고 있다. 그를 치우고 나면 그가 있던 자리의 공허함을 매울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그는 오늘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내일도 있을지 모른다. 영원히 치우지 못하고 그대로 둘 지도 모르겠다. 

 공룡 박물관에는 뼈대로만 형상을 보여주는 공룡이 있다. 공룡 시대를 그 뼈대만으로 사람들이 기억하듯이, 손잡이가 반질거리고 흠집난 `미제 스팀다리미`를 나는 기억할 것이다. 뜨거운 김을 뿜지 못하고 차갑게 식어있는 낡고 오래된 내 추억의 다리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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