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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보구 Jan 02. 2024

1. 나폴리

(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

 이탈리아를 가야겠다는 결정은 쉬웠다. 나는 항상 떠날 생각을 맘속에 품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동안 나는 나의 공백으로 인해 가게 영업에 차질이 생길까 두려워 꼼짝하질 못 했다. 하지만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든 것은 신호등에 걸려 맑은 하늘을 바라보던 시월의 어느 날이었다.

 구름은 태초의 하늘처럼 하얗게 피어오르고 멀리 있는 산의 능선은 신호에 걸려 서있는 나를 잠시 환상에 빠지게 했다. `피렌체로 가는 기차는 오후 세시에 떠납니다.`라는 문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는 더 늦기 전에 떠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고 가장 빠른 여행 편을 찾아 그날 예약했다.

 나폴리와 로마, 피렌체, 밀라노를 가는 일주일 코스였다. `로마인 이야기`와 `냉정과 열정사이``해부학자`그리고 최근에 읽고 있는 `나폴리 4부작`을 통해 이탈리아의 도시는 동경의 대상이었고 메디치 가문을 다룬 드라마를 보면서 풍경과 건물을 머릿속에 새겼다. 며칠 동안 잠을 설쳤다. 어떤 옷을 입을지부터 어떤 책을 가져갈지 고민하고 `스페인 광장``라오콘 군상``두오모 성당``판테온 신전`을 생각하면서 잠을 못 이뤘다. 프레스코화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했고, 많은 사람들이 거닐었을 반질반질한 바닥과 좁은 골목길은 시간의 향기를 품고 있을 것 같았다. 로마의 시조인 `디도와 아이네이아스`의 사랑 얘기를 아내에게 들려주자 약간 분개하듯이 말했다. 

"그게 무슨 사랑이야??  여자를 이용한 거지."


 한 번도 가보지 못한 나라를 향한 설렘과 두려움과는 별개로 나는 나의 떠남에 대한 의미랄까 목적 같은 것 때문에 불안했다. 그것은 스무 살의 나와 예순의 내가 마주하며 나누는 대화였다.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자신의 의견만 말하면서 격차만 확인하는 순간이 계속되었다. 비행기에 오를 때 까지도 우리는 서로 화해하지 못했다.


 비행기가 곧 로마의 레오나르도 공항에 도착한다는 안내 방송이 나왔다. 로마에는 비가 내린다고 했다. 입국 수속을 끝내고 함께 여행할 일행을 만나서 버스에 탔다. 사위는 어두웠고 간간이 비가 뿌리고 있었다. 호텔로 이동하는 버스에서 어둑어둑한 로마를 갈급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호텔에서 짐을 풀고 저녁식사를 마치자 일행들은 각자의 객실로 들어갔다. 나는 호기로운 기분으로 밖으로 나왔다. 여유를 찾고 싶었다. 수학여행처럼 일정대로 인솔자를 따라다녀야겠지만 규율에 꼭 맞추라고 하면 자신 없다. 나는 성격상 획일적이거나 규격화된 것을 몹시 싫어한다. 무작정 따라 하는 것을 싫어하고 남들이 좋아하면 일단 뒤로 물러선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던 것을 모두가 좋아하면 슬그머니 내려놓고 싶어 진다. 그렇게 한 번도 인사이드의 삶을 살아보지 못해 가끔은 그 삶이 부럽기도 하지만 궤도를 따라 규칙적이고 반복적으로 살아가기에는 인내력이 부족하고 반항심이 많아서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저녁 식사가 끝나자 인솔자는 남부에 가까울수록 우범지역이 많다고 각별히 주의하라고 했다.

" 특히 야간에 돌아다니는 것은 무척 위험해요.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일찍 주무세요."    

 둘째 날 우리는 나폴리로 갔다. 그곳에서 베수비오화산 폭발로 사라진 비운의 도시 폼페이로 이동했다. 낮은 아파트가 보이는 나폴리 풍경 뒤로 지중해가 펼쳐졌다. 넘실대는 바다가 햇빛을 받아 반짝였다. 나는 잠시도 눈을 떼지 못했다. 우산 소나무와 야자수 나무가 보이는 동네의 공원사이로 반짝이던 푸른빛이 사라지고 있었지만 고개를 돌리지 못했다.

 폼페이에 도착하자 갑자기 비가 내렸다. 검은 화산 재가 바닥에 깔린 폼페이는 2000년 전의 시간을 간직하고 있었다. 고대 항구 도시의 모습은 지층의 변화로 많이 달라졌지만 마차가 지나간 자국과 술집과 빵집 그리고 목욕탕은 오랜 시간 속에도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인솔자는 우리에게 수신기를 나눠줬다. 그리고 유적지에 도착할 때마다 그걸 사용할 거라고 했다. 빨간 깃발을 들고 가는 인솔자를 따라 우리 일행은 줄을 지어 따라갔다. 나는 맨 뒤에서 일행의 줄을 슬쩍 벗어나 걸었는데 인솔자는 설명을 하면서도 내가 딴 데로 갈까 봐 뒤돌아 보면서 확인하는 눈치였다. 그의 목소리는 듣기 좋았고 가끔은 신파극의 성우처럼 감정적이었다. 폼페이에 온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진 찍는다는 석고로 된 사람의 모습은 유리관 안에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까지 그의 목소리는 격정적이지 않았다. 석고로 된 웅크린 사람과 코를 잡고 쪼그려 앉은 사람을 보면서 그의 톤이 높아졌다. 죽음의 순간을 포착한 것이라며 화산재 속에 파묻힌 사람의 형상에 석고를 부어 형태를 복원한 것이라고 분출하는 화산처럼 열변을 토했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느라 여념이 없었고 뒤에서 들어오는 관광객 무리에 우리 일행은 밀려 나왔다. 나는 웅크리고 있는 석고 앞에서 망연히 서있다가 밀려서 나왔다. 눈물이 나왔고 아무 말도 생각나지 않았다. 조금 후에 제우스의 신전을 중심으로 여러 신을 모시는 제단이 보였다. 포럼이었다. 바실리카를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가다 층계참에서 뒤돌아 봤다. 흐린 하늘 아래 폼페이가 비에 젖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레스토랑을 찾아갔다. 언제 비가 왔냐는 듯 해가 떴다. 레스토랑 입구에는 큰 올리브나무가 있었다. 햇살이 비추자 비에 젖은 올리브나무가 반짝거렸다. 싱그러운 느낌이 들었고 올리브나무가 성스럽게 보였다.

 기차를 타고 소렌토로 갔고 다시 배를 타고 카프리로 향했다. 가는 내내 나는 일행과 떨어져 앉았지만 배 안에는 한국 관광객이 많아 시선을 바깥으로 돌려야 했다. 보고 싶었던 지중해의 물결과 햇살을 즐겼다. 뭉게구름은 입체적으로 피어올랐다. 바람 때문 일지도 모르겠지만 확실히 움직임이 느렸고 풍성했다. 제우스가 구름으로 변신해서 유혹해도 믿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배편에서 승선을 위해 줄을 서있는데 노랫소리의 후렴구가 들렸다. 리드미컬한 이탈리아 말투라고 생각했다. 표를 받고 있는 이탈리아인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었다.

" 빨리~빨리~ "

카프리를 떠난 배가 물살을 가르자 섬의 전경이 뒤로 드러났다. 지중해의 보석이라고 했다. 로마의 황제와 귀족들이 휴양지로 삼았던 섬이 지는 햇살을 받고 있었다. 배가 속도를 내자 섬은 원근법의 소실점처럼 점점 작아졌다. 해가 지면서 붉게 물든 바다와 하늘 속에서 섬은 펜던트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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