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버스는 북쪽으로 올라갔다. 이탈리아도 우리처럼 반도 국가라 남쪽과 북쪽의 기후차가 있다. 북쪽으로 갈수록 평야지대가 많고 산업이 발달해 소득 수준도 높다고 한다. 버스를 타고 가는 내내 인솔자는 이탈리아의 과거와 현재를 여러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해 줬다. 의료와 교육은 무상이라고 얘기하면서 복지는 사회주의적인 성격이 강하다고 했다. 여행자가 이곳에서 교통사고를 당했을 때도 치료하는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한다. 물론 비용은 무료라고 하면서 과거 로마의 정신이 반영된 것이라고 세세하게 인본주의까지 들먹이며 얘길 했다. 물론 일행 대부분은 자고 있었다. 얘길 하다가 장내가 숙연해진 느낌을 알아차린 인솔자는 `더 많은 정보를 알려드리고 싶지만 여러분의 사생활을 존중하기에 여기서 마친다`는 말은 꼭 했다.
휴게소에서는 커피를 마셨다. 에스프레소와 카페라테를 번갈아 마셨는데 특히 양이 많지 않고 우유의 부드러움과 커피 향이 풍부한 카페라테는 맛이 좋았다. 일행 중 작고 아담한 여자와 키 큰 여자가 함께 다녀 눈에 띄었다. 나이차도 좀 나 보였는데 선배로 보이는 작은 여자는 무척 친절했다. 호텔에서 술을 마실 거라고 저녁식사 후에 바(BAR)로 오라고 했다. 경상도 3인조와 면봉처럼 키 큰 여자가 보였다. 나는 그녀들의 수다에 동참했고 와인 몇 잔에 얼굴이 불콰해지자 술값을 계산하러 일어났다.
` 1786년 9월 28일 저녁 무렵. 브렌타를 뒤로하고 개펄 바다에 들어선 나는 난생처음으로 베네치아를 보게 된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그곳 땅을 밟고 그 굉장한 섬의 도시. 그 해리의 공화국을 구경하며 돌아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 , `
(#. 해리-비버 ), 괴테 (이탈리아 기행)
시오노 나나미 (바다의 도시이야기 ) 중에서
베네치아 공화국은 14만 명의 인구로 지중해 해상권을 장악하고 로마 가톨릭과 이슬람사이에서 천 년의 역사를 써 내려간 대표적인 도시국가이다. 최초의 인공섬이라고 인솔자가 설명하자 내가 물었다. 왜? 섬을 만들었고, 어떻게? 토목공사를 했는지를.
" 외적의 침입을 피해 도망갈 곳을 찾다가 늪지대로 도망갔는데 거기서 섬을 만들 생각을 한 것 같아요. 풀 한 포기 남기지 않은 아틸라의 훈족도 배를 만들어 섬까지 가려면 귀찮았을 것 같고요. 토목공사는 오리나무를 촘촘히 박아서 땅을 다졌다고 합니다."
베네치아가 위치한 곳은 아드리아해의 북쪽이다. 지중해성 기후의 온난함을 믿고 가을옷 위주로 준비해 온 나는 피렌체에서 가죽재킷을 한 벌 샀지만 배를 타고 가면서 몹시 떨었다. 비까지 부슬부슬 내려서 더욱 춥게 느껴졌는데 선착장에 내리니 때마침 아쿠아 알타였다. 광장의 일부도 물에 잠겨 있었고 골목은 들어갈 수 없을 정도였다. 장화 신은 사람도 보였고 비닐로 신발을 감싼 채 걸어다는 사람도 더러 눈에 들어왔다. 일회용 장갑 같은 비닐 장화를 잽싸게 구입하고 옷을 파는 가게를 찾아 나섰다. 올리브 색 패딩을 구입하고 본격적인 배회를 시작했다. 탄식의 다리를 거쳐 마르코 광장이 보이는 곳의 카페에 들어갔다. 자주색우단 의자가 고풍스럽고 동그란 탁자도 깔 맞춤한 듯 붉은빛을 띠었다. 카사노바가 자주 들렀다는 카페였는데 서빙하는 직원의 옷차림도 연미복 차림이었다. 상대가 격식을 갖춘 옷차림으로 대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이곳에서 유행했던 가장과 가면무도회가 떠올랐다. 음악과 연극이 합쳐진 오페라의 도시. 공중 극장이 처음 생긴 도시. 유행과 예술이 문화의 이름으로 포장된 쾌락의 도시. 그리고 비발디의 도시.
아쿠아 알타로 문을 열지 않은 가게도 있었고 가게 안으로 물이 들어와도 당연하다는 듯 장사하는 곳도 있었다. 넘실대는 물을 곁에 두고 지어진 집들과 옆건물로 이동하기 위해선 아치형의 다리를 건너고 수로 사이로 다니는 곤돌라는 경이로웠다. 심지어 그곳에 조성된 공원과 나무들은 비현실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넓게 펼쳐진 농지 뒤로 멀리 보이는 알프스 산맥이 흰 눈에 쌓여있다. 버스가 밀라노로 향하고 일행들은 피곤한지 잠이 들었다. 인솔자도 별말 없이 조용하다.
( 잠자리가 날아오르고 노을이 지는 시간이 짧아져갔다. 한 번은 버스를 타고 종점까지 갔다. 어느 산골이었던 것 같다. 버스가 다니는 신작로길은 평평하게 포장된 곳도 있었지만 자갈이 드러나게 패인 곳이 많았다. 달빛이 비치지 않는 언덕 비탈은 칠흑처럼 어두웠고 부엉이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우리는 해가 떠오를 때까지 걷자고 했다. 두렵고 무서웠지만 설렘도 자신도 있었다. 둘이 있다는 것만으로 안도감이 들었는지 모른다. 산길을 한참 걸었고 이 길의 끝에는 바다가 있을 거라고 말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언젠가 바다에 함께 가자고 약속을 했다. 불 꺼진 정류소에서 쉬기도 하다가 새벽이 조금씩 다가오자 우리는 손을 잡고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