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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밀라노

(나는 의류업을 합니다.)

by 장보구

알프스를 넘어온 나폴레옹은 밀라노 대성당에서 이탈리아 왕으로 즉위한다. 그는 물의 도시 베네치아를 처음 보고 반했다고 한다. 그래서 베네치아를 유럽의 응접실로 사용하려 했다고 한다. 베네치아를 유럽의 응접실로 쓰고자 했던 나폴레옹이 밀라노는 부부침실로 사용하려 했을까. 붉은 벽돌 빛깔의 집들이 균질해 보인다. 이 도시는 오래된 것보다 세련미로 다가온다. 깔끔하게 정돈된 도로와 차려입은 사람들의 발걸음도 힘차 보인다. 차창 밖으로 보이는 키 큰 플라타너스 잎들이 포강의 바람에 커튼처럼 펄럭인다. 베이지색 코트에 숄더백을 맨 여성이 횡단보도에 서있다. 패션과 경제의 중심지 밀라노다.


나폴레옹은 어린 시절 학습지의 표지모델이었다. 가파른 산맥을 향해 앞발을 치켜든 말을 탄 나폴레옹은 위대한 정복자 같았다. (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을 그린 자크 루이 다비드는 나폴레옹을 신격화하는 정치 선전물 같은 그림을 잘 그렸다. 이 그림에서도 보나파르트가 새겨진 바위 밑으로 알프스를 넘었던 한니발과 샤를마뉴를 의도적으로 써놓아 나폴레옹을 영웅시한다.

" 밀라노는 이탈리아의 파리라고 보시면 돼요. 명품을 사시려면 여기서 구입하시면 후회 안 할 겁니다."

밀라노 대성당까지 걸어가면서 인솔자는 곳곳에 보이는 건물마다 설명해 준다. 시내를 지나가는 길이라 상점가가 보이고 느리게 트램도 지나간다. 관광객들도 많이 눈에 띄지만 남부의 느슨하고 풀어진 모습과 확연히 비교된다. 쌀랑한 날씨 때문인지 방만한 나폴리와는 다른 긴장의 표면장력이 느껴진다.

글로벌 브랜드의 의류가게와 화장품, 안경과 악세사리점이 눈에 들어온다. 쇼윈도에 전시된 상품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느낄 수 있는 매장이나 짧은 순간 트렌드를 읽어보는 묘미는 보행자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시내.jpg

말을 탄 남자의 동상을 지나가자 인솔자의 목소리가 들린다.

" 붉은 셔츠단을 이끌었던 이탈리아 통일의 영웅 가르발디 장군의 상입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죠. "

우리에게 많이 알려진 체 게바라보다 더 고결한 순수 혁명의 기수는 가르발디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이탈리아 통일에 대한 순수한 열정으로 싸웠던 가르발디 동상으로 햇빛이 비스듬히 비춘다.

네온 간판이 켜지기 시작하고 건너편 건물에 `GUCCI`가 선명하게 보인다.

" 여기가 성악가라면 꼭 와봐야 하는 스칼라 극장입니다.

조수미도 여기서 공연했고 마리아 칼라스, 아그네스 발차,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 도밍고처럼 유명한 가수들이 여기서 공연했지요.

지금은 문이 닫혀 있으니 건물 앞에서 사진만 찍고, 저쪽에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동상도 한 번 가보시고요. "

아그네스 발차의 `기차는 8시에 떠나네`가 생각났다. 일행들이 밀라노 성당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 다들 오셨죠. 저쪽,,,,, "

갑자기 이어폰이 지지직 소리를 내더니 조용해졌다. 인솔자가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감싸고 있더니 다가오는 사람을 밀치고 주져 앉는다. 곁에 있는 사람은 담배 피우던 모자다. 인솔자가 바닥에 침을 뱉자 붉은 피가 섞여 나온다. 엄마가 안절부절 어쩔 줄 몰라한다. 아들은 의외로 차분하게 묻는다.

" 이빨이 빠졌나요.? "

" 네. 깨졌네요.

아. 잠시만요. "

인솔자가 일어선다. 이어폰 마이크가 안 보인다. 말을 하는데 앞니의 절반이 부러져 이상해 보인다.

일행은 일단 자유시간을 갖기로 했다. 사람들은 흩어지고 나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나누는 얘기를 들으며 사건을 재구성했다.( 엄마가 아들에게 질문을 했고 아들이 짜증 난 듯 핸드폰 든 손으로 방향을 가리키다가 인솔자의 입을 가격한 사건이었다. )

순식간에 벌어진 황당한 일이고 수습하기 쉽지 않을 거 같았다. 여기는 이탈리아고 일요일이었다. 이런 경우는 생명과 관계없는 일이라 응급실에서도 받아주지 않을 터였다. 난감한 기분이었다. 입고 있던 옷의 봉재선이 터져버린 것 같았다.

밀라노 성당.jpg

지는 노을의 빛이 스며들었는지 조명의 불빛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밀라노 대성당은 아름다웠다. 정교하게 조각된 130여 개의 고딕의 첨탑과 웅장함 앞에 믿음은 신이 아니라 건축물이 가져야 할 것 같았다. 결국 유물론자의 세속적인 결론이지만 표피적인 미학이 주는 경이는 놀라움 자체였다. 넓은 광장에 모인 수많은 군중은 각각 다른 의도로 바라보고 경탄을 할 터이지만.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갤러리가 있는 아케이드 통로는 명품샵이 즐비했고 인파로 붐볐다. 사람들이 붐비는 곳을 벗어나 커피숍으로 들어갔다. 이미 어둠이 내린 밖을 보면서 생각했다. 스무 살 이후 떠나고 싶었던 여행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다.


( 여름휴가차 친구가 시골로 왔다. 그가 바다 있는 도시로 간다고 했을 때 나는 몰래 짐을 꾸렸다. 엄마의 지갑을 뒤져 여비를 마련하고 해 질 녘에 버스를 탔다. 마음 한편에 그녀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막상 떠난다는 말을 할 용기도 없었고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려면 차 시간이 맞지 않았다. 아버지 몰래 떠나야 한다는 생각에 가슴을 졸였다. 초등학교 때 키가 컸던 나는 중학교 때 성장이 멈췄다. 운동을 했지만 소질이 없어 그만둬야 했고 그림을 잘 그린다고 생각했는데 적록색약이라고 말하자 미술 선생님이 그만두라고 했다. 잘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없는 시절을 보냈다. 대학에 떨어지고 막막했다. 자기 연민으로 시간을 허비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그녀를 만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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