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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른 양양 Oct 11. 2023

11월에는 바다에 갈 거예요.


엄마가 돌아가신 11월. 


앞으로 맞이하는 기일에는 시간이 된다면 무조건 바다를 보기로 혼자 정해버렸는데,  다가오는 11월. 숙소 예약을 끝낸 지금 시작부터 마음이 가뿐해서 남다른 느낌이 들어요.


왜 갑자기 바다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지만 장례를 마치고 그 해 12월 일본에 갔었는데 정신없이 돌아다니고 이것저것 보고, 낯섦이 주는 편안함을 나름 잘 누리고 해서 겨울마다 일본에 갈까?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새롭고 낯설다 보니 감정들이 나를 파고들어 갈 시간이 없었거든요. 아마도 정신없이 걷고, 먹고, 자다 보니 무거움이 좀 덜 했다고 느꼈었나 봐요. 그런데 한국 땅을 밟자마자 그 시간 동안 파고들어 가지 못했던 무거운 감정들이 한 번에 돌아오는 느낌을 받아서 더 힘들었던 것 같아요.


돌아오면 결국 현실이니까요. 


그러다 동생과 부산에 간 적이 있었는데 부산에서 겨울바다를 보는 순간. 좀 속이 뚫리는 기분이 들었어요. 바다가 좀 그런 느낌을 주잖아요. 무언가 뻥! 하고 시원한 느낌. 그래서 별 다르지 않게 생각했고 평소에도 겨울바다를 유독 좋아해서 그런가 싶었는데 뭔지는 모르겠지만 다녀온 후에도 무거움이 조금 달랐던 것 같아요. 그래서 다음에 시간이 되면 동생 놈(?)을 떼어버리고 혼자 와봐야지 했었어요. 


궁금했거든요. 

그때의 그 속 시원함이.





그러다 작년에 혼자 부산에 다녀왔어요.


5년 정도 지나니까 겨우 어딘가를 가도 될 만큼 몸이 좀 추스러진 기분이 들었고, 기일 즈음에 시작되는 심한 공황들도 좀 덜한 것 같아 그제야 실행에 옮길 수 있었는데 시작부터 심한 공황과 안 좋은 몸상태 때문에 고생길이었던 걸로 기억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11월의 부산은 따뜻했고, 시원했던 것 같아요. 바다 근처에 숙소를 잡고 가고 싶은 곳 모조리 다녀보겠다 싶어서 돌아다녔는데 결국 제가 한 건 그냥 앉아서 계속해서 바다를 보는 거였답니다.


처음엔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아서 여기저기 돌아다녔는데 좀 지치더라고요. 그래서 잠시 바다에 앉아 멍하니 보고 있는데 저도 모르게 울컥했어요. 슬프다 뭐 이런 감정보다는 막아놓은 게 좀 터진 느낌. 


사실 그때의 저는 잘 안 울었거든요.  매일 무겁다 느껴졌던 감정과 현실에 이미 체념해서 무감각해진 시기였던 거 같기도 하고 울어봐야 어차피 달라지지 않을 테니 하면서 울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런데 그날은 무언가 막 치고 올라오더니 마음속 감정이 흘러나왔던 것 같아요. 치유가 되는 기분이었고 그때부터 뭘 굳이 애써서 하지 말자고 마음을 먹었던 것 같아요. 


그 후로 남은 시간은 정말 숙소 안이던, 밖이던 바다를 계속 봤어요. 엄마를 보내고 나름 애를 썼던 것 같더라고요 제가. 아마 장례 후 갔던 바다에서도 장례식 때 힘들었던 마음이 좀 풀렸던 걸지도 모르겠다 생각을 했어요. 


그때의 바다는 저에게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아요. 




생각해 보면 엄마의 기일은 무언가를 강요당할 때가 있어요. 


엄마를 모신 곳에 꼭 가야 하고, 슬퍼야 하고, 또 시간이 지났는데 너무 슬프면 안 되고, 지금쯤이면 다 잊고 살아야 하는 등 타인들에게 무엇인가를 강요당할 때가 있고 못 하면 구구절절 설명을 해야 하는 제가 있었어요. 그게 어떤 감정이든 엄마만큼 제 자신도 너무 중요하니까 제 속도대로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라고 포장된 강요들이 시간이 지나도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았던 것 같아요.


엄마의 빈자리는 시간이 지나고 나이가 먹을수록 더 적응해야 하는 일들이 좀 더 많다고 느끼게 되는데 슬픔은 매번 다른 모습으로 저에게 다가오고요. 매일 그런 걸 느끼고 사는 저에게 일 년에 한 번 기일이 돼서 저에게 무언갈 강요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숨이 막힐 것 같아서 숨고 싶었던 적이 많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전 그 날 만큼은 시간이 된다면 바다에 가기로 했어요. 


아직 엄마를 모신 곳에 가는 게 힘든 건 애써 미뤄둔 현실을 너무 직면하는 느낌이 강해서 5년이 지났어도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내 속도대로 아무것도, 그 누구에게도 무언가 강요받고 싶지 않았거든요.


그래서 11월 엄마의 기일은 엄마와 나만의 날이라고 생각하기로 했어요. 멀리서 조금씩 마음의 무언가를 털어내다 보면 정말 행복하게 웃으면서 엄마를 볼 수 있을 것 같거든요. 시간이 지나면 엄마의 기일은 저만 기억하게 되는 날이 될 테니 급하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어요. 


아무리 364일을 잘 보내고 해도 이 하루만큼은 정말 저도 모르는 감정들이 올라오고 힘들기만 했는데 이번 11월의 그날은 조금은 괜찮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조만간 엄마한테 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저는 11월에 바다에 가요.

9월의 시작도, 10월이 시작도 전보다 더 단단해졌으니 11월의 바다도 감사한 마음으로 잘 다녀올 거예요!


무사히 그날을 잘 맞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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