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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다른 양양 Nov 29. 2023

11월의 끝에서 이야기하는 시작점.

연말이 되면 한 해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시간을 갖기도 하죠? 


저는 5년 전부터 조금 일찍 한 해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다른 것 같기도 했는데 요즘은 그냥 이 날을 시작으로 천천히 한 해를 돌아보거나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들을 꺼내보는 시간을 가게 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11월은 저에게 또 다른 시작점이 되기 시작했어요.





11월 9일. 


부산으로 향하는 KTX에 올라타고 나서 든 생각은 "벌써 또 한 해가 갔구나." 였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날 이후로 맞이하는 6번째의 11월은 작년보다 조금은 더 차분하고 안정적인 마음으로 부산으로 향했습니다.


사실 부산에 가서 하는 일은 별로 없어요. 바다를 보고, 새로운 풍경을 보고, 가고 싶었던 곳들을 가봐요. 여행이지만 마냥 즐겁진 않으니 무리를 하지 않고 정말 천천히 차분하게 그때 그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는 거 같아요. 


6년 전 그날처럼 3일을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갖습니다.


그리고 정말 바다를 원 없이 보고, 끊임없이 무언가를 곱씹거나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요. 멍 해 지는 시간만큼 생각이 풀어지고 튀어나오기도 하고 부정하던 걸 인정하기도 하구요. 정리되지 않은 마음을 적거나 중얼거리면서 꺼내보면 다시 서울로 돌아갈 때는 조금은 정리가 된 느낌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가끔 외롭기도 한데 (아니 외롭다고 느끼는 것도 많이 나아지고 좋아져서겠지만) 혼자 시간을 묵묵히 보내고 돌아옵니다. 그러면 한 해동안 쏟아내고, 엉켜져 있던 감정들이 정리가 되는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11월은. 

아니 엄마의 기일은 저에게 또 다른 시작점이 되기도 합니다.


2023년의 11월은 예전보다 조금 더 건강하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았어요. 저는 해마다 마음도 몸도 더 튼튼해지고 있으니까요. 그런데 역시나 11월이 되자마자 여기저기 아프고 하는 걸 보니 어이가 없더라고요. 그래도 전에 비해 여기저기 아픈 기간이 짧아지고 있으니 잘 견디고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아서 기쁘기도 합니다.


결국 "아. 역시 아직은 힘들구나." 인정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고, 몸이 힘든 것도 결국 마음에서 오는 것일 테니 잘 보듬어 주기만 하면 됩니다. 


결국 이 시간은 마냥 슬프기보다는 저에겐 또 다른 성장의 시간이 되기 시작한 것 같아요.




2박 3일간의 시간을 마무리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KTX 안에서는 내적인 흥이 좀 올라옵니다. 좀 후련해져서 인지 아니면 한 해를 또 잘 넘긴 자신이 기특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부산으로 향할 때와 다르게 약간 신나서 올라와요. 


작년에는 최대한 부산에 머무는 시간을 길게 만드려고 했는데, 이번엔 아침 일찍 서울로 출발하는 KTX를 예매하고 올라오는 나를 보면서 뭐가 달라졌을까?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더라고요. 시간이 지나서 그런 건가 싶다가도 사실 속상하고 슬픈 건 크게 달라지지 않아서 아닌 거 같았거든요.


다만, 조금 더 많이 앞을 생각하게 된 것 같아서인 거 같아요. 


전에는 꺼내보고, 추스르고, 정리하고의 시간이 좀 더 길었거든요. 좀 멀리 오래 차근차근 돌아보는 시간들이었다면 금년도에는 이사도 했고, 무언가 마음 적으로도 어느 정도 추스를 만큼 추슬러져서 그런지 좀 더 새로운 시간들을 기대하는 마음이 좀 더 커졌던 것 같아요.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어요. 전에 비하면 정말 비할 수 없이 가벼워짐을 느낍니다. 이제야 앞을 기대하고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된 것 같아서 6년이 지나서야 마음이 가벼워졌다는 걸 느낀 거 같아요. 11월은 마음의 정산이 이루어지는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생각을 안 하는 것 같지만 무의식 중에서라도 무언가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는 거 같고 그걸 결국 꺼내놓고 풀어놓으면 저도 제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어떻게 정리가 되는지 보이는 거 같거든요.


정리가 되지 않은 서랍을 열어서  '이런 게 있었구나. 이게 여기 있었네.' 하면서 하나하나 정리하고 버릴 건 버리고 넣어둘 건 넣어두는 시간이 되어서 원치 않게 갖게 된 기억해야 하는 날이 이제는 엄마가 주는 시간인 거 같기도 해서 11월이 마냥 서글프지는 않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쏟아낸 11월들의 마음을 보면서 정말 해마다 많이 달라진다는 걸 제 스스로는 느껴요. 글로 적지 못했던 마음들도 저는 아니깐요. 그래도 해마다 많이 내려놓고, 보듬고, 다듬어진다는 걸 알기 때문에 느릴지라도 이렇게라도 한 걸음씩 움직이는 것 자체가 스스로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입니다. 또 다른 시작점을 만들어 준 엄마에게도 슬프지만 고맙기도 합니다.


앞으로 1년 또 잘 흘려보내고 흘러가보도록 하겠습니다. :)


그 어떤 것에도 너무 오래 머무르지 않을 것.

느리더라도 조금이라도 흘려보내고, 흘러가며 걸어갈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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