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의 육아를 어렵고 복잡하게 꼬아버린 명령들
엄마가 되기 전에는 몰랐다. 더 정확히 말하면, 안다고 착각했다.
대중매체가, 언론이, 주변 사람들(특히 육아를 먼저 경험해본 이들)이 내가 엄마가 되기 전부터 애를 낳아 키우는 일이 얼마나 고되고 어려운지 열정적으로 말해준 '덕분에' 내게 임신과 출산, 육아는 어느 정도 각오를 요하는 일이었다. 그러나 막상 엄마가 되어 보니 엄마가 되는 일을 견디기 위해서는 그런 각오만으로는 어림없었다. 아무리 단단한 각오로 무장했다 한들, 엄마들을 집요하게 괴롭히는 전방위적인 명령들은 너무나도 복잡하고 촘촘하고 미세하게 엄마의 심리(특히 죄책감을 유발하는 심리)와 일상의 육아 실천 속으로 파고들어왔다. 이 책은 바로 그러한 메커니즘의 근원을 추적해나가는 이 시대의 귀중한 사회 비평이자 르포르타주이면서, 그러한 사회적 통찰을 자신의 개인적 경험과 위치를 부단히 성찰하여 길어올린 탁월한 에세이이기도 하다.
오늘날 소위 '육아 인플루언서'들, 특히 '육아 전문가'라는 커리어를 내세우면서 갈수록 커지는 이들의 목소리가 육아 현장에 드리우는 그림자를 이토록 날카롭게 분석한 글을 나는 아직 읽지 못했다. 특히 '육아 전문가' 오은영 박사의 위상은 예전보다 많이 수그러들기는 했지만, 그는 지금도 여전히 대중문화와 육아 담론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고수하고 있다. 그가 쓴 책은 어마어마한 인기를 끌었으며(몇 달 동안 대형 온라인 서점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상위권을 차지했다.), 각종 TV 프로그램에 출연했고(육아 코칭 프로그램뿐 아니라 부부 코칭을 넘어 '대국민 고민 상담'까지 영향권을 넓혀왔다.), 그의 말은 곧 우리의 일상 언어에 침투해왔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러는데...", "혹시 우리 애가 '금쪽이'인 건 아닐까 걱정 돼."1)같은 말들이 우리의 대화 속에 등장했다. 한때는 그의 말을 비판하거나 조금이라도 그에 관해 의혹을 제기하려 하면 곧바로 그를 비호하는 말들에 포위당했다.
그의 위상이 예전같지 않아지면서 그에 대한 수많은 비판이 쏟아져나오기는 했지만, 육아 문화와 육아 현장은 그다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오은영식 육아법(공감 육아, 기질 육아, 아이의 감정 표현을 '올바르게' 받아주는 법, 오은영식 놀이법 등...)은 육아 현장에서 규범적 우위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육아법을 따르지 않는 것처럼 보이는 양육자의 언행은 쉽게 비난받는다. 심한 경우 "그건 아동 학대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그 중에는 정말로 아동 학대인 경우도 분명히 존재하며 이는 분명 심각한 문제다. 그러나 이 책에서도 지적하는 것처럼 이러한 육아 규범은 실재하는 아동 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라기보다, '평범한' 양육자들이 스스로 자신의 육아 실천을 검열하고 육아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지 않으려면 끊임없이 이러한 육아 규범을 실천하려 '노력'해야함을 종용하는 데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이에 관한 근거는 이 책 속에 상세히 설명되어 있으므로 궁금하다면 일독을 권한다.)
심지어 오늘날 그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그가 점했던 바로 그 위치와 역할을 그대로 답습하는 현상은 의미심장하다. 그를 비판하는 다른 육아 전문가들이 등장했고,(이 책에서는 조선미, 하정훈을 언급하고 있다.) 그들이 하는 말이 기존의 오은영식 육아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일견 새로운 육아법을 제시하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그들의 이야기 역시 모든 육아의 문제점과 해결책은 오로지 양육자(엄마)에게 있음을 전제하고 강화한다. 그러므로 프레임은 여전히 견고하다. 엄마들이 무한히 죄책감에 빠질 수밖에 없는 이 구조, 미묘한 심리를 자극해서 엄마들이 스스로 육아에 대해서 무한 책임을 받아들이게끔 만드는 이 전제 자체를 의심하지 않고서는, 육아 현장의 혼란스러움과 딜레마, 그로 인한 좌절과 죄책감에서 빠져 나갈 구멍은 없다.
"오은영 박사님이 그러는데..."라는 말에 한 번이라도 움찔, 했던 경험이 있는 양육자라면, 이제는 "조선미"나 "하정훈"이 대세라며 오은영식 육아법을 비판하는 담론에 고개를 끄덕였거나 의구심을 가졌던 적 있는 양육자라면, 이 책을 그 두 손에 당장 들려주고 싶다.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은 아이를 키우면서 수없이 많은 순간에 속으로만 삼켰던 의구심과 불쾌감, 분노와 억울함, 다 포기하고 싶은 좌절감과 우울감 사이를 오갔던 나에게 그 무수한 심리적 고통과 분열의 근원에는 이 시대의 육아 문화를 복잡하게 꼬아버린 명령들이 있으며, 그러한 명령들은 절대적이지 않을 뿐더러 실현 가능하지도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시대적으로 권장되는 육아 방침은 계속 변화해왔으며, 모성에 무한한 책임(을 가장한 비난)을 지우는 모성 (비난) 신화는 매우 유구한 역사 속에서 형태를 바꾸어 가며 현재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그 결과 오늘날 육아 명령들은 서로 공존하기 어려운 모순을 내포하고 있고, 이 모든 명령을 완벽하게 수행하기란 불가능하며, 이를 실천하는 양육자(주로 엄마)는 끊임없이 모순되는 명령 사이에서 분열하고 갈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로 인해 발생하는 모든 문제들에 대한 책임은 엄마에게 있으므로 엄마는 끊임없이 자신이 수행하는 육아를 검열하고 죄책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이 죄책감을 적절히 해소하는 일 역시 엄마의 몫이다. 엄마는 정신적으로 '건강'하고 '행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행복해야 아이도 행복하다."라는 일견 무해해보이고 엄마를 위로하는 듯한 말 속에는, 엄마의 행복이란 그 자체로 추구해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행복이라는 목적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점이 내포해 있다. 그러니까 엄마의 행복은 엄마 자신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아이를 위해 달성해야 하는 의무다. 엄마의 불행은 그래서 문제적이고, 엄마가 불행하고 우울하다면 이 또한 엄마로 하여금 죄책감을 갖게 만든다.
엄마는 이러한 부정적인 감정과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하며,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감당하고 처리하는 일 또한 스스로 해내야 한다. 엄마는 자신의 정신 건강 상태를 끊임없이 의심하며 인터넷에서 '우울증 자가 테스트'를 검색하다가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되거나, 사회적으로 만연한 "산후우울증" 혹은 "육아우울증" 담론에 자신의 경험을 대입시키면서 스스로가 '우울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의심하게 된다. 이로 인한 폐해는 더욱 심각한데, 엄마의 '우울증'은 육아에서 반복되는 문제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진정으로 자신의 탓으로 돌릴 수밖에 없는 강력한 근거로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어떤 식으로든 엄마는 이 모든 구속, 이 모든 엄마 탓, 이 모든 책임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런 엄마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나는 그러한 명령들로부터 어느 정도 거리를 두고 육아에 있어서 나의 역할과 책임, 한계를 수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엄마로서 완벽에 가까워지려는 노력을 포기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육아에 있어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더 나아져야 한다는 강박을 버리고 나자 나는 예전보다 훨씬 육아에 있어 자유로움을 느끼고, 그 자유가 나를 더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 편안하게 해주었으며, 그 결과 아이들과 조금 더 나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엄마가 되었다. 다시 말해, 더 나은 엄마 되기를 포기한 결과 나는 그로부터 해방된 동시에 실제로 더 나은 엄마가 되었다(고 느낀다)는 말이다.(혹시 오해할까봐 덧붙이자면, 나는 결코 내가 "완벽한" 엄마라고 여기지 않지만, 이제는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편으로 이 책은 이 시대의 육아를 어렵게 만드는 원인을 새로운 관점, 즉 육아 문화를 조성하고 육아 명령을 갈수록 복잡하게 만들면서 문제의 근원을 은폐하는 사회심리적 비판이라는 관점으로 분석해낸 저작이다. 만일 현재 우리나라 출생률이 너무 낮아서 우려된다면, 그래서 도대체 이 시대의 육아를 어렵고 고통스럽게 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파헤치고자 한다면 이 책을 일독하기를 권한다. 엄마에게 육아에 대한 무한 책임이 주어지는 한, 이 사회에서 강요되는 심리 구조에 내재한 문제를 바꿀 생각보다는 그저 엄마들에게 '올바른' 육아법을 가르치려고 드는 방식만을 고수하는 한, 조선미든 하정훈이든 그 모두를 뛰어넘는 육아의 '신'이 오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1) '금쪽이'는 오은영 박사가 출연한 육아 예능 프로그램 <금쪽같은 내 새끼>(채널A, 2020~)에서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금쪽이'라고 지칭한 데서 유래해, 지금은 예능을 넘어 이를 보편적으로 지칭하는 단어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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