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세요
4박 5일 해외 출장을 갔던 남편이 어제저녁 집에 돌아왔다. 나흘 만에 만난 남편 얼굴을 물끄러미 보던 나는 물었다.
"...누구세요?"
"남편이다, 요 녀석아?"
귀국을 축하하는 의미에서 남편이 좋아하는 소머리국밥을 먹으러 갔다.
이번 출장의 준비부터 모든 책임을 맡았던 남편은 떠나기 전부터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 10명 가까운 인원이라 더 부담이 컸던 것 같다. 출장 직전에 갑자기 치과 치료를 시작하면서 몸도 마음도 지쳐 보였다. 어쨌든 별일 없이 돌아왔고 국밥을 먹으며 신나게 밀린 수다를 떨었다.
집으로 가는 길, 남편이 가방에서 초콜릿 한 상자를 꺼냈다.
"엥? 웬 거야?"
"회사에 돌리고 남았어. OO 씨도 주고 OO 씨도 주고 의무실에 간호사님도 줬어."
"간호사님은 왜?"
"가기 전에 비상약 키트 같은 걸 하나 만들어 달라고 했거든. 혹시 거기서 누가 아프면 필요할 것 같아서. 근데 진짜 요긴하게 썼어. 엄청 잘 만들어주셨더라고. 그래서 고마워서."
"와..."
남편은 내가 아는 최고의 무계획형 인간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생각했다니 놀라움에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게다가 집에서 언제나 팬티 바람인, 시도 때도 없이 엉덩이춤을 씰룩씰룩 추는 남편이 알고 보니 은혜에 보답할 줄 아는 천하제일 지성인이라니.
"그런데 집에서는 왜 그러는 거야?"
"뭐가?"
"집에서는 바보 멍충이 같은데 밖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똑똑하냐고."
"아~ 나는 집에서는 말랑말랑한 귀염둥이니까."
"뭐라고?"
가끔 도롱도롱 코를 골면서 자는 남편 얼굴을 보면 이 조그만 친구(나보다 훨씬 큼)가 어떻게 밖에 나가서 일을 하고 돈도 벌어오나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그게 가능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오늘 아침에 일이 있어서 일찍 나오면서 남편에게 몇 가지 부탁을 했다.
"내 거랑 여보 운동화 세탁소에 갖다주고 지난주에 맡겨놨던 옷들 좀 찾아와 줘. 그리고 이따 나 데리러 올 때 저 셔츠 갖고 와야 해. 스타벅스 갈 거니까 텀블러도 들고나오고."
남편은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뭐야, 그 표정은?"
"나는 집에서는 뒹굴뒹굴 귀엽기만 할 거야. 그런 복잡한 건 모른다고."
"...ㅎ"
나도 모르게 썩은 표정을 짓고 말았지만 저 중에 하나 정도 빼먹어도 귀여우니까 봐주고 말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