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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으로 가는 길

성공했음

by 초롱


8월 한 달을 자격증 시험에 불태우고 나니 (떨어졌다) 오른쪽 어깨가 아팠다.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릴 때 점점 불편해지더니 아예 안 올라가기 시작했다. 뭔가 문제가 생긴 게 확실한데 알고 싶지 않아서 차일피일 미루다가 열흘 전 병원에서 검사를 받았다.

"오십견이네요."

"에???"

치료받으면서 '마흔을 앞두고 오십견이라니, 그럼 오십을 앞두고는 육십견인 건가' 말도 안 되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 나는 3개월 뒤 마흔이 된다.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될 때는 한 달에 두어 번 역시 이 일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고 투덜대는 방송작가였고 월세 40만 원의 6평 원룸에 살았으며 고시생 남자 친구가 있었다. 딱 10년이 지난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역시 이 일은 나랑 안 맞는 것 같다고 투덜대며 방송 일을 하고 있다. 은행 님의 도움으로 아파트에서 전직 고시생, 현직 8년 차 직장인인 남편과 산다. 그래. 이 정도면 성공했다(?).


10년 사이에 이룬 것과 잃은 것들이 뒤섞여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 확실한 건 스물아홉과 서른아홉의 마음가짐은 다르다는 건데 뭐랄까,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이를테면 몇 년 전의 나는 자격증 시험에 죽기 살기로 매달리고 잘 안되면 울고 소리 지르고 빨개지도록 허벅지를 찰싹찰싹 내리쳤다. 그때 그 자격증을 아직도 못 따고 있는데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안 되는구나. 또 안 되겠네. 그냥 하지, 뭐. 이번 시험에는 우황청심환도 먹지 않았다. 떨리네. 떨려도 해야지, 뭐. 그런 마음으로 들어가서 덜덜 떨다가 또 떨어졌다. 괜찮다. 내년에 또 하지, 뭐. 어디선가 꾸준한 것도 재능이라는 글을 보고 나는 정말 재능이 쩐다(!)고 좋아했다.

최근 회사에 문제가 생겨 타의로 퇴사를 해야 될 수도 있는 상황에 놓였다. 아무렇지도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면 좀 낫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그 밖의 일은 되는 대로. 회사 나간다고 세상 망하지 않는다는 걸 이제는 안다. 14년 동안 온몸으로 배운 교훈으로 불안을 달랠 줄 아는 프리랜서가 되었다. 그래. 이 정도면 성공했다(?).


어제 퇴근하고 남편과 야구를 보러 갔다. 각자 1시간 반 거리를 남편은 운전해서 나는 기차 타고 왔더니 이미 8회 말이었다. 저녁도 못 먹었지만 목청껏 응원했고 끝내기 안타로 이겼다. 경기가 끝나고 하늘에 반짝반짝 뿌려지는 불꽃들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딱 이 정도만 보고 살자고. 눈앞에 있는 것 정도만. 너무 멀리 보고 미리 걱정하지 말자고. 그럼 10년 뒤에 지금보다 괜찮은 마흔아홉이 되어 있지 않을까. 좋은 가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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