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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냇물 Nov 21. 2024

[중동12] 이겼어도 진 '수에즈' 전쟁

제2차 중동전쟁

4차례의 중동전쟁 중 '수에즈 운하 주도권' 확보가 주목적이었던 이 전쟁은 '수에즈 전쟁(=제2차 중동전쟁)'이라고 불린다.


1차 중동전쟁후 PLO 소속의 무장 단체인 Fedayin은 1950년 초부터 이스라엘 곳곳을 습격하여 휴전된 상태인데도 불구하고 아랍과 이스라엘 간의 교전상태는 지속되고 있었다.

1952년 쿠데타로 권력을 장악한 이집트의 나세르는 군비증강, 수에즈운하 국유화, 영불 인력 축출, 아카바만 봉쇄, 통일아랍제국 주창 및 통합사령부(이집트, 시리아, 요르단) 설치 등 강경정책을 연이어 취하자


이스라엘은 이집트 군이 더 강력해지기 전에 제압하고, 해상봉쇄망 개척하며, 게릴라 소탕하겠다는 목적으로 선제공격을 개시했다.  


‘56.10.29 다얀장군이 지휘하는 이스라엘 군은 3개 축선으로 선제공격을 하여 5일 만에 시나이 반도 대부분을 점령하였고,

영국과 프랑스군도 수에즈 운하 일대에 직접 개입하였다. 그러나 UN의 적극적 개입으로 11월 7일에는 전투가 중지 되었다.


이번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스위스 동원제도를 창조적으로 모방한 국민 총동원 제도를 정립/적용하였다.


조종사, 공수부대원 등 핵심요원은 사전 비밀동원하였으며 예비군이 전쟁의 주력으로 활약하였고,


작전술 측면에서는 공수부대와 차량화부대 연결하는 전격전 형태 작전을 구사하였다.


전쟁결과 승자 이스라엘아카바만 자유항해는 보장되었으나, UN의 압력으로 점령지 시나이 반도에서  철군해야 했고,


영국과 프랑스는 수에즈 운하 국제화에 실패했으며, 오히려 중동지배를 종식 하는 계기가 되었다.  


반면 패자인 이집트수에즈 운하를 확보했고, 나세르는 아랍연맹의 강력힌 지도자로 부상하였다.


즉 이스라엘은 전쟁에 이기고 외교에 실패한 것이다. 전쟁의 목적, 시기선정과 주변국 상황파악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잘 보여준 전쟁이다.

전쟁은 신중히 검토하고 피아 상호실정을 파악하고 결정하라는 손자병법의 가르침이 생각나는 아쉬운 전쟁이다. 


하여튼 중동은 조용한 날이 없는 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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