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선생님. 베스트 교육입니다. 제주도에서 아이들 올라왔는데요. 수업 가능하세요? 압구정 ㅇㅇ호텔로 오시면 됩니다."
나는 당연히 첫 미팅이 호텔 로비인 줄 알았다.
시간을 맞춰 5성급 호텔에 들어섰을 때 새초롬한 여자아이가 로비 한편에 서서 게이트로 들어오는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유정 학생인가요?"
고개를 끄덕이며 인사하는 무표정한 그 학생은 갑자기 엘리베이터로 향하여 능숙하게 키를 엘리베이터 안쪽 패드에 갖다 댄 후 15층을 누른다.
등 떠밀려 엘리베이터로 들어온 나는 어리둥절하여 두리번거리며 다시 말을 걸어본다.
"아, 어머니가 방에 계시나 봐요?"
선생님을 혼자 마중 나왔다고 생각했지만 학생은 귀찮은 듯 고개를 두 번 좌우로 흔든 후,
"저 혼잔데요. SAT 수학 두 시간 수업 맞죠?"
'아... 첫 미팅이 아니라 정말 호텔에서 수업을 하라는 얘기구나! 잉? 여기가 하루에 얼만데.. 두 달을 하라고?'
휴가로 언젠가 호텔로 호캉스를 가게 된다면 가보고 싶었던 모던한 느낌과 5성급 특유의 분위기가 있는 그곳을 이렇게 와보다니 엘리베이터에 서있는 나의 모습이 너무 어색하다.
학생을 따라 복도 중간에 있는 그녀의 방으로 들어갔다. 보통 호텔 디럭스나 트윈룸 내부는 침대와간단히 앉을 수 있는 작은 원 테이블 그리고 티비가 있는 화장대가 있다. 그러나 이곳은 특이하게도 작은 테이블 외에 그것의 두배 정도 돼 보이는 큰 원형의 테이블이 방 문을 열자마자 위치해 있고, 바닥엔 금방 짐을 푼듯한 커다란 트렁크와 이곳저곳에 널려있는 배달음식의 흔적들 그리고 화장대에는 화장품과 향수가 널브러져 있다. 문에서 바로 보이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창문은 멀리 압구정과 강남의 풍경이 펼쳐져있다.
"올라온 지 얼마 안 되었나 봐요? 집은 어디예요? 제주도예요? 기숙사에서 살아요?"
그날부터 내 학생이 된 유정이는 놀랍게도 집이 호텔 근처 강남의 어디쯤이었다. 제주도에서는 미국 명문 국제학교에서 11학년 그러니까 우리나라 학년으로 치면 고등학교 2학년이고 기숙사 생활중이었다. 방학이라 서울로 왔지만 호텔 근처의 SAT, TOEFL학원들과 예술대학 포트폴리오를 준비해주는 미술학원 등을 집중적으로 다니기 위하여 호텔에서 두 달간 머물다 간다. 이렇게 방학마다 호텔에서 생활한 것은 7학년(중1)부터였다고 한다. 국제학교는 10 년째 다니고 있다고 했다.
'아니 무슨 호텔집 딸도 아니고 집도 차로 20-30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에 그동안 가족도 보고 싶었을 텐데.'
돈도 돈이지만 그런 아이디어에 감탄했고 도대체 부모님의 재산이 얼마나 돼야 이렇게 할 수 있는지 놀라웠다.
그러나 이건 놀라운 일이 아니었다. 좀 더 쇼킹한 것은 이 일대 호텔과 오피스텔은 방학마다 유정이와 같은 학생들이 제주도에서 한국학원의 족집게 사교육을 받기 위해 몰려들어 한두 달 전에 미리 예약을 해두지 않으면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학원은 간판도 없지만 알음알음 알아서 찾아오는 학생들과 1억이 무슨 여행 패키지인 양 부르는 대학 컨설팅비, 이러한 고객들을 소개하고 나 같은 선생님들을 구하러 다니는 에이전시들. 이 모든 것을 알게 되던 날 밤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었다.
한때 압구정과 한남 부유층 학생들을 가르친 적이 있었는데 그때 받았던 문화 충격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당시의 아이들은 대치동에 있는미국 교과서를 가르치는 학원을 다니며 서브로 이 숙제를 하기 위한 과외를 하거나 한국 문법을 배우는 영어 학원을 두세 개씩 다니는가 하면, 호텔 피트니스에서 개인 PT를 받고, 1년에 멤버십 비만 1억이 넘는 회원인 것이 매우 자연스러웠지만 엄격한 가정교육으로 겸손함의 인격까지 갖춘 아이들로 나의 편견을 깨면서 동시에 완전 다른 세상이 존재함을 알게 해 주었다.
국제학교의 아이들은 이보다는 더 전국적이고 다양한 부모님들과 학생들이 각자 원하는 인가 또는 비인가의 학교를 선택하여 시험을 보고 들어가는 유학의 비숫한 형태였다. 특히 인가를 받은 학교들은 본토에서 분점을 내서 본래 학교와 같은 교육 시스템을 그대로 배워나가 그 교육의 질이 높았다. 다만 분위기는 내가 가끔 기분전환으로 보는 미드(미국 드라마) '가십걸'에 나오는 부유층의 아이들이 몰려있는 그런 고등학교, 뉴욕의 어마어마한 집들과 호텔에서 생활하며 파티를 즐기지만 결국엔 좋은 대학에 들어가 부모님의 부를 잇는 아이들의 한국 현실판 정도 되는 느낌이었다.
제주도에는 4개의 국제학교가 있다. 미국 학교가 두 곳이고 캐나다 여학교 그리고 영국 학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곳을 택하는 학생들은 미국이나 캐나다 등 외국으로 유학을 가지 않아도 그 모든 커리큘럼을 그대로 가지고 들어온 본토 학교의 어마한 시설과 프로그램으로 그 뛰어난 교육의 질을 누릴 수 있다. 또한 외국으로 유학을 가기 전 적응을 하고 가기 위한 준비 방법이기도 하다. 또 다른 수요는 중국 부호의 자녀들이다.
"선생님, 중국 애들은 승마도 자기 말로 해요!"라고 해서 웃기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학교들은 매년 수차례 최고급 호텔에서 설명회를 개최하고 많은 수요의 학부모들이 그곳에 참석하며 입학하기가 만만치 않아 작문과 인터뷰 수학 영어 등의 시험을 통과해야만 한다.
국제학교는 인가 학교와 비인가 학교가 있다. 인가학교는 한국에서 학력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가령 학생이 중1학년 일 년만 국제학교를 다니고 한국의 일반 중학교로 돌아온다고 했을 때, 인가 국제학교를 다녔던 아이들은 중 1 학년을 인정해 그다음 학년으로 들어갈 수 있다. 또는 중학교 3년을 국제학교에서 졸업을 하고 한국 고등학교로 돌아올 경우 그 학력이 인정되어 한국의 일반 고등학교로 진학이 가능하다. 이에 반해 비인가 학교는 학력 인정이 되지 않아 대안학교를 간 것과 마찬가지로 학력을 인증받으려면 검정고시 시험을 치러야 한다. 학비가 거의 배로 차이가 나는 이유 중의 하나도 학력인증이 포함되어있다.
'일 년에 일억 이라던데...'
그렇다. 학년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학비와 기숙사비등으로 인가학교는 그 정도의 비용이 든다. 그리고 학교를 들어가면서 기부금을 내는 학교도 있다. 학교들은 최고의 시설을 보유하고 있으며 그 규모가 어마하고 각종 질 좋은 커리큘럼을 보유하고 있다. 학생들도 이국적인 환경에서 다양한 교육을 받으며 열심히 공부한다. 보통 미국이나 영국 캐나다 등의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학교에서는 이에 맞추어 현지와 같은 교육시스템을 가르친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이에 대비하는 우리나라의 공교육과, 이러한 국제학교들의 교육 대응을 바라보면서 아이의 학부모로서 사교육 선생님으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2020년 2월 말경부터 전 세계의 모든 도시가 멈추면서 회사를 가는 대신 줌이라는 화상회의를 시작하게 되었고, 3월부터 새 학기가 시작되는 학생들도 온라인과 EBS로 학교 수업을 대신하게 되었다.
선생님도 학부모도 학생들도 처음인 이 상황에서 한두 달이면 끝날 것이라는 예상이 빗나가면서 교육열이 높은 대한민국은 공교육에 대한 불평을 하기 시작했다. 초등학생은 EBS를 활용한 수업을 듣기 시작했고 시간이 지나서 일주일에 3-4번 정도 학교를 가거나 온라인으로 수업을 했다. 이에 비해 학교 인원이 적은 인가, 비인가 국제학교는 학교로 등교를 하거나 온라인 수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비교적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하기 시작했고, 이를 알게 된 많은 학부모들이 국제학교에 많은 관심을 보이면서 2020년 여름부터는 국제학교 시험을 보기 위한 수업 문의가 매우 많아졌다.
2020년 4월 5월은 영어 과외 선생님인 나의 소득은 0원이었다. 코로나 초기에는 아무도 과외하지 않았고 코로나에 대한 두려움으로 다들 집에서 마스크 구하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그러다 여름이 가까워지면서 학부모들은 코로나로 인하여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에 불안해하기 시작하여 대형 학원보다는 과외선생님을 찾게 되었고 집안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하여 그동안 받지 못했던 교육을 보충하기 시작했다. 그 수요는 점점 더 증가하여 과외선생님을 찾기가 힘들 정도이다. 나의 경우도 과외 선생님 생활 15년 중 제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국제학교를 대비하는 학원에서도 학교를 입학하기 위한 시험대비반을 만들기만 하면 인원이 다 차서 대기가 있을 정도이다. 영어 시험과 수학시험 작문과 인터뷰를 2달 정도 준비하여 제주도나 송도로 시험을 보러 가거나 비인가 국제학교에 시험일정을 잡는다. 인기가 있는 국제학교는 많은 수요로 인하여 기존의 반에 새로운 반을 만들 정도이고 시설도 더 늘리고 있다. 제주도의 학교 근처에는 내신을 대비해주거나 미술 등으로 입시를 하는 학생들을 위하여 서울의 학원이 분점을 내고 보통은 일반 과외비의 3-4배 정도의 수업료를 받는다.
앞서 말한 유정이도 평소에는 학교를 다니며 제주도에 있는 내신 학원과 미술학원을 다니다가 방학이 되면 서울로 와서 입시를 위한 시험 또는 선행을 위하여 학원을 다니는 것이다.
그렇게 비싸고 좋은 학교인데 왜 한국의 사교육을 받는가?
앞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인가학교의 학비는 웬만한 직장인의 자녀는 다닐 수 없는 금액이며 비인가 학교도 인가 학교의 반 정도 든다고 하지만 만만치 않은 금액이다. 한국의 공교육을 받는 아이들도 학교를 다니며 같은 교육을 받지만 각자의 능력이 다르고 원하는 진로가 다르므로 학원이나 과외를 한다. 국제학교 아이들도 이와 비슷하다. 대한민국은 사교육이 매우 특화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고 학원을 다니지 않으면 불안할 정도로 거의 모든 아이들이 한두 개씩은 사교육을 받고 있다. 국제학교 아이들도 대학 목표가 다르고 또 언어면에서 원어민이 아닌 아이들이기 때문에 그 불안감과 목표의식에 의해 사교육을 받는 것이다. 학비 자체가 높은 수준으로 책정되어있고, 국제학교의 과목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도 당연히 유학파 이거나 원어민 등 이므로 사교육비도 이에 따라 높아질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유학을 다녀오는 것이 매우 특별한 시절이 있었다. 영어를 할 줄 아는 것 자체만으로도 좋은 회사에 유리하게 취업이 가능하고 먹고사는 데에 걱정이 없었지만 해외로 연수와 유학이 쉬워지고 그 비용도 많이 저렴해지면서 영어를 능숙하게 하고 외국에서 학교를 졸업했다는 조건은 주위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경우가 많아졌다.
현재의 국제학교를 다닌다는 것은 영어를 할 줄 아는 능력 있는 성인으로의 발판이 아닌 여러 형태의 학교 사이에서의 개인의 선택이다. 이 선택을 경제적인 이유로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나 그렇다고 특권의식을 가질 만큼의 대단한 사실도 아니다. 유학의 길이 소수의 길이 더 이상 아닌 것과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