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나무 Jan 21. 2022

건물주의 딸-경제교육은 어디서 받아야 하나요?

방학이면 호텔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지인의 소개로 6학년 여자아이의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지인은 작은 카페를 하는데 언니 동생 하던 그 건물의 주인과 대화를 나누던 중 선생님을 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이 났다고 한다.


어렸을 적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던 지윤이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다양한 스타일의 미술 사교육을 받았고 자연스럽게 예술중학교 입시에 도전하기로 했다. 그러나 미술에 소질이 있는 것과 예술중학교의 합격을 위한 미술은 개념 자체가 달랐다.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즐겁게 그림을 그리던 지윤이는 하루 열 시간이 넘는 실기 시간 동안 서너 개의 그림을 외우듯이 그려야만 했고 이어지는 평가에서는 10시간이 무색하게 혹평을 받으며 6개월을 견뎠다. 어머니는 자꾸 주눅이 들어가는 딸을 바라보며 큰 결심을 하고 붓에서 손을 떼게 하셨다.


지윤이가 미술에 온 시간을 바치는 동안 학과 공부가 뒷전이 되면서 그전에 해오던 영어 수학들을 많이 잊어버리게 되었고 다급해진 모녀는 선생님을 구하기 시작했다. 내가 처음으로 방문하여 아이를 테스트했을 때에는 6개월 뒤 중학생이 되는 실력치 고는 많이 모자랐으며 그동안 미술학원에서 비판을 하도 많이 받아서 선생님의 눈치만 늘었다. 아이를 달래며 칭찬을 많이 하면서 수업을 진행해도 이미 자신의 기력과 자신감을 상실한 아이는 의욕이 많이 떨어졌다. 어머니께서는 아이가 많이 지쳤지만 공부가 많이 불안하시다며 수업시간을 오히려 늘리기 원하셨다.


지윤이를 가르친 지 3개월쯤 되었을 때 나의 전셋집에 문제가 있어서 그즈음 집 문제를 계속 고민하고 있었다. 수업시간에 울리는 전화를 물끄러미 보던 지윤이는 급한 전화가 아니냐며 받으라고 했다.


"아니야 전셋집 때문에 부동산에서 전화 온 건데 이따가 해도 돼."


"전셋집이 왜요?"


"응 임대인이 이번에 집에 대한 가처분.. 아니다. 내가 얘기하면 아니? 한다도 해결될 것도 아니고, 이거 읽자."

6학년밖에 안 된 아이가 당연히 알 필요도 없고 알 일도 없을 이야기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지윤이의 대답은 예상 밖이었다.


"선생님, 전세 만기가 언제신데요? 가처분은 소송한다는 거예요?......"

나는 한참 이야기를 하던 지윤이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응? 네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야 장난 아니다. 너 뭐야?"


6학년이 아니라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 내지는 부동산 사장님 입에서 나올만한 조언을 말한 지윤이가 다시 보였다. 그저 미술 하다가 끈기 없이 버티지 못하고 징징거리며 때려치우고 그동안 공부는 쥐뿔도 안 한 앞으로도 그렇게 공부로는 빛을 보지 못할 그런 건물주의 딸이라고 여겼던 나는 이 아이가 궁금하고 그들의 부모가 궁금했다.


지난 몇 개월 동안 영어 수학이 너무 밀려서 그것을 따라잡느라 서로의 사적인 이야기도 하지 않고 문제집에 코를 박고 있었던 우리는 그날 서로의 눈을 보며 대화를 시작했다.


지윤이의 부모님은 자수성가형 건물주다.

전국에 건물뿐 아이라 토지와 아파트 등을 소유한 빵빵한 부자다. 그러나 시작은 작은 빌라에 방 한 칸짜리 집이었다. 남편은 국산 자동차를 파는 영업사원이었고 어머니는 고등학교 졸업 후 건축사무소의 경리를 오랫동안 하시다가 두 분 모두 부동산 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하였고 아버지는 작은 부동산 중개소를 오픈하셨다. 당연히 자동차 영업은 계속되었다. 주말이나 시간이 될 때마다 전국의 건물과 땅을 보러 다니고 연구를 한끝에 10년 만에 이룬 쾌거였다. 시대의 흐름을 타주기도 하였지만, 돈을 굴리면서 쓸데없는 데에 사치를 부리지 않는 것도 큰 몫을 한 것 같다. 지윤이 집을 처음 방문했을 때 건물주의 딸이라고 하여 내심 으리으리한 집과 차 집안 인테리어를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심플하고 차도 아주 오래된 국산차가 집 앞에 서있었어 놀랐다. 두 분은 지금도 일 년 내내 바쁘시고 주말도 없으시다. 어머니께서 잠시 쉬시던 적이 있으신데 몇 주 못 가서 다시 사무실을 내시고 전화기를 드셨다. 바쁜 부부의 딸인 지윤이는 초등학교 일 학년이 되면서부터 혼자 밥을 차려먹고 알아서 숙제를 했다. 지윤이는 나에게 자랑하듯이 초2부터 라면에 계란을 풀고 파를 썰어서 해먹은 아이는 자기밖에 없을 것이라고 했다.


학년이 높아지면서 집안일을 돕기 시작했는데 간단한 설거지와 빨래 돌리기 등을 부모님 대신하여 용돈 벌이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수업을 하다가 무심코 소파에 각 잡혀 쌓여있는 수건을 보고 감탄하며 물었다.


" 네, 제가 접은 거예요. 수건은 한 장당 100원이고요. 이번 토요일 정산해요."

누가 들으면 애 혼자 있는 것도 불쌍한데 뭐 그리 부려먹냐고 하시겠지만 성인이 되어도 자기 옷 하나 잘 접지 못하고 라면도 못 끓이고 세탁기는 어머니가 돌려주시는 많은 어른들보다 훨씬 독립적이고 또한 돈에 대하여 가치의 개념이 잡힌 지윤이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지윤이는 평소 부모님의 대화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시공사와 시행사가 무엇인지 임대나 금리가 무엇인지 환율과 주식이 무엇인지를 스펀지 스며들듯이 학습이 되었다. 부부는 그 개념을 공부하듯이 가르치기보다는 예시를 들어가며 아이를 너무 아이 다루듯이 하지 않았고 지윤이는 같은 나이 또래 아이들보다 그런 면에서 경제에 대해 유식하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산소나 다름없지만 학교나 학원에서 또 집에서 부모님들은 아이에게 돈에 대하여 가르치지 않는다. 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생이 되고 졸업을 해도 금리가 무엇인지 양적완화나 환율차익 등이 무엇인지 그것이 자신의 생활과 삶에 관계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나중에 경제적으로 문제가 생기거나 무지한 경우가 태반이다. 한국 사람들에게 돈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은 탐욕스럽고 위험한 것이며 돈만 밝히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일쑤다.


나도 지윤이에게 그리고 나의 딸에게 학생들에게 영어, 수학만 잘하기를 바라고 가르쳤고 나 자신도 나라의 경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관여하려 하지 않는다. 그러나 경제적 어려움이 닥쳤을 때 내가 조금만 알았더라면 누가 기본 개념에 대해 멘토링만 잘해줬더라면 아주 사소한  돈의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한적도 있다.

지윤이는 당장의 영어 수학은 모르지만 뉴스에서 나오는 세상이 돌아가는 정세와 경제를 듣고 이야기할 수 있다.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진정 가르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는 아이들에게 좋은 학교를 가서 좋은 직장에 취직하고 돈을 벌어 풍요롭게 살기를 바라면서 정작 돈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심어주지 않고 있다. 그저 명문대에 들어가기 위해 점수에 목숨 거는 쪼잔한 어른을 만들어 내는 건 아닐까.

명문대를 나와 대기업에 들어가서 탄탄대로로 삶을 살아가는 시대는 끝이 났다.

모든 것은 로봇에게 내어주고 현재의 직업 중 반이상이 살아지는 가까운 미래에 대비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것은 4등급에서 2등급을 만드는 족집게 문제 풀이 방식은 아닐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방학이면 호텔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