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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나무 May 27. 2022

일반학교에서 살아남기

방학이면 호텔에서 공부하는 아이들


'뭐가 이상한 거지? '


내 말을 알아듣고 나의 눈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는 이 아이는 마치 ARS에서 들리는 기계적인 모습과 인간 그 중간 어디쯤이었다.

10개의 쉬운 영단어를 시험문제로 낸 후 그 시험지를 앞에 두고 어머니와 마주 앉았다.


"어머니, 계속 영어 과외를 하셨다고 하셨죠?... 그런데 이걸 보시면..."

너무 쉬운 단어도 다 틀려버린 시험지를 어머니께 내보이며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하.. 영어 과외를 계속했는데...... 어쩌면 좋죠? 얘가 국어도 좀 못하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그 당시의 나는 많은 아이들을 수업해본 선생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문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도 못했고, 단지 간혹 단어를 외우기 어려워하는 아이 중 하나겠거니 여기고 수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영어 단어를 외우는 방법은 아이마다 조금씩 달라서 어떤 아이는 쓰고 발음하면서 외우고 어떤 아이는 단어장을 사진을 찍듯이 응시하여 단어의 위치나 모양을 익히고, 또 어떤 아이는 여기저기 붙여놓고 눈에 많이 노출을 시켜서 외우는 아이들도 있다.

나는 지훈이에게 내가 아는 모든 방법을 이용하여 단어 외우기를 시켰다.

그러나 단어는 물론이고 문법이며 독해를 하면 할수록 나는 늪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다음 과외비를 받기가 미안할 만큼이나 지훈이는 그 자리를 맴돌고 있었고, 지훈이와 대화를 할 때면 같은 말을 반복하는 것도 의심스러웠다.


어느 날 나는 학습적인 것이 아닌 지훈이의 학교생활이 궁금했다.


"지훈이는 학교에 친구가 많니?"

초등학교 4학년 남자아이면 학교 생활도 그렇지만 하교 후에 딱지 치기도 하고 게임을 하러 삼삼오오 피시방도 갈 텐데 이 아이는 왠지 과외 선생님이 친구인 것 같았다.


"저는 친구가 없어요. 2학년 때 애들이 제 바지를 친구들 앞에서 벗겨서 창피했어요."


갑자기 심장에 칼을 맞은 듯 아프다.

"뭐? 어머나 너무 나쁜 친구들이구나!...... 그래도 좋은 친구들도 많아.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하고도 잘 지내봐. 지훈이는 착하고 말도 예쁘게 하고..."


"제가 말을 예쁘게 해요? 저는 말을 많이 외워야 한데요."


'말을 왜 외워야 할까?'

이 말을 들은 후로부터 학습적인 것이 아닌 근본적인 어떠한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고 이것이 그동안 이런저런 방법을 다 동원했어도 늘지 않았던 그 아이의 실력과 관계가 있음을 알았다.

언제나 신경질 적인 아우라의 그의 어머니에게 직접적으로 아들의 문제가 무엇인지를 묻기가 참으로 어려웠지만 6개월이 지나가면서 상담을 하며 용기를 내어 묻기로 했다.


나는 최대한 미소를 지으며 말문을 열었다.

"어머니... 지훈이가 그러는데요. 2학년 때 몇 아이들이 반 아이들 앞에서 창피를 줬다는 데 아세요?"


어머니의 얼굴과 목이 빨갛게 변하고 매우 당황하신 표정을 지으셨다.

"지훈이가 그렇게 말해요?...... 그래도 선생님이 편했나 보네요. 그런 말도 하고."


조금 멈칫하시던 어머니는 말을 이어가셨다.

"지훈이는 자폐와  ㅇㅇ증후군의 경계에 있어요. 특수학교는 갈 정도는 아니구요 당연히. 학습이 된데요. 대신 매 학년 올라갈 때마다 제가 학교를 찾아가서 지훈이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떨어뜨려 달라고 교장선생님께 부탁드리러 가죠. 힘들지만 들어주시고, 그렇죠."


그래서였다. 지훈이는 보통 아이들과는 다른 증후군과 자폐 경계선에서 일반학교를 다니기 위한 노력을 매일매일 하고 있는 것이었다. 언어가 특히 약한 이 증후군은 상황에 맞는 말을 학습하여야 하는 특징이 있었다. 그래서 매 과외를 시작하기 전 수업을 마치고 나가시는 국어 선생님께서 거의 매일 오셔서 그 아이와 놀이도 하고 책도 읽고 상황극도 하면서 말을 학습시키고 계셨다.


지훈이가 6살이 될 무렵 어린이집의 원장님께서 어머니께 연락을 주셨다고 한다.

6살 정도면 어느 정도의 문장을 완성하여 말을 할 줄 알지만 지훈이는 그것이 힘들었고 또한 눈을 마주치지 않아 자폐가 의심되어 검사받아보기를 권유하셨다고 한다.


하나밖에 그것도 어렵게 임신이 되어 가진 귀한 아들에게 모든 걸 다 해 줄 수 있을 만큼의 여유가 있고 특별한 걱정이 없었던 부부는 평생 이 아이의 증상을 함께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병원에서 검사 결과를 받은 후부터, 지훈이는 엄청난 양과 종류의 사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인위적인 학습의 자극으로 이 아이의 문제를 극복하여 일반 아이들과 같이 성장하기를 바라고 바라시며...



임신을 한 모든 임산부라면 한 번쯤은 생각해봤을 것이다. 머리가 좋고 잘생기고 예쁘고는 다 필요 없고 손가락 다섯 개, 발가락 다섯 개 그리고 건강상 아무 이상이 없는 그런 아이가 태어나 해맑게 자라나기를 하늘에 소원한다. 나도 그랬다. 한 번의 유산 경험으로 아이가 아기집 안에서 10달 정상범위 안으로 잘 자라나기를 그리고 태어나는 날 아무런 문제 없이 엄마 배를 나와 때에 맞는 옹알이를 하고 뒤집고 걷고 말하고... 지금도 이 이상을 바라지 않는다.

아이가 자라면서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기라도 하면 이를 외면하지 못하고 검색을 해보거나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하여 심한 염려를 하기도 했다. 심한 황사에 1초에 한 번씩 목을 흠흠 거리는 아이가 틱을 하는 줄 알고 여기저기 병원을 데리고 다니다가 그것이 먼지 때문인 것을 알았을 때의 안도감을 생각하면, 신체적 정신적인 문제가 조금이라도 발견되는 아이의 부모의 심정이 얼마나 무너질지 상상되기도 한다. 그랬다면 나는 나의 아이를 어떻게 바라봤을까, 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친구들과 편하게 놀게 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했을까.

지훈이 어머니의 일반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한 노력이 이해되는 부분이다. 내 아이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기보다는 이러한 짐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을 생각보다 쉽게 만날 수 있다.


ADHD라는 이름으로 산만하고 부주의한 아이들을  분류하고 이런저런 강박과 우울을 가진 아이들이 학교에 여럿 있다. 저학년에 20명이 넘는 한 반안에서 한두 명 정도 끼어있다면  이 아이들과 나머지 아이들을 다루는 담임은 매우 버거울 것이다.


'예전에도 이렇게 많이 있었나?'

엄마들끼리 이런 대화를 나눴던 적이 있다. 아마 예전에도 많았을 것이다. 그 아이들을 미디어 등에서 다루고 이름을 붙이다 보니 훨씬 많아 보일 수도 있다.

예전부터 우리는 섞여 살았었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우리의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교육을 해야 한다. 학교에서 그런 아이가 있다고 엄마가 아이에게 먼저 싫은 티는 의식적으로 내지 말아야 한다. 아이는 어머니의 태도로 자신의 태도를 결정하기 쉽다.

아프지 않은 아이들도 아픈 아이들도 일반학교에서  평범하고  자연스럽게 어울려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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