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Reader : 책 읽어주는 남자, 를 보고

일상사적 나치즘 연구와 그 해석 및 감상

by 정선


*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처음 영화 포스터를 보았을 때가 생각이 난다. 그 당시에는 미성년자였기에 어차피 볼 수 없는 영화라 생각하여 크게 관심을 둔 것은 아니지만, 스무 살이 넘는 나이 차이가 나는 연인이라는 점과 하얀 포스터에 남녀가 가까운 거리에 얼굴을 마주하고 있었던 점은 꽤나 깊게 뇌리에 박혀있었다. 때문에 교수님께서 처음 이 영화를 말씀하셨을 때도, 희미하게나마 그 포스터가 떠올랐고 동시에 표정도 조금 구겨졌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당황했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해 아는 점이라고는 나이 차이가 크게 나는 연인이 나오는 청소년 관람 불가 영화. 딱, 이 정도였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가 명작이라고 꼽히는 이유도 알지 못했고,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나 소재조차도 알지 못했다. 수업시간을 통해 1960년대 독일을 배경으로 한 나치즘과 그 전후 세대를 다룬 영화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영화를 보기 직전 일부러 영화와 관련된 글과 일상사에서 나치즘을 어떠하게 연구하였는지를 살펴보았다. 일상사는 일상의 삶의 역사에서 자기 삶의 뿌리를 스스로 발굴하면서 자기발견과 각성의 계기로 삼을 것을 추구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렇기에 기존의 거시적인 기준을 중점으로 이루어졌던 연구를 비판하며, 아래로부터의 인간의 행태와 경험에 집중하여 연사를 연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상사의 연구대상으로 나치즘은 새로운 시각과 문제 제기 그리고 새로운 사료의 발굴과 이용을 통해 기존의 연구 경향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오류를 극복하고자 하였다. 기존의 연구는 지배와 통치라는 일면적 관점에서 분석하여 일반 대중은 지배와 억압의 대상이나 탄압의 희생자로서 나타날 뿐이다. 하지만 일상사가들은 나치즘을 아래로부터, 즉 평범한 서민들의 일상적 경험의 관점에서 조명하고, 나치 체제에서 그들의 역할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것으로 파악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더 리더 – 책 읽어주는 남자>(이하 더 리더)는 15살 소년 마이클과 36세의 연인 한나를 중점적으로 홀로코스트라는 역사와 인간의 죄의식, 윤리 사상 등에 대해 다룬 이야기이다. 영화의 시작은 길가에 쓰러져 복통을 호소하는 마이클과, 그런 마이클을 구해주는 한나를 통해 시작된다. 마이클은 한나 덕에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고 이후 몇 달간 집에서 치료에 전념한다. 몸이 회복된 후 마이클은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 한나의 집으로 향하고, 우연히, 어쩌면 의도적이게 한나가 옷을 갈아입는 장면을 본다. 이후 이들의 관계는 급속도로 발전하여 육체적인 관계를 맺는 것까지 이어진다. 이러한 장면까지는 어쩌면 전형적이고 일반적인 사랑에 빠지는 모습과 다를 게 없다고 여겨졌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이야기는 이 뒤부터 시작되었다. 한나가 마이클에게 학교에서는 무엇을 배우냐며 자연스럽게 묻더니, 책을 읽어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당연, 아무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하지만 결국 둘의 관계는 끝이 나게 된다. 사실 이유를 제대로 이해할 수는 없었다. 침착한 것 같던 모습을 뒤로하고 꽤나 감정적으로 고양된 듯한 모습이 여러 번 나왔고, 정말 사소한, 아무것도 아닌 일들로 화를 내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다 그것이 폭발하여 결국 이별하게 되었다.

이후 시간은 마이클이 법학대학을 다닐 때로 전환한다. 마이클은 수업의 일환으로 교수님과 같은 공부를 하는 학생들과 법정에 견학을 하러 간다. 그리고 그 법정에서 도저히 만날 거라 생각하지 못했던 한나 슈미츠를 만나게 된다. 아니, 일방적으로 보게 된다. 나치 전범 재판의 피고인 한나 슈미츠를.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믿기 싫었을 것이다. 왜, 왜? 거대한 의문점이 제 흔적을 남기며 넓혀갔다. 그리고 이어지는 재판관들의 말은, 끝까지 마주하고 싶지 않던 진실을 직면하게 한다.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감독관이었던 한나 슈미츠라는 진실을 말이다. 물론, 그 자리에는 한나만이 있는 것이 아니었다. 피고들은 서로의 무죄를 주장하며 판사의 심문에 본인은 그런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하지만 한나는 달랐다. 한나는 진실했고, 솔직했다. 부인하지 않고 모두 인정하였다. 하지만 오히려 되묻는다. ‘왜 잘못된 거죠?’ 나는 감독관이었기 때문에, 시키는 대로 한 것일 뿐이라고, 그것이 왜 잘못된 것이냐고, 어쩔 수 없었다고.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반응이었다. 한나는 정말 성실한 감독관으로서 제 임무를 다했던 것이다. 거대한 나치즘이라는 틀 안에 갇혀, 그것이 잘못인 줄도 모른 채, 즉, 한나는 생각을 사유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몇 번 진행된 재판에서 한나는 교회 안에 유대인을 가둔 채 살인을 책임졌다는 오명을 쓰게 된다. 한나는 억울함을 주장했고, 재판관은 당시 서류가 있으니 필체 확인을 위해 글을 써보라 한다. 하지만 한나는 단 한 글자도 써보지 못한 채 자신의 잘못을 인정한다. 정말 한나가 그 책임자였을까? 아니, 나는 그제야 입을 틀어막았다. 설마, 나도 모르게 입에서 말이 튀어나왔다. 그리고 나도, 마이클도 한나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왜, 함께 간 자전거 여행에서 한나가 메뉴를 고르지 않았는지. 왜 자신에게 책을 읽어달라 요구하였는지. 왜 수용소에 갇힌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달라고 요구하였는지. 조금의 의문으로 남아 지나쳐간 것들이 마이클을 휩싸도 돌아 거대한 진실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그렇기에, 마이클은 큰 갈등을 겪게 된다. 한나가 문맹인 것을 증언한다면 한나가 대량 학살을 주도했다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있고, 죗값을 물더라도 크게 감형이 될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리고 자신이 그 증인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섣불리 행동할 수 없다는 점도 알게 된다. 한나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마이클에게 글을 읽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한 적이 없으며, 들킨 적도 없다. 누군가의 비밀이 지켜지는 이유는 대개 들키고 싶지 않은 비밀이기 때문이다. 법학을 배우는 학생으로서, 한나의 옛 연인으로서, 그의 결정은 결국 한나의 뜻을 이어가는 것이었다. 그는 입을 다물 것을 결정하였다.

즉, 한나는 법정에서조차 거짓말을 하게 된다. 자신이 문맹인 것을 누구에게도 들키기 싫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한나는 무기징역이라는 큰 형을 선고받고, 감옥으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났을까, 마이클은 결국 이혼을 하게 된다. 한나에 대한 그 감정을 아무리 숨기려 애써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마이클은 언제 마지막으로 썼을지도 모르는 카세트테이프와 녹음기를 꺼내 든다. 그리고 책장에 있는 책 한 권을 꺼내 읽기 시작한다. 나는 이 순간, 온몸에 소름이 돋아 내가 보고 있는 그 장면조차 믿지 못했다. 세상에, 어떻게, 어떻게 저런 생각을 할 수 있지? 오디세이, 저자 호메로스. 와, 미치겠다. 스페이스 바를 눌렀다. 도저히 진정이 될 수가 없었다. 영화를 보기 전, 어느 블로그에서 본 감상문 한 구절이 생각난다. ‘진정한 사랑은 이런 것이 아닐까.’ 불과 2시간 전까지만 해도 픽 웃으며 넘긴 말이 강하게 뇌리에 꽂혔다. 이런 게 사랑이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이 사랑이란 말인가. 겨우 다시 누른 스페이스 바 이후의 전개는 내내 소름이 돋았다. 눈물이 핑 돌기도 했다. 한나를 위해 집에 있는 책을 모두 읽어가며 녹음을 하고, 그것을 택배로 보내는 마이클의 모습은 마이클이 차마 한나에게 모두 전하지 못한 그 응어리지고 깊이를 가늠하기조차 힘든 모든 감정이 낱낱이 녹아져 있었다. 한나는 목소리를 들음과 동시에 마이클인 것을 알게 된다. 선반 위에 있던 것들을 치우고, 카세트테이프가 몇 개씩 쌓인다. 그리고 ‘강아지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한나는 카세트테이프를 멈춘다. 몇십 년 전, 그때 들었던 그 이야기이다. 한나는 처음으로 감옥 내 있는 도서관에 가 책을 빌린다. 그리고 다시 테이프를 듣는다. 스스로, 주체적으로, 글을 읽는 연습을 시작한 것이다. 왜일까, 지금까지 글을 읽지 못하는 데에서 온 수많은 불편함에도 배우지 않았던 한나가 왜 글을 배우려 할까. 이유는 하나뿐이었다. 전화를 할 수도, 직접 만날 수도 없으니, 한나는 편지를 써야 했다. 그리고 겨우 쓴 짧은 문장에는 고맙다는 인사와 kid,라는 말이 덪 붙여졌다. 한나가 마이클을 불렀던 그 애칭이다. 별 거 아닌 뜻이지만, 사람의 관계 속에서 경험 속에서 우리는 같은 단어를 보면서도 수많은 의미를 떠올리게 된다. kid. 단지 3글자인 하나의 단어에 그들의 모든 관계가 드러나 있었다.

끝을 향해 달려가는 시간이 너무 아쉬우면서도 어떠한 결말이 나타날지 궁금해 미칠 지경이었다. 마이클은 한나의 편지에 답장을 하지 않는다. 마이클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사랑했던 옛 연인이 나치즘에 가담한 사람이었다는 걸,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차라리 몰랐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을까. 단 한 번의 면회에서 마이클을 만난 한나는 그를 다시 한번 kid라고 부른다. 묻고 싶은 게 많았을 것이다.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하지만 한나는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게 된다. 한나는 어떤 심정으로 목숨을 끊었을까, 그가 남긴 것은 작은 깡통과 돈, 짧은 편지뿐이었다. 짐조차 싸지 않았다. 처음부터 떠날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마이클은 자신의 딸과 함께 걸으며 한나에 대해 이야기를 꺼내는 것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애절한 감정 관계가 영화 전체를 뒤엎고 있지만 그럼에도 단순한 로맨스를 다룬 영화는 아니다. 영화 속 등장하는 나치즘의 가해자였던 독일 시민들은 다만 몰랐던 것이며,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었다. 악행을 악행이라 인지하지 못한 채, 맡은 바를 충실히 하는 것일 뿐이다. 한나 아렌트가 주장한 ‘악의 평범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으로 묘사되었던 한나 슈미츠는 자신의 행동이 잘못되었다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글을 배우면서, 스스로 생각을 하게 되면서, 그는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을 깨닫고 모은 돈을 피해자에게 전달할 것을 요청하며 목숨을 끊게 된다. 그렇기에 당시의 무지했던, 또 다른 한나 슈미츠는 반드시 독일에 존재하였을 것이다. 진심으로 유대인을 학살하고 싶어서가 아닌, 누군가의 지시로 아무런 고민 없이 맡은 일을 수행했던 사람들이 반드시 존재한다. 더 리더에서는 이러한 면모를 거침없이 드러냈고, 그 이야기를 한나 슈미츠라는 한 명의 여성으로 표현하였다. 이는 나치즘을 연구하는 것에 있어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여주었다. 모두가 악한 마음을 가지고 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또 다른 면에서 역사를 바라보아야 한다는 일종의 전환점을 준 것이다.

역사는 기록의 산물이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우리는 매 순간마다 경험하고 존재할 수 없기에, 그 시대를 살았던 누군가의 기록을 보고 감히 예측하여 본다. 그렇기에 거시적 틀에서만 진행되었던 연구는 한계점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주류적 흐름 속에 있는 작고 사소한 일상들이 역사에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그들의 역사는 어떠했는지를 고려해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더 리더는 또 다른 방향점을 제시해줄 수 있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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