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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독언 Jul 20. 2024

나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는 연인은 몇 점짜리 연인?

뮤지컬 <카르밀라> 후기

오랜만의 포스팅. 다소 두서없이 적는다. 개인적으로 비가 오는 날 공연 관람하는 것을 좋아한다.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라>에서 '비가역적인 피로감이 주는 흥분감'이라는 대사처럼, 습기가 찬 공연장 특유의 냄새는 고사하고도 약간의 피로감이 주는 집중력은 공연을 볼 때 도움을 준다. 늘 높이 감, 거리감이 생기면 크게 몰입을 못 하는 편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즐겁게 봤던 것 같다. 오히려 그것이 공연을 분석하기 좋아하는 나에게는 오히려 좋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비가 오는 날 급하게 저녁을 먹고, 극장으로 몸을 쑤셔 넣고 관람한 카르밀라는 친구가 겁준 만큼이나 난해한 뮤지컬은 아니었다. 


카르밀라 공식 포스터


뮤지컬 <카르밀라> 줄거리

오스트리아 슐로스. 외딴집에서 혼자 외롭게 살아온 로라는 일주일 후, 그라츠로 떠나 새로운 삶을 시작할 꿈에 부풀어 있는데.. 폭풍우 치는 밤, 마차 사고를 당한 자매 카르밀라와 닉이 로라의 집으로 찾아온다. 낯선 손님들을 경계하지만, 그들의 선량한 모습에 마음을 열게 되는 로라. 그렇게 자매는 로라의 집에 머물게 되고, 카르밀라와 로라는 함께 지내며 점점 가까워지는데.. 흡혈귀 살인사건이 발생하고, 슈필스도르프 부제가 그 뒤를 쫓기 시작한다. 마침내 드러나는 이들을 둘러싼 숨겨진 진실. 과연 이 길의 끝엔 뭐가 있을까.


줄거리의 경우, 위의 내용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닉에 의해 흡혈귀가 된 카르밀라는 공연에서 전개되는 시간선의 10년 전, 본인의 집이었던 카렌슈타인 성에서 로라를 만나게 되어 그간 잊고 있었던 행복을 느끼게 된다. 이에 닉을 떠나려고 하지만, 닉의 무차별적인 학살로 인해 로라의 아버지가 사망하고 로라를 지키기 위해 닉을 절대 떠나지 않겠다는 구두 계약을 맺는다. 이후 닉과 카르밀라는 오랜 여행을 떠난다. 로라는 아버지를 잃는 과정에서 큰 충격을 받아 닉과 카르밀라에 대한 기억을 잃게 되는데, 이후 닉과 카르밀라는 여행 도중 마차 사고로 인해 로라의 집에서 하숙하게 된다. 


네버엔딩스토리 공식 트위터


나는 늘, 흔히 극적이라고 하는 강렬한 연출의 장면들을 좋아하는 편이다. 뮤지컬 <카르밀라>의 플롯이 나에게 그렇게 흥미롭지는 않았으나, 카르밀라가 본인이 흡혈귀라는 사실에 괴로워하는 넘버나 혹은 아버지를 잃는 로라의 넘버, 로라와 카르밀라가 다툰 이후, 죽음을 목전에 둔 닉이 카르밀라를 향해 울부짖는 장면은 좋았다. 


카르밀라의 모든 장면이 취향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이럴 강렬하고 극적인 순간들은 정말 즐겁게 볼 수 있었다. 특히 닉의 캐릭터의 이중적인 면은 관객들 또한 닉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되지 않았을까 싶다. 로라는 정말 사랑할 수밖에 없는 단단함을 가진 캐릭터라서, 박새힘 배우의 로라를 감상했는데 나까지 로라를 사랑하게 되었다.

카르밀라와 로라의 관계가 뮤지컬 <카르밀라>를 이끌어가는 주된 이야기이긴 하나, 내가 흥미롭게 바라봤던 것은 닉과 카르밀라의 관계와, 그사이에 놓여 있는 로라였다. 흡혈귀인 닉과 카르밀라의 경우, 흔히 사람들이 알고 있는 흡혈귀의 모습과 다른 약점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타인과 다른 존재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영화 <파묘> 공식 스틸컷


영화 <파묘>에서 주역이 되는 모든 등장인물이 만나는 장면을 좋아한다. 엔딩에 가까울수록 서로 긴밀한 마음으로 애틋하게, 가족처럼 하나의 카메라에 찍히지만 결국 다시 만날 때에는 그 네 인물들이 서로 혀를 차며 그리 달갑지 않은 마음으로 다시 뭉칠 것만 같아서. 앞선 이야기를 꺼내는 이유는, 뮤지컬 <카르밀라>의 닉과 카르밀라의 관계에서처럼, 결국 카르밀라와 로라의 관계도 도돌이표처럼 다시 돌아갈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은 해석하는 이에 따라 다 다르게 보일 것이다.


네버엔딩스토리 공식 트위터


닉과 카르밀라의 경우, 사실 뮤지컬에서는 카르밀라와 닉의 서사를 구체적으로 해설하지 않는다. 닉이 카르밀라를 물었고, 그 과정에서 상호 합의적인 부분이 있었는지 상호 합의적이지 않았는지 서로 행복했을지. 나는 처음 카르밀라를 관람했을 때 카르밀라가 원해서 닉과 같은 흡혈귀가 된 것은 아니었지만 중간중간에 카르밀라에게 집착하며 뱉는 대사들을 통해 서로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분명히 닉이 카르밀라를 선택하여 흡혈귀가 된 것이었지만, 행복은 상대적인 것이라고 하지 않던가? 140년의 시간을 지나 점점 피로하고 지쳐갔던 카르밀라가 로라를 닉처럼 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가? 끝이라는 정해진 지점 안에서 사랑하는 것이 당연한 개념을 가진 사람들이, 영원이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서로의 영원을 맹세할 수 있을까. 타인을 바라보며, 타인의 지나가는 세월을 통해 그 시간선에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영원이라는 것이 과연 행복한 것일까? 

사실, 이 정도도 충분하다는 카르밀라의 말이 특히 인상 깊었다. 영원을 사는 카르밀라의 '이 정도도 충분하다'는 발언은, 한계가 정해져 있는 사람들의 '이 정도도 충분하다.' 와는 확실히 다른 느낌이라서 흥미로웠던 것도 같다. 


네버엔딩스토리 공식 트위터


사실 슈필스도르프가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서, 공연 중반의 모습까지와 후반이 다르다는 점이 다소 웃기게 다가왔던 것 같다. 슈필스도르프는 다소 인간적인 관점으로 다른 존재들을 바라보는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면 다른 캐릭터들은 대체 누구와 어떤 입장을 대변하는 것일까?


그래도 좋았던 것은, 카르밀라가 인간의 범주에 있기 위해, 또 인간을 헤치지 않기 위해 고뇌하고 동물들의 피를 흡혈한다는 점이었다. 인간들도 동물들을 잡아먹는다는 점이, 종종 죄 없는 동물들이 단순히 인간들의 이익을 위해 목숨을 잃는다는 점이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하는 지점이라고 느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완전히 무결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좀비와 괴물, 인간과 다른 종족의 범주를 잇는 선에 대해 늘 호기심이 든다. 뮤지컬 <카르밀라>는 다시금 인간의 기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는 계기였던 것 같다. 인간과 유사한 침팬지와 인간을 구분 짓는 것은 언어를 통한 원활한 의사소통 능력이지 않던가! 그렇다면 인간을 잡아먹는 인간은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인간과 같은 대우를 받기 위해서 사회적으로 흡혈귀와 인간이 취해야 할 태도는 무엇일까? 


뮤지컬 배니싱 공식 트위터


지인들의 후기를 통해서 배니싱과 음악극 <캐롤>의 유사점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음악극 <캐롤>의 경우 모티프가 같다는 지점에서 다소 당연하게 느껴진다. 처음에는 시간선도, 등장하는 인물들의 스타일도 완전히 다른 카르밀라에서 배니싱에 대한 후기가 나오는지 몰랐으나, 뮤지컬 <배니싱>과 넘버의 스타일은 고사하고도 구조적으로, 또 비슷한 은유들이 많이 있었다. 전쟁과 관련된 얘기, 모든 존재에 관한 이야기. 늘 관점을 달리하여 흡혈귀들이 악한 존재인가? 이에 대한 것이 배니싱의 전반적인 이야기의 플롯이었다. 피라미드 구조에 있어 인간의 위에 있는 형태인 흡혈귀들이 인간에게서 인간적인 대우를 기대하는 것이 맞는가? 이에 전쟁이라는 비유를 인간과 흡혈귀의 관계에서 동일선상으로 놓을 수 있는가? 전쟁과 흡혈의 관계성이 무엇일까? 배니싱의 경우 K라는 캐릭터는 그 시대에 멈춰 있는 캐릭터이지만, 뮤지컬 <카르밀라>에서의 닉과 카르밀라라는 캐릭터의 경우에는 시대의 트렌드를 따라가는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엇나가는 감정을 느꼈던 것과 같다. 동물은 죽여도 되고 사람은 안 되는 것인가? 사람을 잡아먹다가 가축을 잡아먹으니까, 인간과 동일하고 그래서 신의 가호를 받을 수 있는 인물인가?


카르밀라라는 고전 소설을 모티프로 삼아 올해 초에 올라온 캐롤을 관람했을 때와의 느낌이 달라서 신기했다. 음악극 <캐롤>의 경우, 공연을 관람하면서 노엘이 캐롤에게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 굉장히 불친절하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특히 모든 공연의 감정적인 공감은 배우들의 역량이 중요하겠지만, 캐롤이라는 배역을 맡은 배우의 역량에 따라 크게 좌지우지되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었으며 캐롤은 모든 인물의 행동에 대해 옹호할 수 없었다. 오히려 윈터와 캐롤의 사랑을 위해 이용되는 것만 같은 주변 인물들... 그러나 이보다는 더 많은 생각과 해석을 가능케 했던 것 같다.


오랜만의 포스팅이라 정리되지 않은 문장들이 많았다. 시간이 날 때에 다시 퀄리티를 높인 글을 적을 수 있기를 바라며... 흡혈귀에 대한 이야기에 늘 생명의 윤리에 대한 이야기가 화두에 나오는 것 같다. 이를 해결하고 넘어갈 수 있었으면 어느 정도 생각에 정리가 될 것도 같은데, 카르밀라 또한 다른 입장의 태도를 취하는 인물이 주연으로 나온다는 점이 신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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