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넷이어서 반짝일 수 있었던 그때
햇살이 따스했던 어느 날 오후, 친한 대학 친구 S에게서 카톡이 왔다. 김동률의 청춘 노래 가사와 함께.
"난 이 노래를 들으면 너네 생각이 나서 그런지 자꾸 눈물이 나."
그랬다. 청춘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함께여서 아무것도 두려울 것 없던 우리의 대학 시절이 떠오른다. 우리는 넷이었기에 용감했고, 넷이었기에 기쁨도 네 배가 되었다.
매일 만나도 할 말이 많았던 그때. 저마다의 꿈을 이야기하며 울고 웃었던 그때. 갑작스러운 친구의 이별에 술 한잔을 기울이던 그때. 모든 희로애락을 같이 했던 우리이기에, 우리는 평생 영원할 줄 알았다. 언제든 마음먹으면 다 함께 모여 우리의 지난날을 추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던 2016년의 9월. 여름의 더위가 채 가시기도 전에 우리는 Y를 떠나보냈다. Y의 언니로부터 전화를 받고 고작 2주라는 시간이 흐른 뒤였다.
"안녕하세요. 나는 Y의 언니예요. 우리 Y가 지금 많이 아파서, 남아 있는 시간이 많이 없어요. 그래서 친구들이 좀 와주었으면 해요."
매일이 그러하듯 그 날 아침 또한 무수히 많은, 평범한 날들 중 하루였다. 아침에 일어나 점심 약속에 나가기 위해 씻고 나왔는데 부재중 전화 한 통이 찍혀있었다. 모르는 번호라 무심코 넘기려는데 똑같은 번호로 다시 전화가 왔다.
"누구지? 급한 일인가?"
별생각 없이 받았던 전화. 수화기 너머에서 애써 슬픔을 감추고 담담하게 말했던 언니의 몇 마디가 내 가슴을 덜컹 내려앉게 했고, 전화를 끊자마자 나는 주저앉아 펑펑 울었다. 그리고 나는 바로 울산-김포 행 비행기를 예약했다.
여행을 다녀온 후 자꾸 배가 아프다던 Y. 집 근처 병원에 다녀오고도 며칠이나 아프다고 했다. 여행 다녀왔으니 단순 물갈이를 하고 있는 중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는데, 며칠 후 입원을 했다는 연락을 받았다. 병원에서 괜찮다고 했었으니 이번에도 괜찮겠지. 아니, 괜찮을 거라고 믿고 또 믿고 싶었다.
언니의 전화를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비행기를 타고, 버스를 타고 병원까지 가는 길 내내 이게 무슨 일인가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20대 초반의 나이에 항암치료를 받는다는 그 소식만으로도 우리를 놀라게 했는데, 대체 이게 무슨 일일까. TV나 뉴스를 보면 기적처럼 다 나아서 잘 살고 계시는 분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 너 또한 그럴 것이라고, 이렇게나 열심히 착하게 산 네가 쉽게 갈 리가 없다고 계속해서 되뇌고 또 되내었다.
이렇게 멀리까지 무슨 일이냐고 묻는 Y에게 나는 출장 삼아 서울에 왔다가 들린 것이라고 말했다. Y도 알았을까, 우리 눈에 어린 걱정과 애틋함을. 이번이 마지막일지도 모르기에 찢어질 것만 같았던 우리의 마음을. 병실을 나서며 곧 또 올게라며 외치던 그때가 정말로 마지막이 될 줄 누가 알았을까. 그게 마지막인 줄 알았더라면 그 앙상하던 몸을 한 번이라도 안아줄걸.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볼걸. 그 따스했던 온기를 한 번이라도 더 느껴볼걸.
그 모습을 마지막으로 Y를 떠나보낸지도 벌써 5년여의 시간이 흘렀지만, 남은 우리 셋에게는 그 날의 기억이 아직도 어제처럼 생생하다. 너와 만나 커피를 마시며 떨던 수다가, 무슨 일이 생길 때면 망설임 없이 너에게 걸던 전화가, 그 사사로왔던 일상들이 왜 이제는 이렇게 힘든 일이 되었을까. 어쩌면 우리가 돌아가고 싶은 순간은 거창한 무언가가 있는 그 순간이 아니라, 우리 넷이 함께 모여 그저 끝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웃던 그 날들이 아닐까. 넷이었기에 외롭지 않았고, 그 어떤 것도 두렵지 않았던 우리의 그 날들이.
셋이 만남을 가지고 헤어지는 길에서 나뿐만 아니라 남은 친구들 모두 남몰래 눈물을 훔칠 것이다. 누구라도 먼저 이야기를 꺼내면 우리 모두가 무너져 내려버릴까 차마 선뜻 꺼내지 못하는 우리들의 그 이야기. 우리는 앞으로 다가올 수많은 날들에도 우리의 아름다웠고, 반짝였던 그때를 마음속 깊이 늘 간직할 것이다.
문득 스치는 바람에도, 하루 종일 내리는 비에도 혹시나 네 소식이 있을까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여본다. 우리는 언제나 넷이라는 것을, 그리고 넷이어서 반짝일 수 있었다는 것을 너도 꼭 알고 있기를.
언제나 보고싶고, 너무 많이 사랑해.
김동률 청춘
우리들 만났다 하면 날이 새도록 끝나지 않던 이야기 서로의 꿈들에 함께 부풀었었고 설레었고 내일이 두근거렸지 언제부턴가 하루가 짧아져만 갔고 우리들 마음은 점점 조급해져 갔지 영원할 것 같았던 많은 것들 조금씩 사라져 갔지 서로가 참 솔직했었던 그때가 그리워 때로는 쓰라렸고 때로는 부끄럽고 그래서 고맙던 거칠 게 없던 시절 모든 걸 나눌 수 있었고 같은 꿈을 꾸던 시절 뭐가 달라진 걸까 우린 지금 무엇이 중요하게끔 된 걸까 다들 모처럼 모인 술자리에서 끝없이 하는 이야기 그때가 좋았다 언제부턴가 더는 꺼내지 않는 스무 살 서로의 꿈들 우리가 참 힘이 됐었던 그때가 그리워 때로는 다독이고 때로는 나무라고 그래서 고맙던 외롭지 않던 시절 모든 걸 나눌 수 있었고 같은 길을 걷던 시절 뭐가 달라진 걸까 우린 지금 무엇이 소중하게끔 된 걸까 우린 결국 이렇게 어른이 되었고 푸르던 그때 그 시절 추억이 되었지 뭐가 달라진 걸까 우린 아직 뜨거운 가슴이 뛰고 다를 게 없는데 뭐가 이리 어려운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