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요일 Feb 28. 2022

다른 이의 아침을 생각하는 일



 학기 준비에 한창이다. 둘째는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다. 함께 가방을 챙기며 내가 학교에 가는  마냥 설렌다. (, 물론 걱정도 함께 밀려오지만..) 오랜만에 서점  문구 코너에 들렀다. 나를 설레게 만드는 사물을 나열한다면 가장 먼저 ,  다음이 문구 아닐까. 문구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겹고 행복해진다. 그런 힘을 가지고 있다. 당장이라도 무언가 쓰고, 시작해보라고 속닥거린다. 이제는 굴러다니는 아이들의 연필을 얻어 쓰는 처지지만, 오랜만에 예쁜 노트와 필기구들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조건 파랑을 찾아 떠나는 아이. 이 나이 또래 남자아이들이 대부분 그런 걸까? "남자는 파랑이쥐!!" 물건을 살 때는 아이들의 취향을 최대한 존중해준다. 자신의 손으로 직접 골라 더 소중하게 느껴지도록. 점차 자신에게 어울리는 색상을 찾을 줄 아는 어른으로 성장하길. 엄마는 바래본다. 그런데 선택한 필통의 사이즈가 너무 작다. 필통 안에 가위, 풀까지 함께 넣어야 한다고, 옆에 있는 형아가 조언을 해준다. 문구점을 몇 바퀴나 돌았다. 가위가 들어갈 만큼 넉넉한 사이즈의 파아란- 필통을 찾아서. 한 구석에서 사이즈와 컬러 모두 적정한 필통을 찾고는, 아이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나도 오랜만에 큰맘 먹고 연필깎이를 집어 들었다. 집에 있는 녀석의 상태가 영 신통치 않아서였는데. 심을 깎아야 하는 본분을 잊은 채, 밀어 넣으면 죄다 부러뜨렸다. 칼날에 문제가 생긴 듯 했다. 집으로 돌아와 남편은 연필깎이를 책상에 고정시켰다. 앞으로 우리 집 연필들을 잘 부탁하마! 연필을 깎는 둘째의 뒷모습이 장인처럼 진중하다. 마냥 아기 같던 아이가 초등학생이라니. 기쁘고 대견하지만, 한편으로 품을 떠나는 일만 남아서 시리고 허전해진다.



두 달간의 긴 방학은 끝이 보이고,

마음 한 구석에서 아지랑이가 피어오른다.





저녁 무렵 뜬금없이 아이스크림이 먹고 싶어졌다. 아이들 눈이 동그래졌다. 자나 깨나 건강을 중시하는 엄마가, 한 겨울에 아이스크림이라니.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당장이라도 가게로 달려갈 기세다. 아빠는 첫째에게 넉넉하게 돈을 쥐어주었고, 둘은 신이 나서 달려갔다. 돌아온 아이들의 손은 꽁꽁 얼어있었지만, 표정만은 LED급으로 밝다. “남은 돈은 용돈이닷!” 4,500원. 아빠의 잔돈은 사랑이다.




하루 종일 새 학기 준비에 설레고,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먹은 그날 저녁. 마음이 콕- 찔린 듯 아팠다.



‘아, 나만 이렇게 행복해도 되는 걸까...'

봄이 오고 보통의 일상으로 회복되리라는 희망 옆에서, 잠시 잊고 있던 슬픔의 실체가 고개를 내밀었다. 요 며칠 비짓고 끼어든 슬픔의 원인은 바로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었다.



엊그제 본 우크라이나 아빠와 딸의 생이별 장면. 그 동영상을 혼자 보다가 솟아오르는 눈물을 겨우 참아냈다. 결혼한 신혼부부의 손에는 꽃이 아닌 총이 들려 있고, 폭격당한 자신의 아파트 앞에서 중년 여성은 망연자실하다. 이곳은 이렇게 평화로운데, 지구 저 편은 살얼음판이다. 목숨을 걸고 하루하루를 견뎌내고 있는 사람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그래도 도움이 되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



나는 이기적인 사람이다. 어른이 되어 돈으로 기부를 한 일이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이니. 어쩌면 이 불편한 마음을 조금이나마 덜어내고 싶은, 또 하나의 얄팍한 이기심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가만히 있는 것이 죄스러웠다. 인터넷에서는 적십자나 유엔난민기구를 통해서 모금 활동이 한창이었다. 난민들을 위한 긴급구호 활동에 쓰일 손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의심했다. 기부한 돈이 얼마나 합당한 곳에 쓰일지는 알 수 없다고. 일부 단체의 기부금 횡령에 관한 기사들이 링크되어 있었다. 그래도 사람들은 조금 더 믿을법한 단체 혹은 우크라이나 정부 공식 계좌로 온정을 이어나갔다. 비록 내가 보내는 돈이 사업비와 인건비로 떼어지고, 작은 일부만 전해진다 하더라도. 생수 한 병이 되어 전해질 수만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괜찮았다.




아이들도 선뜻 힘을 보탰다. 아이스크림 사고 남은 돈에 모아 둔 용돈을 내밀었다. “이천원 더 낼께요!”, “저는 사천원이요!” 돈의 개념이 명확치 않은 둘째의 통이 더 크다. “천원씩만 더 받을께. 나머지는 엄마가 채우고!”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마음이 뭉클해졌다. 부디 너희들의 마음이 잘 전달되기를!





내가 이렇게 변한 건, 시 한 편의 힘이다.



<네 아침을 준비할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네 아침을 준비할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비둘기의 모이를 잊지 마라.

네 전쟁을 수행할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행복을 추구하는 이들을 잊지 마라.

네 수도 요금을 낼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빗물 받아먹고사는 사람들을 잊지 마라.

네 집으로 돌아갈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수용소에서 지내는 사람들을 잊지 마라.

네 잠자리에 들어 별을 헤아릴 때 다른 이들을 생각하라.

잠잘 곳이 없는 사람들을 잊지 마라.


- 마흐무드 다르위시


아침.  라떼 한잔에 담겨 있던 하트. 다시 평화가 찾아오길.


" 한때 시가 모든 것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역사를 바꾸고, 더 인간적인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시가 바꿀 수 있는 건 고작해야 시인 자신 뿐이란 것을."



마흐무드 시인이 한 말은 틀렸을지도 모른다.

이 시의 제목이 가끔씩 나를 찾아오니까.




작가의 이전글 참깨를 씻다가 깨닫게 된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