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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Jun 11. 2023

이빨 빠진 진경

동서울터미널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한시간 반을 달려 홍천군 내촌면에 내렸다. 진경이 있다는 우체국에 들어가니 소포를 포장하는 진경의 뒷모습이 보였다. 진경은 그 사이 흰머리가 늘어 반백이 된 긴 생머리를 뒤로 묶고 있었다. 다가가 어깨를 쳤다. 진경이 고개를 돌리며 웃는데 이가 절반이 없었다. 


진경의 차에 올랐다. “잇몸이 안 좋아서 남은 이를 다 임플란트를 해야 된대.” 진경이 담배를 입에 물면서 말했다. “담배가 잇몸에 그렇게 안 좋다던데.” 내가 말했지만, 진경은 들은 체도 않고 담배에 불을 붙였다.


차는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갔다. 산골마을은 양지바른 곳을 골라 자리잡고 있는데, 진경의 집은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져 그늘진 골짜기 깊숙한 곳에 있다. 차에서 내리니 마당이 잡동사니들로 어수선했다. 집안은 더 했다. 색이 화려한 그림을 배경으로 물건들이 바닥부터 천장까지 빈틈없이 쌓여 있었다. 나는 물건들에 압도된 채 그 사이로 난 좁은 길을 지그재그로 걸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 크지 않은 거실에는 테이블이 무려 세 개나 놓여 있었는데 진경이 좌식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테이블 주위에는 진경이 앉았던 자리만 물건이 치워져 있어서 나는 바닥의 물건들을 밀어내고 엉덩이 들어갈 자리를 만든 뒤에 앉았다. 테이블 위에도 물건들이 가득했고 그것들을 이리 밀고 저리 당겨 커피 잔 하나 놓을 자리를 만들고 나서야 진경과 마주 볼 수 있었다. 


진경이 전시 얘기를 했는데 나는 이빨 빠진 이에만 정신이 팔렸다. 진경의 이가 원래 저렇게 길쭉했던가? 진경의 몇 개 안 남은 이가 동화 삽화에 그려진 마귀 할멈의 이처럼 길쭉했다. 옆에 다른 이가 없으니 남은 이가 길쭉해 보이는 거였다. “마귀 할멈 산다고 소문나서 동네 애들이 몰래 구경 오지 않니?” 내가 물었다. “그럼 ‘이놈들!’하고 소리를 질러서 놀래줘야지.” 진경이 이빨 빠진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영락없는 마귀 할멈이었다. 마을에서 외따로 떨어진 데다 범상치 않은 물건들로 가득 찬 그 집도 마귀 할멈의 집으로 손색이 없었다. 나는 창밖의 덤불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덤불 뒤에 아이들이 숨어 집을 엿보고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사흘 만에 진경의 이빨 빠진 얼굴에서 마귀 할멈을 볼 수 없게 됐다. 어찌된 셈인지 진경의 얼굴이 이빨이 다 있던 시절과 하나 다름없이 보였고 일부러 이상하게 보려고 해도 그럴 수 없었다. 동화 속 마귀 할멈이 마귀 할멈일 수 있는 건 그가 외따로 떨어져 살면서 아무와도 교류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가깝게 지내 익숙해지다 보면 이빨 빠진 이나 코에 난 사마귀쯤은 금세 아무렇지도 않아질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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