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경과는 스물 다섯에 처음 만났다. 그때 나는 파리에 살고 있었는데, 유럽여행을 하던 진경이 지인의 소개로 우리 집에서 지내게 됐다. 진경은 우리 집에 한 달만 있기로 하고 들어왔는데 두 달이 다 되도록 나갈 생각을 안 했고 길에서 만난 한국 사람들을 자꾸 집에 데려왔다. 나는 참다 못해 진경에게 나가 달라고 했다. 그로부터 15년 후 인사동에서 진경의 개인전이 열렸다. 전시 오프닝은 결혼식장만큼이나 손님이 많았는데 베레모를 쓴 웬 남자가 내게 다가와 악수를 청했다. “기억나세요? 파리 사실 때 제가 집에 갔었는데.” 그는 진경이 우리 집에 데려왔다 같이 쫓겨난 바로 그 한국 사람이었다.
유럽여행에서 돌아온 진경은 경기도 포천에 있는 자기 작업실로 사람들을 마음껏 초대했고, 나도 그 중 하나였다. 다들 지지리 돈이 없었는데 대학로에 좌판을 벌여 놓고 핀을 팔던 진경은 그나마 형편이 나은 편이라 작업실엔 항상 커피와 담배가 풍족했다. 어느 날 작업실에 불이 났다. 진경은 강원도 홍천으로 이주해 컨테이너에 살면서 집 지을 돈을 마련하러 다녔는데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거의 도움을 받지 못했다. 고생 끝에 집을 다 짓고 나자 다시 친구들이 놀러오기 시작했는데 진경은 살만해지니까 놀러오는구나 하고 아니꼬운 마음이 들더라고 했다. 내가 놀러갈 때마다 진경의 시선이 바로 그랬다. 우리 관계가 회복된 건 ‘앞산전’을 만들면서다. ‘앞산전’은 포천집에 관한 영화인데, 우리는 그 집에 대해 할 이야기가 많았다.
진경은 요즘도 만나는 사람마다 집에 오라고 초대한다. 하루는 진경과 침뜸 공부를 같이 하는 은지와 경란이 놀러 왔다. 둘은 자신들이 준비해온 재료로 스파게티를 해 저녁을 먹고 나서 은지가 뒷정리를 하는 동안 경란은 바닥에 엎드려 중국어 공부를 했다. 나는 그림 그리는 진경 옆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일을 마친 경란과 은지가 그림 그리기에 합세했다. 경란이 무얼 그릴지 고민하다가 그림 그리는 나를 그렸다. 경란은 처음엔 “이거 어렵네, 이거 어려워.”하며 스케치를 시작했는데, 차차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 알았어, 알았어.” 하며 자신감을 찾아갔다. 은지가 제일 먼저 그림을 완성하고 나서 피아노를 쳤다. 내가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불렀더니 경란이 저음으로 화음을 넣었다.
일찍 잠자리에 들었는데, 자다가 깨면 진경이 은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커피를 가는데 방에서 남자 두 명이 더 나왔다. 새벽에 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