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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지현 Jun 11. 2023

쥐잡기 대작전

아침에 부엌에 들어가다가 끈적끈적한 걸 밟았다. 내려다보니 접시 모양으로 생긴 직사각형 플라스틱 용기에 투명 젤리 같은 게 담겨있었다. 쥐 끈끈이였다. “쥐가 있어?” 내가 물었다. “팬티를 꺼내는데 속옷 상자에서 쥐가 나왔어.” 진경이 대답했다. 

그런데 쥐 끈끈이에 잡히라는 쥐는 안 잡히고 자꾸만 내가 그걸 밟았다. 고양이를 집에 들이면 안될까?

진경의 마당엔 여러 마리의 고양이가 밥을 먹으려고 드나 들었다. 그 중에는 집에서 키우던 고양이도 있다. 노랑이는 새끼 때 와서 일년 넘게 집안에 살았는데, 그림을 찢고 그림에 발자국을 찍고 다니다 밖으로 쫓겨났다. 노랑이는 처음엔 집에 들어간다고 방충망을 찢고 난리를 치더니 이제는 집에 데리고 들어가면 나간다고 난리를 쳤다. 

어느 날 노랑이가 지나가는데 보니 앞다리에 피가 벌갰다. 진경이를 불러 노랑이를 잡아 집에 데리고 들어가 다친 다리에 약을 발라줬다. 자세히 보니 반대쪽 다리에도 상처가 있었는데 아문 지 오래된 상처가 살이 푹 패이도록 깊었다. 다리뿐 아니었다. 그 작은 몸이 상처투성이라 어디를 쓰다듬어도 손끝에 상처 딱정이가 만져졌다. 밖에서 수고양이로 사는 게 쉽지 않은 것이다. 

노랑이를 집에 들인 김에 며칠 안에 두고 쥐를 잡게 하기로 했다. 그런데 노랑이는 치료가 끝나자마자 현관문 앞에 버티고 앉아 문을 열라고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내가 달래려고 다가갔더니 노랑이는 캔버스 사이로 쏙 들어가서 나오지 않았다.

새벽에 노랑이 우는 소리에 잠을 깼다. 무시하고 잠을 청하는데 부시럭 쿵쿵 소리가 나더니 문이 열리며 노랑이가 들어왔다. 기절하는 줄 알았다. 어떻게 문을 열었을까? 노랑이는 창가에 앉더니 나를 똑바로 쳐다보며 울기 시작했다. 창문을 열라는 거였다. 그 작은 몸에서 어떻게 그렇게 큰 소리가 날 수 있을까? 시끄러워 견딜 수가 없었다. 노랑이를 작업실로 내쫓고 문을 닫았지만 한 번 연 문을 두 번 못 열겠는가. 노랑이는 겹겹이 닫아 놓은 문을 차례로 열고 다시 방에 들어왔고, 창가에 앉아 언제까지고 울어댔다. 노랑이는 낮에는 캔버스 사이에 들어가서 자고 밤에만 일어나 울었다. 며칠째 집이 떠내려가게 우는데 목이 쉬지도 않았다. 고양이가 저렇게 울어대는데 정신이 온전한 쥐라면 이미 나가지 않았겠는가. 노랑이를 내보내기로 했다. 

노랑이를 내보내기 전에 목욕을 시키고 싶었다. 노랑이는 어찌 꼬질꼬질한 지 얼굴은 쳐다보기 겁나고 털은 기름때 찌든 싱크대처럼 끈적거려서 만지기 겁났다. 그러나 나한테 잡히지도 않는 고양이를 혼자서 목욕시킬 순 없었다. 진경에게 목욕시키는 걸 도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진경이가 한가할 땐 노랑이가 캔버스 사이에 들어가서 안 나오고, 노랑이가 밖으로 나오면 진경이가 할 일이 있다고 했다. 종일 동태를 살피다가 노랑이가 잡기에 딱 좋은 자세로 미싱 위에 앉아 있는 걸 발견하고 진경에게 알렸다. 진경이 마지 못해 노랑이를 잡아 안고 투덜거리며 화장실로 들어갔다. 

노랑이에게 비누칠을 하자 대걸레 빤 것 같은 구정물이 빠지면서 흰 털이 제 색을 되찾았고 때 딱지들이 떨어지면서 아문 상처들이 분홍빛을 드러냈다. 목욕에 야생성을 길들이는 효과가 있는 것일까. 목욕을 하고 나온 노랑이는 처음으로 울기를 멈추고 소파에 편안하게 드러누웠고, 나는 그 부드러운 털을 원 없이 쓰다듬을 수 있었다. 그날 밤 노랑이를 내보냈다. 쥐도 나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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