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9시, 야간근무를 마치고 돌아온 진우가 대문 여는 소리가 난다. 침대에서 자던 요다는 그 소리를 듣고 귀를 쫑긋 세우며 고개를 들지만 개들처럼 곧바로 뛰어나가지 않고 발자국 소리가 현관에 이를 때까지 기다렸다 몸을 일으킨다. 요다는 기지개를 켜며 느릿느릿 밖으로 나가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진우를 멀뚱하니 쳐다보는데, 진우는 개들처럼 흥분해 뛰어들어와 요다를 끌어안고 법석을 떤다.
진우는 요다를 품에서 내려놓자 마자 잠바를 벗어 걸 새도 없어 바닥에 던져 놓고 부랴부랴 집사의 업무에 돌입한다. 업무의 순서는 정해져 있다. 먼저 츄르로 된 영양제를 먹이고, 그 다음엔 물그릇을 씻는다. 방과 마루에는 진우가 일부러 도깨비 시장까지 가서 사 온 물그릇이 놓여 있다. 집사가 오래 집을 비워도 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큼지막한 유리그릇이다. 진우는 그것들을 가져다 거품을 왕창 내 씻어서 끓는 물을 부어 소독한 뒤 물을 넘치도록 부어 요다 앞에 갖다 놓는다. 물그릇은 세제로 씻을 필요가 없고, 소독까지 할 필요는 더더욱 없으며, 물은 요다가 먹고 싶을 때 알아서 먹으니 그릇을 들고 쫓아다닐 필요가 없다고 말해보지만, 소용없다. “
목 말랐지?” 진우는 요다가 물을 다 마실 때까지 옆에 서서 기다렸다 그릇을 제 자리에 가져다 놓고,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다. “이상하네. 오줌을 세 번 밖에 안 눴네. 김지현! 요다 어제 밖에서 오줌 눴어?” 진우는 위생장갑 낀 손으로 모래를 골라 오줌 덩어리와 똥 덩어리를 건져내 그 모양과 개수를 세심하게 살피며 화장실을 치운다.
진우는 그 일까지 마치고 나서야 옷을 갈아입고 식탁에 앉는다. 식탁 위에는 진우 몫의 커피와 샐러드가 놓여 있다. 나는 진작부터 내 몫의 커피와 샐러드를 가지고 방에 들어가 방문을 닫고 앉아 있는데, 글을 쓰기 위해서는 그나마 머리가 맑은 아침 시간을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다. 한편 요다는 현관문 앞에 망부석 모양 앉아 밖에 나가자고 조른다. 누가 오든지 가든지 웬만해선 몸을 일으키지 않는 요다가 진우를 맞으러 나간 건 밖에 나가고 싶어서다. “미안해. 좀만 기다려. 아저씨가 너무 배가 고파.” 진우가 토스터기에 빵을 넣으며 말한다. “이잉, 이잉.” 요다는 마루를 맴돌며 참을성 없이 칭얼대고 진우는 그때마다 “어, 알았어. 알았어.” 라고 대꾸하며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넣는다. 요다는 조르다 제풀에 지쳤는지 창가에 올라 앉아 얌전히 창밖을 보는데, 진우는 마음이 급해 아침을 다 먹지도 못하고 일어선다. “나가자.” 진우가 바닥에 던져 놨던 잠바를 입고 목줄을 들면 요다가 창가에서 내려와 현관으로 간다.
요다는 밖에 나가자마자 드러누워 몸을 뒹군다. “오른쪽으로 비비고, 왼쪽으로 비비고.” 진우가 요다의 동작에 맞춰 노래를 부른다.
나흘 뒤 아침.
‘ㅇ허ㅚ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ㄴ’
요다가 책상위에 올라와 자판을 밟고 다니며 나가자고 깽판을 친다. 글을 쓸 수가 없어 쫓아내고 방문을 닫아버렸더니 방문을 박박 긁으며 난리를 친다. 10시가 다 됐는데 진우가 늦는다.
“어디야?”
진우에게 전화를 건다.
“종로 지나는데. 왜?”
진우가 말한다.
“아니야.”
“요다는?”
“잘 있어.”
종로라면 집까지 30분 이상 걸린다.
하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난다. 방문을 열고 나가니 요다가 잽싸게 현관문 앞으로 달려가 앉는다.
대문을 나서자 요다가 계단으로 향한다. 아랫마을에 가려는 것이다. “내가 무릎이 아파서 그쪽으로는 못 가.” 나는 계단이 없는 쪽으로 목줄을 당긴다. 그러나 요다는 한사코 버틴다. 요다를 안아 계단에서 멀리 떨어진 골목 저쪽에 데려다 놓는다. 그러나 바닥에 내려놓자마자 요다는 수레를 끌듯 나를 끌고 골목을 거슬러 도로 계단으로 향한다. 결국 나는 목줄에 매달려 계단을 엉금엉금 내려간다.
요다가 누워 이리 뒹굴 저리 뒹굴 하고, 기둥에 멈춰 서서 뺨을 부비고, 벼과 식물을 골라 뜯어먹으며 오솔길을 간다. 오솔길은 밭을 끼고 이어지는데 밭을 빙 둘러 울타리가 쳐 있다. 허술하던 울타리는 해마다 개량돼 마침내 물 샐 틈 없는 위용을 갖췄다. 밭을 관리하는 노인이 고양이들이 밭에 드나드는 모습이 눈에 띌 때마다 울타리를 개보수한 결과다. 노인은 내가 인사해도 받지 않고 진우가 야쿠르트를 갖다 줘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고 봄부터 가을까지 울타리를 손본다. 버려진 문짝, 장판, 고무판, 합판, 철판, 슬레이트, 방충망, 철망, 차양막으로 된 울타리를 따라 내려가면 밭 입구에 이른다. 입구에 철망으로 된 문이 달려 있는데, 며칠 새 그 위에 또 다른 철망을 덧대 놨다. 땅에서 한 뼘 높이의 문 틈으로 고양이들이 드나드니까 그 틈을 막은 것이다. 요다가 밭에 들어가자고 성미 급하게 나를 잡아 끈다. 문고리가 걸려 있는 것으로 보아 노인은 안에 없다. 나는 주위를 살핀 뒤 고리를 풀고 안으로 들어간다. 겨우내 밭은 요다의 차지였다. 그러나 날이 풀리기 무섭게 노인이 돌아왔고, 요다는 그곳에 드나들 때마다 눈치를 봐야 하는 신세가 됐다. 밭 곳곳에 노인의 흔적이 역력하다. 무너진 음식물 구덩이가 제 모양을 되찾았고, 여기저기 비료포대가 놓여있다. 요다를 따라 밭에 발자국을 내며 돌아다니는데 갈아 놓은 흙이 갓 솜을 튼 이불처럼 폭신폭신하다. 볕이 잘 드는 곳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밭 가장자리에 일렬로 줄을 맞춰 올라오는 뾰족뾰족한 싹들이 눈에 띈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그 자리에서 싹을 띄운 부추다. 봄에 부추가 싹 틔우는 걸 누가 말리겠는가? 못 말린다. 부추만 못 말리는 게 아니다. 노인이 농사 짓는 것도 못 말리고, 요다가 아랫마을 순찰하는 것도 못 말리고, 진우가 요다를 떠받들어 모시는 것도 못 말린다. 하긴 내가 방문 닫고 들어가 앉아 있는 것도 못 말리긴 마찬가지다.
요다가 밭을 한 바퀴 돌아 자리를 물색한 뒤 하얀 앞발로 검은 흙을 폭폭 파 구덩이를 만들고 오줌을 눈다. 오줌 줄기가 길게도 나온다. 현장을 딱 걸릴까 봐 조마조마해서 밭 아래 내려다보이는 노인의 집을 살핀다. 마당에서 무슨 소리가 나더니 노인의 야구 모자가 나타난다. 밖에 나오려는 것일까? 요다가 오줌을 다 누고 흙을 덮는데, 대문 열리는 소리가 난다. 요다를 잡아 끌고 밭을 빠져나와 문고리를 잠그자 계단을 올라오는 야구모자가 보인다. 뒤늦게 인기척을 들은 요다가 혼비백산해 도망치고 나도 그 뒤에 매달려 도망친다.
집에 돌아오니 진우가 부엌에서 물그릇을 씻다가 뛰어나와 숟가락에 짠 영양제를 내민다. 요다가 낼름낼름 핥아먹는다.
(2024.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