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 한 개 더 있다고 이럴 일이야?
꺅~~~ 드디어 나도 화장실 두 개인 집에 산다!
결혼 15년 차, 부지런히 이사 다니던 시절을 뒤로하고 다섯 번째 집으로 이사 온 지 14일째다. 불과 2주 전에 살던 곳보다 면적은 두 배 가까이 커졌고, 방이 하나 추가됐으며 무엇보다 화장실이 하나 늘었다. 오래전에 지어진 빌라라 화장실 두 개 모두 개미 똥꾸멍만 한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평행 대비 면적이 매우 작지만 분리된 화장실이 한 개 더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 가족 삶은 통째로 달라졌다.
누구보다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은 나다. 아들 둘이 열 살 전후가 되면서부터 언제나 불편한 건 내쪽이었다. 아이들이 욕조에 물 받아서 늘어지게 목욕을 할 때면 용변 참기 달인이 되어야 했고, 내가 화장실에 있을 때면 날 제외한 3인은 왜 그렇게 느닷없이 똥이 마렵다는 걸까. 화장실에 앉아있는 사람이나 화장실 밖에서 다리를 베베꼬고 있는 사람이나 괴로운 건 매한가지였다. 아침마다 화장실은 북새통이었고, 언제부터인가는 뒤끝 지저분한 남자 3인으로 인해 깔끔하지 못한 변기 상태를 보면 부아가 치밀 때도 많았다. 당연하게도 내 목욕 시간은 아이들이 모두 학교에 갔거나 집을 비웠을 때에 가능했고, 위생용품 등 내 물건을 마음대로 두기에도 신경이 쓰이는 시기가 되고 만 것이다. 어찌 됐든 속이 끓고 배가 끓던 시절은 옛날옛적 과거가 됐다.
이사 전부터 통보했다. 남자 3인은 거실 화장실을 쓰고 안방화장실은 나만의, 엄마만의 단독 화장실로 할 거라고. 물론 남편은 반기를 들었지만, 인테리어 공사를 할 때부터 난 철저히 나만의 화장실을 만들기 위해 여념이 없었다.
난생처음 가져보는 나만의 화장실 포인트 컬러는 그린이다. 지금은 우리 집이 된 이 집을 보고 첫눈에 반했던 이유가 거실 창밖의 초록이었다. 오로지 파랑 밖에 모르던 난데, 스리슬쩍 초록으로 취향이 움직이고 있나 보다. 어렵지 않게 고른 다크 그린 타일에 매치할 컬러는 그레이 계열로 정한 뒤, 정말 세상의 모든 회색은 다 본 것 같다. 남들이 보면 그게 그거 아니냐고 할 테지만, 나만 아는 한 끗 차이를 소홀히 할 수 없다.
화장에는 영 소질이 없어 화장대 따위는 필요 없기 때문에 화장실에 간단한 화장품을 두고 사용하기로 했다. 세면대 옆으로 공간을 충분하게 두되, 단정해 보일 수 있도록 수납은 (널브러뜨리지 말고) 하부장에 몽땅 넣기로 혼자 굳은 결심 했다. 그러자면 샤워공간을 제외하고는 건식 사용이 불가피하다. 기존 욕조를 철거하고 그 자리를 샤워부스로 대체했다. 고급스럽고 깔끔한 모양새를 위해서는 조적칸막이가 제격이지만, 일부 공간 건식 사용을 위해서는 완벽한 물 막음이 되어야 했기에 어쩔 수 없이 유리 샤워부스가 가장 합리적이다.
그렇게 오롯이 내 취향을 고스란히 담아낸 공간이 완성됐다. 두 명이 마주 선다면 코가 마주칠 만큼 비좁은 화장실에 불과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 아늑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소중한 나만의 영역이다.
문을 열 때마다, 한 발 내딛고 들어갈 때마다 행복지수가 솟구친다. 내가 둔 물건 위치가 한치 어긋남 없이 그대로 있다는 사실이 매번 감격스럽다. 흐트러트릴 누군가가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안도감을 주는지 모른다.
크고 좋은 집에는 왜 방보다 화장실이 더 많은 걸까, 의아했는데 이제는 안다. 화장실은 많을수록 좋다는 걸.
개인별 공간이 주는 위안은 청소의 귀찮음에 비할바가 아니다.
화장실 하나로 이럴 일이냐 싶겠지만 이러고도 남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