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에 진심인 편, 첫 번째
우리 집의 랜드마크가 어디냐고 묻는다면 한 치의 망설임 없이 답할 수 있다.
바로 거실창이다.
세로로 긴 여섯 개의 통유리가 곡선의 모양새로 이어진 창, 그리고 창밖으로 보이는 초록과 아늑한 윈도시트. 내가 그리던 상상이 현실이 됐다.
사실 내가 이 집을 보고 첫눈에 반했던 순간은 이 모습이 아니었다.
한 때는 '고급빌라'에 많이 시공됐지만, 지금은 비싼 자재비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애물단지에 불과한 구식 새시 라운드창.
천편일률적인 베란다의 모습이 아니라서 좋았고 곡선으로 된 부분의 통유리도 마음에 들었다. 본격적인 인테리어 공사가 시작될 때까지만 해도 라운드창은 교체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다. 물론 순전히 돈 때문이다. 살던 집도 팔리지 않은 채 덜컥 사버린 집이었기 때문에 최소한의 비용으로 집수리만 하자는 모토로 시작된 공사였다. 자재 중 가장 비싼 몸값을 자랑하는 새시는 애시당초 욕심도 내지 않았다. 라운드새시는 보통의 평면 새시보다 적게는 1.5배, 많게는 2배 이상 비싸다. 눈물을 머금고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다짐은 포기하라고 있는 법 아니던가. 초록뷰의 이점을 최대한 살리기 위해서 거실 베란다를 확장하기로 한 후 이쁘게만 보였던 창이 눈엣가시가 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비바람을 비롯해 억겁의 시간을 견디느라 뿌옇게 되어버린 유리가 문제였다. 탁한 유리를 볼수록 시야는 물론 마음도 답답해져 갔다. 둥그런 유리의 정가운데에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는 손가락 한마디 굵기의 시커먼 실리콘도 꼴 보기 싫었다.
여기를 고치면 저기가 마음에 안 들고 저기를 고치면 다시 여기를 고치고 싶은 인테리어의 늪! 이왕 하는 김에 해버릴까? 지금 안 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야,라는 막무가내식 자기 합리화에 빠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인테리어의 고속열차에 올라타고 만 것이다. 베란다확장으로 내부 새시를 드러내면 뿌연 유리는 물론 꼴 보기 싫은 시커먼 실리콘도 더욱더 잘 보일게 뻔했다. 나의 사랑 초록을 가로막고 있는 두 가지를 당장 뿌리째 뽑아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내 발목을 잡는 건 역시나 돈이었다. 그렇다면 머리를 굴려야 한다. 돈을 최소화하고 변화는 극대화할 수 있도록. 인테리어 공사를 하고자 마음먹은 순간부터 매일 밤 난 핀터레스트 속을 헤매었다. 그리고 내린 결론은 이왕 이렇게 된 거 우리나라에서는 흔치 않은 스타일, 그러니까 유럽의 어느 포근한 거실을 재현해 보고 싶은 욕심이 꿈틀댔다.
눈을 감아도 눈앞에서 맴돌던 28년 묵은 유리를 떼어냈다. 속이 다 후련했다. 유리를 걷어낸 후 보이는 초록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하마터면 이토록 탁한 초록을 보고 살뻔했다니 아찔했다.
그렇다면 이제 뻥 뚫린 자리에 유리를 다시 채워 넣어야 한다. 앞서 얘기했듯이 라운드유리는 비싸다. 때문에 비용 절감 아이디어를 짜내야 했다. 둥그런 유리를 편평하게 만드는 꼼수, 바로 조각을 내는 것이다. 좌우대칭으로 총 여섯 개의 길쭉한 유리를 사용하고 그 사이사이에는 나무로 틀을 만들고 흰색 필름을 덧댔다. 네 조각은 뭔가 엉성하고 여덟조각은 너무 자잘해서 답답해 보일 것이다. 여섯 조각이 최적이다. 그 결과 창밖으로 에펠탑이 보일 것만 같은 유럽 한 스푼 떠먹은 감성이 뿜어져 나온다. 소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격으로 돈 아끼려다 얻어걸린 그 어디에도 없는 디테일이 아닐 수 없다.
매일 아침, 눈을 떠 거실로 나오면 아침 일곱 시의 햇살이 쏟아져 들어온다. 나만의 햇살이다.
홀린 듯이 창가로 다가가 한참을 바라본다.
한여름, 공사를 시작할 때만 해도 눈부시고 무성한 초록이었던 창밖은 노랑으로 옷을 갈아입는 중이다.
눈을 뜨면 마주하는 풍경이 어제와 또 다르다. 생명을 가진 나무의 일상을 함께하는 삶, 멋진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