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파란 Nov 07. 2023

남편은 죽었다 깨도 모르는 원목 창틀 감성

창에 진심인 편, 두 번째

창문 테두리를 나무로 덧댈 거야
화분도 올리고 책도 올릴 수 있는 선반이 되는 원목 창틀,
너무 예쁘지?



남편에게 긁어모아둔 다양한 나무 창틀 사진을 보여줘도 이해불가 표정이다. 아무리 설명하고 알려줘도 감흥이 없는 눈치다. 아마 죽었다 깨어나도 다르지 않을 듯싶다. 나와는 너무 다른 사람과 취향을 공유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 차라리 잘됐다. 감 놔라 배 놔라 참견하는 것보다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리하여 정말 나 하고 싶은 대로 다 했다.




그렇다면, 어느 방의 창을 그토록 원하던 원목창틀로 만들 것인가를 정해야 했다. 처음 집을 보러 가서 후다닥 찍은 사진과 계약금을 보낸 후 다시 찾은 집을 찍은 사진 속의 창문들은 아무리 들여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모두 굳게 닫혀있는 데다 어두운 색의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아무리 내가 집을 사겠다고 계약을 했어도 버젓이 살고 있는 분이 계신 상황에서 "뷰 좀 보겠습니다" 하며 커튼을 젖히고 창문을 벌컥벌컥 열어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래퍼런스라는 명목으로 캡처해 둔 이미지로 휴대폰 사진 어플 용량이 터져 나갈 즈음, 드디어 짐이 모두 빠지고 본격적인 철거가 진행됐다. 예산 절감을 위해 남길 것은 남기고 털 것은 모두 털어낸 후 다시 찾은 집에서야 비로소 결정할 수 있었다. 초록이 빼곡한 창. 안방과 거실과 같은 선상의 방이었지만, 각각의 장소에서 보이는 나무는 모두 다르다. 채도가 다른 초록이 겹쳐있는 풍성하고도 오묘한, 그 방만의 특유의 풍경이었다. 방의 크기는 가장 작았지만, 창이 보여주는 바깥세상의 크기는 가장 컸다. 마치 숨을 쉬고 있는 것 같이 살아있는 액자다.



짐이 빠지기 전 찍어두었던 수십 장의 사진 속에서 이 방의 예전 모습을 서둘러 찾아보았다.


커튼과 불투명 유리에 가려진 창문 너머 다른 세상이 있었다니

                    

역시 사람이나 뭐나 속내는 들춰보기 전에는 모른다.





공사가 진행되며 생각도 이리저리 널뛰었으나 결론은 나무 색은 짙은 월넛, 폭은 가능한 넓게 그리고 창은 통창으로 하기로 했다. 격자무늬가 한층 아늑한 느낌을 줄 수 있으나 거실창에서 토막창의 소원풀이를 하기로 했으니 이제는 단연코 가릴 것 하나 없는 통창 차례. 단, 여기서도 디테일을 위한 치밀한 계산은 필요하다.


나무와 나 사이의 걸림돌이 너무 많다


베란다 외창의 크기로 인해 안쪽에 통창을 한들 바깥 창의 문틀이 정가운데에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뷰도 좋지만 한도 끝도 없이 돈을 쓸 수는 없기에 바깥창의 새시는 그대로 사용하되 좌우 위치를 바꾸기로 했다. 다행히 왼쪽으로 큰 창, 오른쪽으로 작은 창의 배열이었기 때문에 좌우를 바꾸면 방 안에서 보이는 오른쪽 창이 큰 창이 되어 못생긴 문틀은 최대한 가장자리로 몰아낼 수 있었다.



치열했던 고민의 결과물


막판에 에어컨 실외기 위치가 불가피하게 바뀌면서 또다시 난관에 봉착했지만, 이 정도는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 최선이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주어진 역할에 따라 사람이 달라지듯 나만의 공간 역시 사람을 바꾼다. 계속 머물고 싶고, 시간을 보내고 싶은 애정이 담긴 내 자리. 나만 아는 한 끗 차이로 만들어진 이곳에서 오늘도 난 생각하고 상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창을 여섯 조각냈더니 유럽 한 스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