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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진 Jan 16. 2021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21세기 한국 정치를 뒤흔든 두 번째 드라마,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구속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는 대한민국 헌정사상 최초로 대통령 탄핵심판 인용 결정을 내렸다. 국회에서 탄핵 소추된 대통령을 파면한 것이다. 불체포특권 등 현직 대통령으로서의 권한을 상실하게 된 박근혜는 결국 3월 31일 뇌물수수와 직권남용 등 13개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되어 서울구치소에 수감된다. 그로부터 3년 9개월 만인 2021년 1월 14일 대법원은 징역 20년, 벌금 180억 원을 확정 선고했다.   


이로써 2016년 10월 JTBC가 최순실의 태블릿 PC를 공개한 이후 우리 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든 세기의 국정농단 사건이 마침내 마무리되었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래 처음으로 득표율 50%를 넘어섰고(51.6%), 사상 최다 득표 기록을 세운(1577만 표) 첫 여성 대통령 박근혜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그렇게 처참하게 몰락하고 말았다.      


대한민국 정치사에서 박근혜만큼 파란만장한 굴곡을 겪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 육영수 여사가 피격된 이후 20대 나이에 일국의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고, 아버지 박정희 대통령 역시 부하의 총에 맞아 살해당하는 비극을 지켜보아야 했다. 길었던 은둔과 칩거 끝에, 정치인 박근혜로 복귀한 후 선거의 여왕으로 불리며 흔들리던 보수야당을 지켜냈다. 당내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에게 치명적인 패배를 당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재기에 성공하여 제18대 대통령에 당선된다.


보수와 진보의 불꽃 튀는 양자대결 끝에 사상 최초로 과반이 넘는 지지를 받고 당선된 박근혜


조선왕조 500년 사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폭로와 반전, 좌절과 배신의 비극적 정치드라마가 대단원의 막을 내린 지금, 굳이 이 글을 쓰는 이유는 결코 박근혜를 부관참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나의 목적은 정치적인 측면에서 이른바 '박근혜 신드롬'의 특징과 한계를 차분히 되새겨보고, 현시점에서 무분별한 사면론이 나오는 현상을 비판하기 위해서다. 궁극적으로는 21세기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에 대해 함께 고민해보고자 한다.    




그야말로 혈혈단신으로 정치에 입문한 박근혜가 그토록 원하던 대통령이 되어 다시 청와대에 입성하기까지, 과연 무엇이 사람들을 그렇게 열광하고 지지하게 만들었을까? 박사모 수준은 아니더라도, 중도성향의 많은 유권자들이 박근혜를 좋아하고 대통령감이라고 평가한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나는 크게 2가지의 매력 포인트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한다. 물론 이 장점은 동전의 양면과도 같은 치명적인 문제점과 연결된다.


정치인 박근혜가 지닌 첫 번째 장점은 신비스러운 고결함이다. 박정희 대통령의 장녀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청와대 생활을 했고, 평생 독신으로 지내며 사생활을 좀처럼 드러내지 않은 그녀의 모습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이렇다. 문제는 이런 퍼스낼리티가 부정적으로 발전할 경우, 공감능력이 부족하고 지나친 선민의식을 갖게 되는 비극을 잉태한다는 점이다.


따지고 보면 박근혜는 대다수 사람들이 살아온 평범한 인생을 한 번도 겪어보지 않았다. 중고등학생 시절부터 청와대에서 공주처럼 극진한 보살핌을 받고 자랐고, 20대에는 대통령을 공식적으로 보필하는 영애로 대접받았다. 대통령과 임금님이 동일시되던 1960~70년대 시골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영애님 오셨다"라고 큰 절을 올리면 사양하지 않고 그대로 받았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두 번째 매력은 어눌하면서도 단도직입적인 말투다. 기본적으로 박근혜의 연설 능력은 달변과는 거리가 멀다. 특히 대통령 재임 시절 박근혜는 중언부언하고 두리뭉실한 어투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조롱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런 어눌함이 오히려 진정성을 지닌 호소로 다가왔다. 처세술에 능한 달변의 소피스트보다는 더듬거리면서도 우주의 기운을 부르는 여왕이 이 시대의 진정한 구세주가 아니던가.


박근혜 어록에서 단연 돋보이는 것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툭 던지는, 확신에 찬 한 마디다. 면도날 피습사건 후 주위에 말했다는 "대전은요?", 공천 파동 후 기자회견에서 말한 "저도 속고, 국민도 속았습니다", 대선후보 토론회에서 궁지에 몰리자 내뱉은 "그래서 대통령 되려고 하는 것 아니에요?" 등이 대표적이다. 김영삼 못지않은 동물적 정치감각을 지닌 박근혜는 단순하면서도 간결한 멘트로 위기를 기회로 전환했다.


20대 영애 시절의 어느 행사장에서 운명처럼 함께 찍힌 박근혜와 최순실 그리고 이명박


야당 정치지도자로서 정책에 반대하거나 선거운동을 할 때에는 박근혜의 이런 특성이 빛을 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하는 대통령이 된 후에는 이 모든 장점이 되려 심각한 문제로 전락했다. 여기에 평생 배신의 트라우마가 강하게 자리 잡은 박근혜는 아버지 시절부터 대를 이어 충성을 바친 김기춘과 개인적으로 오랜 친분이 있는 최순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신뢰하지 않았다.


애증이 교차하는 박근혜보다 더 큰 비판을 받아야 할 대상은 그녀 주위에서 호가호위했던 정치인들이다. 지근거리에서 한 번이라도 토론을 해보면, 박근혜의 독특한 정신세계에 충격을 받거나 실망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박근혜라는 매력적인 정치인의 후광을 이용했고, 그녀를 도구 삼아 자신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했다. 모든 것이 만천하에 밝혀진 지금도 그들은 반성은커녕, 당당하게 자기주장을 펼치고 있다.

  



대한민국 제18대 대통령 박근혜는 수인번호 503번으로 3년 9개월째 독방에 수감되어 있다. 어깨 수술로 80여 일 강남성모병원 VIP병실에 입원한 적도 있지만, 비교적 조용하게 교도소 생활을 견뎌내고 있다. 제21대 총선을 한 달여 앞둔 2020년 3월에 옥중서신을 공개하며 다시 한번 '선거의 여왕' 다운 정치적 영향력을 펼치려 했지만, 세상은 아무도 그녀를 알아주지 않았다.


최순실이라는 비선 실세를 통해 국정을 농단하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를 작성하여 표현의 자유를 억압했으며,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 쌈짓돈으로 받은 죗값은 단호했다. 최종적으로 선고된 형량에 대해서는 보는 시각에 따라 논란이 있을 수 있지만, 우리 사회가 좀 더 투명하고 깨끗한 방향으로 나아가기 위한 엄정한 판결이었다는 데에는 대다수 시민들이 동의하고 있다.  


박근혜 탄핵 촉구 촛불시위에 참가하기 위해 광화문 세종로를 가득 메운 시민들


문제는 선거를 앞두고 정치공학적인 차원에서 박근혜를 포함한 전직 대통령 특별사면론이 여기저기에서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야당은 그렇다 치고, 청와대와 집권여당은 박근혜 사면으로 야기될 열성 지지층의 반발과 보수층의 우호적 반응, 야권의 분열 등을 계산하며 눈치를 보고 있다. 진심으로 뉘우치고 사과해야 사면을 고려하겠다는 갈지자 행보를 걷기도 한다. 원칙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이해득실에만 몰두한 그릇된 행태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원칙은, 지난 선거에서 박근혜를 대통령으로 뽑은 1500만 명 이상의 유권자를 포함해 참담했던 그 시절을 함께 보낸 많은 국민들의 아픔을 어떻게 달래고 치유하느냐에 달려 있다. 마음의 상처를 회복하는 데에는 당연히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어설픈 국민통합 명분 하에 특별사면을 서두르는 것은 지금까지 힘들게 진행되었던 수사와 재판 과정이 정치적인 계산으로 작동했다는 고백이나 다름없다.


현직 대통령이었던 박근혜가 탄핵되고 구속당하는 과정은 우리 현대 정치사에 뼈저린 교훈으로 남게 될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울 수 있느냐는 점이다. 과도하게 권력이 집중된 대통령 중심제를 제도적으로 보완하는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경제역량과 대중문화의 힘이 정치영역에도 반영될 수 있도록 선거제도와 정치문화를 획기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민의가 제대로 반영되고 타협과 토론 속에서 상대방을 존중하는 성숙된 정치문화, 젊은 정치지도자들이 체계적으로 육성되고 소신껏 활동할 수 있는 정치 시스템, 갑질을 일삼는 특권층이 아니라 국민에게 봉사하는 자세로 낮게 임해야 한다는 정치인들의 의식전환 등 우리 정치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은 분명하다. 이는 21세기 한국 사회를 뒤흔든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이 우리 모두에게 던진 묵직한 교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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