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 푸른 Oct 28. 2019

마음의 이끌림을 따라

시민 다독상 - 얼굴 빨개지는 아이

“윤경이는 책을 많이 읽으니, 크게 성공하겠구나” 

청계 초등학교, 청계 도서관.

수업이 끝나면 도서관에 달려갔습니다. 책이 보이는 대로 읽었습니다. 내용을 다 이해를 못했는데 계속해서 책을 빌려갔습니다. 연말에는 가장 많이 책을 빌려 간 시민에게 주는 상을 받았습니다. 시상식에는 어른들이 받는데 초등학생은 유일했기에 자랑스러웠습니다. 부모님의 칭찬에 어깨를 당당히 펼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없고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아이가 있었습니다. 매일 고개를 푹 숙이고 다녔습니다. 발표할 때가 되면 얼굴이 붉어지고 목소리가 떨렸습니다. 원래는 굉장히 나서기 좋아하고 나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앞에만 나가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습니다. 중학교때 음악 발표시간이었습니다. 열심히 거울을 보며 노래연습을 했는데 말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 저저.. ” “그래서,,,” 그만 얼굴은 붉어지고 고개를 떨구곤 했습니다.” 음악 시간 다른 아이들이 발표하는 내내 고개를 떨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던 학기 말 성적표가 나왔습니다. ‘이 성적표를 어떻게 보여드려야 할까?’      


초등학교 2학년이었습니다. 방 안 문이 열려있는데, 아버지의 흥분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중학생 오빠들은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성적표를 들고 혼나고 있었습니다. ‘저렇게 혼나지 않으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 

성적은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윤경이는 어느 대학에 가고 싶어?” “저는 이대에 갈거에요.” “그래 열심히 해봐. 갈 수 있어” 약속을 지키기 위해 중고등학교 때 책상에만 열심히 앉아있던 아이는 마음이 떨려 시험지도 제대로 보지 못했습니다. 수능점수가 500점 만점에 100점이 나왔습니다. 어머니가 데리고 병원도 가보고 상담 센터에 가서 심리 검사도 받아보았습니다. 의사는 약 대신 특수 처방을 내주었습니다. 집에 돌아가서 드라마를 보라고 했습니다. 공감도 해보고 울고 웃기도 해보라고 했습니다. 감정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고 억누르니 마음에 병이 생긴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부모님 마음에 들 수 있을까?’ 가면을 쓰고 살았습니다. 책은 부모님의 인정을 받기 위한 수단이었습니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어서 책을 읽었습니다. 책은 안전했고, 부모님도 안심시킬 수 있는 훌륭한 도구였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하고 싶은 것, 만나고 싶은 것을 참아가며 공부만 열심히 했습니다. ‘혼자 두면 알아서 크겠지’ 부모님은 당시 알아서 클 줄 알았다고 합니다. 부모님과의 교류 없이 빈 마음을 책으로 채워갔습니다. 중고등학교때는 책을 보면서 고개를 숙이며 앉아있는 우등생의 가면을 쓸 수 있었습니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이란 애니메이션을 아시나요? 치히로는 부모님과 자동차를 타고 가다 낯선 곳으로 들어갑니다. 테이블에는 주인이 없고 맛있는 음식이 가득했습니다. 치히로의 부모님은 음식을 먹어 치우다가 돼지로 변합니다. 치히로는 부모님을 되찾기 위해 본명을 잃고 마녀와 센이란 이름으로 계약합니다. 센이 치히로를 되찾는 과정은 잃어버린 소중한 것을 되찾아가는 과정입니다. 고3 때 우울함이 찾아왔지만 인생을 다시 찾아가고 선택할 수 있었습니다. 


책이 도피처였음을 깨달았습니다. 소심했던 아이는 책으로 희망을 찾았습니다. <놓치고 싶지 않은 나의 꿈 나의 인생>이라는 책이었습니다. ‘목표를 세우고 실행하라.’라는 구절이었습니다. ‘나는 내 인생을 어떻게 살고 있지? 내가 원하는 것은 뭐지? 누구를 위한 삶이지?

눈물이 났습니다. 책은 도피처였지만 결국 책 덕분에 제 인생을 설계해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인생의 목표를 적어가기 시작했습니다. 좋아하는 것과 타인의 인정을 받기 위한 것 사이에서 나에게 묻고 또 물었습니다.     

길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수시 모집에 지원하고 합격합니다. 스스로 한 첫 선택이었습니다. 부모님은 그때부터 선택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변화가 찾아왔습니다. 대학 이전에는 부모님이 원하는 대로 살았고, 대학 이후로는 온전히 나의 선택에 모든 것을 걸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