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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Feb 14. 2023

쇼생크 탈출이 아니라 쇼생크 '구원'입니다

구원 교리의 핵심을 가르쳐 줍니다

감옥에서의 탈출 이야기는 언제나 흥미로운 소재입니다

감옥 탈출을 다룬 영화나 소설이 꽤 있는데

이 중에서 최정상은 뭐니 뭐니 해도

팀 로빈스 주연의 영화

 '쇼생크 탈출'이 아닌가 합니다


이 영화는 해마다 발표하는

죽기 전에 반드시 봐야 하는 인생 영화 순위에서

포레스트 검프와 함께 항상 1,2위를 다투는,

정말 어디 하나 흠잡을 데 없는 명작입니다


영화의 포스터에도 나오듯이

주인공 앤디가

하수구를 통해 교도소를 탈출하여

양팔을 벌리고 비를 맞는 장면은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마침내 자유를 찾는

주인공의 기쁨과 감격이 고스란히 전해지는

정말  명 장면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이 영화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한 죄수의 통쾌한 탈출 영화만은 아닙니다

영화의 제목부터가 의미심장하기 때문입니다


<쇼생크 탈출이 아니라 쇼생크 구원>


‘쇼생크 탈출’이라고 번역된 이 영화의 원제목은

‘쇼생크 리뎀션’입니다

‘리뎀션’이라는 말은 본래 구원이나 해방을 뜻하는 말로써

일반적으로는 잘 쓰이지 않는

지극히 종교적인 말입니다


 ‘쇼생크’라는 말 또한

주인공이 수감되어 있는 교도소의 이름인데

재미있는 사실은 '쇼생크'가

구약 성경에 등장하는 한 인물의 이름이라는 사실입니다


구약 성경 열왕기서에 따르면 쇼생크는

여로보암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을 피해서

이집트(애굽)로 도망했을 때  

그를 피신시켜 준 애굽(이집트)의 왕 이름입니다

이 쇼생크라는 이름이 열왕기서에는

애굽 왕 ‘시삭’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쨌든,

영화 속에서 구원을 얻은 주인공의 이름은 앤디 듀프레인인데

정작 영화 제목은 ‘쇼생크 리뎀션, 즉 쇼생크 구원’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서

주인공 앤디의 통쾌한 탈출을 다룬 영화가

그가 수감되어 있었던 교도소의 구원이란 제목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 이유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 이유를 올바로 깨닫게 된다면

기독교 교리의 핵심적인 부분을 꿰뚫게 되는 것이니

귀 기울여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은

자유에 대한 희망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주인공 엔디 듀프레인이

마침내 교도소를 탈출하여 자유를 쟁취하는

희망과 구원에 관한 이야기이자


또한 동시에

그의 탈출로 인해

온갖 비리의 온상이었던 교도소에

개혁이 이루어지는

쇼생크 교도소 자체가 구원받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단순히 탈옥 이야기를 넘어선

‘보편적 인간의 구원’에 관한

심오한 메시지를 담은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


기독교의 가장 기본적 교리는

원죄를 지닌 인류가


하나님이자 동시에 완전한 인간인

예수라는 역사적 인물에 힘입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 교리에 따르면

모든 인류는 단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원죄를 지은 죄인입니다


창세기 때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아담의 후손인 인간은

낙원에서 추방되어

마치 교도소에 수감된 죄수들처럼

자유를 잃은 채 살아갑니다


그러나 인류는

세상이라는 감옥에 너무나 익숙해져  

오히려 세상을 벗어나

진정한 자유를 얻는 것을 두려워하며 살아갑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의 후반부에는

50년 이상 복역을 하다 가석방으로 출소된

브룩스라는 늙은 죄수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는 모범수였기에 가석방되었지만

평생을 감옥 생활에 길들여진 그는

끝내 주어진 자유를 감당하지 못하고

모텔방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합니다

교도소에서 그의 자살 소식을 전해 들은 동료들은

자유를 찾은 그의 자살을 의아해 하지만

앤디의 친구 레드는 동료들에게 이런 의미심장한 말을 합니다


“너희가 볼 때는 저 담벼락이 장애물로 보이지?”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저걸 의지하게 돼.”     


저는 세상 속에 살아가는

우리 또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이라는 감옥에 종신형을 받고 태어난 우리는

살아서는 이곳을 절대로 탈출할 수 없습니다


보안 시설이 너무 완벽해서라기보다는

스스로 자유에 대한 희망을 포기하거나

혹은 울타리 안에 너무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 때 이스라엘 백성들 또한

주어진 자유를 감당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광야 생활 내내 불평하며

애굽에서의 종살이를 오히려 그리워합니다


결국 광야 1세대는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만 빼고는

모두 광야에서 생을 마감합니다



<다시 기독교 교리로 돌아와서…>


원죄를 안고 태어난 인간의 구원은

예수라는 한 인간이 출현으로

비로소 가능하게 됩니다


온 인류의 시조였던 첫 번째 인간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겨 그의 후손인

온 인류가 죄인의 신분이 되었다면


이번에는

온 인류를 대표해서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의 순종으로 인하여

모든 사람의 구원이 가능해졌다

라는 것이 기독교의 구원관입니다


즉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희생 제물이 되심으로

인류의 죄를 대신 갚은 것이고

하나님께서 이것을 승인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건이 곧

하나님의 용서에 대한 증거이고

그래서 부활절이 그렇게 큰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우리 죄를 대신해서 죽으시고

다시 부활했다는 사실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원죄를 용서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

구원에 관한

기독교의 핵심 교리이고


이러한 과정을 통한 구원을

기독교 용어로 리뎀션, 구속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교회 다니시는 분들 중에

우리가 착한 일, 선한 일을 해서

그에 대한 보상으로

죽어서 천국에 간다고 믿는 분이 계신다면

이는 개신교의 교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교회에 출석만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실 슬프게도

그렇게만 알고 교회 다니는 분들의 거의 대부분이죠)


오해 없기 바랍니다 이 말씀은

기독교의 구원은 오직 믿음으로만 가능하다는

기독교의 구원 교리를 말씀드리는 것이지

선한 일을 할 필요가 없다거나

착하게 안 살아도 된다라는 말이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성경은

‘행위가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며

선을 행하라고

명확하게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의

출애굽기(이집트 탈출기)는

이러한 기독교 구원 교리의

근간을 이루는 스토리입니다


출애굽기는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인도 아래 홍해를 건너

애굽을 탈출하는 이야기입니다


여기서 애굽 백성들은 구원을 갈망하는 모든 사람들을 상징하고

모세는 그들을 구원하는 메시아, 즉 예수님을 예표합니다


그런데 이야기를 가만 살펴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탈출하는 데에는,

즉 그들이 구원받는 데에는

그들이 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저 모세를 믿고 그를 따르면 그만이었습니다


기독교의 구원 교리 또한 마찬 가지로

구원에 있어서 우리들이 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가르칩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믿고 따르듯

그저 예수를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에 가면

예수 천당, 불신지옥

예수만 믿으면 천국 간다라든지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 라는 말을

쉽게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절반의 진리에 불과합니다


성경은 단순히 애굽에서의 탈출만으로

구원으로 설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아래 홍해를 건너

이집트를 탈출해 나오는 것은

사실 구원의 시작에 불과합니다


본격적인 구원, 즉 구원의 완성은

약속의 땅인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입성은 그리 만만치가 않았습니다


출애굽 때는 백성들이 할 일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열 가지 재앙으로 구해주셨고

홍해를 갈라서 인도해 주셨습니다


광야에서도 하나님은 그들의 불평과 원망에

일일이 답해주시고 해결해 주십니다

고기가 먹고 싶다면 메추리 떼를 몰아주시기도 하고

물이 없다고 불평하면 반석에서 물을 내주시기도 합니다


그런데

가나안 입성 문제만큼은 엄격하게 대하십니다

정탐군을 보내게 하시고

스스로 결단하게 하십니다


결국 두려워서, 용기가 없어 가나안 진출을 포기한  

출애굽 1세대는 광야에서 모두 죽고


가나안 입성에 대한 믿음을 가진

그들의 자손들이 그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실 성경 출애굽기는

애굽을 탈출하는 이야기 라기보다는

가나안에 들어가기 위한 이야기라고 보아야 합니다


애굽으로부터의 탈출은

애당초 가나안 입성이라는

목적이 있는 탈출이라는 것입니다


이 문제를 우리의 구원과 연관시켜 생각해 본다면

구원은 단지 자유롭게 되는 것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자유롭게 된 이후가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영화 쇼생크 탈출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교도소에서 석방되거나

탈출하는 것이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석방된 늙은 죄수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든지

주인공 앤디가 교도소를 탈출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지 않는 것도

아마 이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은 믿음을 가진 자들이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결국 신앙이란

단지 ‘예수 믿으면 천당 간다’라는 믿음이 아니라


삶 가운데 성숙한 모습으로

자라나는 것에 관한 문제입니다


성경에서 구원의 대명사처럼 쓰이는

거듭남(다시 태어남)은

출애굽과 비교될 수 있습니다


출 애굽만으로는 구원이 완성되지 않듯이

거듭남이 곧 구원은 아닙니다

거듭난 이후에 어떻게 살아가느냐 가 더욱 중요하다는 말씀입니다


태어남은 올바른 성장을 전제로 할 때 비로소 의미가 있습니다

바르게 성장하지 못한 탄생은

오히려 저주받은 인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예수만 믿으면

교회에만 출석하면

구원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는 줄로 압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거듭남이 은혜로써 거저 주어진 구원의 시작이라면

구원의 완성은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삶을 통해 용기 있게

우리의 구원을 증명해 보여야 합니다

끝까지 희망을 잃지 않았던 앤디 듀프레인이나

여호수아를 믿고 여리고 성을 향해 진격했던 광야 2세대처럼


삶을 뚫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빛과 같은 존재로서

소금과 같은 존재로서

삶을 살아갈 때


우리 주변이 환해지고

깨끗해집니다


내가 나의 구원을 증명해 낼 때

나의 구원뿐만 아니라

나의 주변에도 구원의 빛이 비추이게 된다라는 것입니다


여기가 바로 기독교 신앙의

깊은 이해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나의 구원은

단지 나의 구원으로만 끝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쇼생크 탈출은

구원의 의미를 알려주는 영화입니다

단순히 주인공이 탈출하여

자유를 얻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가 아닙니다


이 영화는 앤디가 품은 희망에 관한 영화이고

그 희망으로 인해

앤디의 삶이 변하고

앤디가 속했던 쇼생크 교도소가 변하고


결국엔 희망을 잃지 않은 모두가 구원받는

희망에 대한 찬가인 것입니다


그가 품은 소망이 그를 구원해 준  것이며


Fear can hold you prisoner

Hope can set you free


그의 구원은 또한 쇼생크 교도소에

구원의 빛을 비추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영화의 제목이 바로

쇼생크 리뎀션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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