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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동엽 Oct 10. 2024

가이사의 것, 하나님의 것

그럼 내 것은?

국가와 정치에 대한 기독교인의 태도와 관련된 가르침은

성경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껏해야 오늘 본문에서 다룰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내용뿐입니다.

이 부분도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대답일 뿐

예수님이 먼저 적극적으로 가르치신 것은 아닙니다.


(여기서 '가이사' 란 로마 황제를 뜻하는 '시저'의 음역으로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가리키는 말입니다. 이후 시저(카이사르)는 로마 황제를 의미하는 수식어가 되었죠.. 시저가 독일에서는 '카이저', 러시아에서는 '짜르'로 불립니다)


예수님이 사셨던 시절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는데,

로마 총독이 절대적인 권력을 가졌지만

치안 유지와 행정은 분봉왕 헤롯이 책임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었고 로마 편에 서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들과는 사이가 좋지 못했고

또한 바리새인들과도 사이가 나빴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각각 다른 이유로 예수님을 싫어했기 때문에

예수님을 올무로 묶으려는 시도에는 한 패가 되었습니다.





로마가 식민 지배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세금을 거두는 것과 주민을 노예로 부리는 위함입니다.


로마가 무자비하게 세금을 징수하자

주후 6년에 갈릴리 사람 유다가

민중을 충동해서 폭력으로 로마에 항거하기도 했고

이후 이러한 저항운동은 성경 속 열심당(Zealots)으로 알려진

반로마 항거운동의 뿌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로마에 바쳐야 하는 세금과

그것을 거두는 세리들은

늘 백성들 사이에 비판과 원망의 대상이었고


로마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가, 바치지 말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그 시대에 가장 민감한 사항 가운데 하나였던 것입니다.


비로 이 문제를 가지고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사람들은

예수님을 올무로 옭아매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만약 예수님이 세금을 바치라고 하면 그동안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등을 돌릴 것이고,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하면 이는 로마에 대한 저항이기 때문에

엄벌을 받게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게 할 수 있는 묘수였던 것입니다


그들은 우선 예수님에게 아첨을 쏟아붓습니다.

“선생님이여,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진리로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 하심이니이다”(막 12:14).


비록 아첨이지만 이 내용은

그 시대에 사람들이 예수님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인상을

그대로 말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아첨으로 자신의 악의를 숨긴 다음 그들은 곧바로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으나이까,

옳지 아니하니이까?”라고 직설적으로 묻습니다.


“다른 군소리 하지 마시고, ‘예스’나 ‘노우’,

둘 중 한 가지만으로 대답하시오”라고 한 것입니다.


요즘 국회 국감장 영상을 보면

국회의원이 공직 후보자나 증인들에게

자기가 만들어 놓은 틀에 맞게  

단지 예와 아니오 둘 중 한 가지만을 대답하라고

호통치는 경우가 많는데

보면 볼수록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사람들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예수님은 그들의 악한 의도를 아셨기 때문에

그들이 짜 놓은 틀에 들어가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너희들이 세금 바칠 때 사용하는 돈을 내게 보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데나리온 하나를 가져오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라”라고 하시죠.


예수님의 이러한 답변으로 말미암아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사람들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로마의 지배와 세금에 대해서 불만을 품고 있던

수많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배신자로 취급하고

그를 떠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곧이어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라는 말씀을 더 하셨기 때문입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

는 말씀은 과연 무슨 뜻일까요?


당시 로마에서 사용되던 화폐인 데나리온에는

황제의 초상이 세겨져 있었습니다


어느 시대든 어떤 화폐가 공적으로 사용되는 곳은

바로 그 화폐를 발행하는 권력의 지배 아래 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이 데나리온에는 황제의 초상이 있기에

이 돈이 사용되는 유다 땅은

로마 황제에게 속한다는 소립니다


또한 동시에 유대인으로서  데나리온을 사용한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가 로마의 식민지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일한 논리로 따져보자면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기에

그 돈을 사용하는 사람 또한 하나님의 것이라는 말도 됩니다

 

즉 역으로 생각하면

비록 황제의 초상이 새겨진 데나리온이라는 돈은

황제의 소유일지 몰라도


그 돈을 사용하는 사람 모두에게는

하나님의 형상이 세겨져 있으니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소리도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국 예수님을 올무로 엮으려던 바리새인들과 헤롯당 사람들은

본전도 못 찾고 그 자리를 떠나야만 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과 정치권력..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것은

잘못된 전제입니다


정치권력은 하나님과 대비되는 개념이 아니라

전체의 작은 한 부분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오늘날 우리 기독교인이

정치권력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태도에도

반영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종교인들이 이 부분을 오해하게 되면

마치 국가를 종교적으로 운용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현대에 와서도 그렇게 하는 국가들이 있습니다

이란 등의 이슬람 국가가 대표적이고

넓게 보면 이스라엘이나 북한도 마찬가지 일 것입니다


역사적으로도 본다면

주술가들이 거북이 등껍질로 점을 쳐서 다스렸던 고대 중국이나

황제를 신으로 떠받들었던 로마시대를 막론하고

기독교가 지배했던 중세 시대 또한

종교가 정치를 담당하는 신정 정치를

당연하게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주듯

종교가 정치권력을 쥐게 되면

언제나 예외 없이 타락하고 부패하였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교훈을 통해 사람들은

정치와 종교는 분리되어야 한다고 결론짓고

오늘날의 민주국가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비단 세상 사람들 뿐만이 아니라

중세의 탁월한 신학자인 어거스틴 또한

신국론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나라가 엄연히 다른 차원에서 존재하기에

종교와 정치는 엄격히 구분되어야 함을

신학적으로 설파하기도 했습니다


물론 기독교인은 성경의 가르침에 정면으로 어긋나지 않은 한

국가의 권위와 민주적으로 이룩된 법의 권위를

인정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아울러 국가의 잘못된 것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수정하며

개혁하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또한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국가의 권위를 무시하고 법을 어겨가면서

항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면 로마시대 예수님에게는

오늘날 보수 우파 기독교인들보다 훨씬 더

민족주의적 성향을 띨 만한

정당한 이유들이 있었습니다.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선민이요,

하나님의 계시가 이스라엘을 통해서 주어졌고,

메시아가 그 백성 가운데 오셨습니다.


그런 백성이

그들이 그렇게 무시했던 이방인에 의하여

지배받고 무시당하고

심지어 그들에게 세금을 바쳐야 하는 상황에 처했으니

유대인의 한 사람으로서 예수님도

세금을 바치지 말라고 말하는 것이

정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민족주의를 초월하셨던 것입니다.


 


오해 없기 바랍니다



저는 지금 기독교인이 독립운동을 하면 안 된다거나

부당한 정치권력에 항거하는 것이

기독교적이지 않다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식민 지배를 받을 때 기독교인이

독립운동을 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부정부패를 저지르고

독재 정치를 꾀하는 정부에 항거하는 것은

민주국가 시민의 당연한 권리고

심지어 의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지적하고 싶은 부분은

그러한 정치 활동이 마치 성경의 가르침인 양..

마치 예수님의 가르침인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저의 이러한 주장에 대해 많은 분들이

구약의 예레미야나 이사야 등

많은 선지자들이나 다윗 왕의 예를 들어가며

그들이 한 행동이 정치 활동이 아니면 무엇이었냐고

반문하곤 합니다


저는 이러한 질문 자체가

오늘날 기독교의 가르침이 얼마나 심각하게

오해되고 있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라는 생각이 됩니다


너무나 기본적인 이야기이지만

구약은 사례는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던

고대 사회의 기록들입니다


다윗 왕이 종교를 앞세워 정치를 했으니

기독교인들도 교회를 앞세워 정치에 참여해도 된다는 논리는


다윗 왕이 일천번제를 드렸으니

오늘날에도 제사드리며 정치하자는 말과

별반 차이가 없는 주장일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따지자면

오늘날에도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며

양을 잡고 피를 뿌리며 제사를 지내야 합니다


예레미야나 이사야 등 선지자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구약 속 그들의 주장은 정치적이라기보다는

언제나 정치를 초월하는 것들이었습니다


이사야나 에스겔은 그저 지신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달하였을 뿐이고

심지어 예레미야는 동족인 유다 민족이

침략자인 바벨론에 항복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전함으로써

매국노 소리를 들어가며 심한 고초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조금 다른 이야기이지만

요즘 성인들의 문해력 저하가 심각할 정도라고 합니다


교사들이 학부모들에게 공지를 보내면 정말 웃지 못할

질문들이 쏟아진다고 합니다


학생들에게 중식을 제공하겠다고 하면

왜 한식이나 일식은 안 주고

중식, 중국음식만 주냐고 항의하기도 하고


우천 시 어디 어디에서 모인다고 하면

우천 시가 어디에 있는 도시냐고 묻는다고 합니다


학부모뿐만이 아니라 공부가 직업인 대학생들도

문해력이 떨어지긴 마찬가지여서

모임공지란에 '추후공고'라고 적힌 것을 보고

'추후공업고등학교'가 이디에 있는 학교냐고 진지하게 묻기도 한답니다


웃기려고 하는 농담이 아니라 정말로 당당하게

화까지 내며 항의한다고 합니다  


그러니 성경을 읽어도 도무지 문맥 파악을 못하는

요즘의 기독교인들이 조금은 이해가 되어

씁쓸하기도 합니다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철저하게 구분해야 했던

예수님 당시의 사회와는 달리 오늘날 현대 사회는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삶 속에 혼재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의 상황 속에서 '가이사의 것'이란

지배하고 있는 로마의 권력을 의미했습니다


로마제국은 믿는 사람들을 탄압했고

교회는 로마에 대항해 싸웠습니다


사람들은 가이사이냐 하나님이냐 중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고

순교마저 불사했던 그러한 시대였던 것입니다


그러다 시대가 바뀌어 중세시대가 되자

이번에는 기독교가 국가 권력을 좌지우지하게 됩니다


교황이 권력의 정점에 서게 되고

세상 군왕들이 그 아래에 있게 되었습니다

이 중세시대에는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이사의 나라를 지배했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또다시 시대가 바뀌어 오늘날 현대 사회는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 삶 속에 혼재되어

구분조차 힘든 사회입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과연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라는 말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이 말은 우리에게

바른 선택을 하라는 가르침으로 이해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 더 예수님의 말씀과 뜻에 가까운가? 혹은

어느 것이 더 세상을 하나님의 뜻대로 이끌어 갈 만한

교훈을 가지느냐 일 것입니다


오늘날 가이사의 것은 그 어디에나 있습니다

저한테도, 여러분에게도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다고 신앙인이고

교회 밖에 있다고 신앙인이 아니라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이고 교만입니다


교회 안이든 밖이든

그 삶에서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로서 드러나는 사람이 참다운 신앙인일 것입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접하다 보면 하루가 멀다 하고

기독교 단체 간에 벌어지는 대립과

여러 가지 불미스러운 사고를 다룬 기사들이 올라옵니다


세상의 도덕적 기준에도 못 미치는 행태를 보이면서도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자부하거나

자신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사회인보다 앞서 있다고 생각한다먼

그 누구도 교회 공동체 안에 속하기를 원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때때로 교회와 교단의 내부 모습을 보면

오히려 일반 지성 사회보다 교회 안에

가이사의 잔재가 더 많이 남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요즘 교회가 겪고 있는 세습 문제도 그렇습니다

농촌이나 오지의 가난한 교회에는 세습이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세습을 하려 해도 물려받겠다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 세습이 문제 되는 곳은 오로지

재산이 쌓여있는 도시의 대형 교회에서 일 뿐입니다


예수님은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바치고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고 하셨지만


요즘 교회는 교회 안에 가이사의 것들을 잔뜩 쌓아두고

하나님의 것마저 가이사에게 바치려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간혹 신앙 상담을 하면서

신앙이 없던 사람이 어떤 교회를 나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고민을 하면

이런 말씀을 자주 드립니다


교회는 가도 되고 안 가도 되지만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무엇을 말씀하시고자 하는지는

꼭 알아야 한다고 말입니다


어느 교회를 나가야 할지 고민이 된다면

그 고민할 시간에 우선 먼저 성경을 읽어보라고 권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고 계신가를 알고

그 뜻을 받아들이는 일이 먼저이기 때문입니다


교회 출석은 그다음부터 해도 늦지 않습니다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전하고자 하는 바를 알게 되면

어느 교회를 나가야 할지는 쉽게 분별이 됩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린다, 예수님을 위해 산다.

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교리를 따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많은 사랑 가운데

일부나마 나누어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끄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입니다

삶 가운데 이것을 체험한다면

우리는 신앙 안에서 살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을 구별하며 살아갈 수 있는

참된 기독교인이 되시기 바랍니다


삶 가운데 예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시는 분들이

다 되시길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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