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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를 감추고 싶은 마음

by 이서진
<우리들의 블루스 12화 영옥의 독백 중>
나의 엄마 아빤 화가셨다. 화가로서 앞날이 창창했던 두 분은 가난해도 좋으니 평생 별일 없이 행복하게만 해달라고 늘 기도했단다. 그런데 기도는 이뤄지지 않았고 별 일이 일어났다. 나랑 재앙이가 동시에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불행이 시작됐다. 내 쌍둥이 언니 영희가 우리에게 온 건 우리 가족이 선한 사람을 찾는 신의 심사를 통과한 것이고 신은 조금 아프거나 특별한 아이를 세상에 보낼 때 이 특별한 선물을 감당할 만큼 착하고 큰 사람을 고른다 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당첨된 거라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신의 실수다. 엄마 아빤 착하고 큰 사람이 분명하지만 난 절대 착하지도 않고 모든 걸 감당할 만큼 그릇이 큰 사람도 아니다. 난 신의 이 특별한 선물이 부담스럽고 싫었다.

노희경 작가님의 글에 따르자면 나는 선한 사람을 찾는 신의 심사를 두 번이나 통과한 사람이다. 나는 지체장애인이고 아들도 지적장애가 있으니까 말이다. 아, 한 번은 우리 엄마가 신의 심사를 통과했겠구나.

영옥의 독백처럼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그게 사실이라면 그건 신의 실수라고 말하고 싶다. 명백한 신의 실수다. 하필 왜 실수를 나한테 두 번이나 한 것일까. 따져 묻고 싶지만, 물을 곳이 없다. 어차피 신은 응답하지 않으니까.


며칠 전, 외사촌 동생에게서 카톡이 왔다. 9월 초에 결혼을 한다고 모바일 청첩장을 보내왔다. 사진 속 동생은 더없이 청초하고 아름다워 보였다. 그런데 오랜만에 받은 청첩장에 잠시 설레던 마음이 서서히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왜인지는 몰랐다. 사실 알았지만 내가 그 생각을 했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일깨워준 건 이틀 뒤 내게 전화 한 엄마였다.


"은지 청첩장 봤지? 혹시 둥이 데리고 갈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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