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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meboy Mar 17. 2022

공감을 했다는 착각

『그냥, 사람』, 홍은정 지음, 봄날의 책

모르고 있던 일들이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불편한 진신들을 마주치기 싫어서 알고 있음에도 외면했었다. 이 책에 담긴 많은 에피소드들은 내가 살아오면서 간접적으로나마 관련되어 있었음에도 내 마음이 불편하다는 이유로 선택적으로 무시했다. 그리고 눈 감으면 지나갔던 불편한 진실들을 끝내 대면하기 싫었기 때문에 페이지 한 장 한 장이 무겁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홍은전 작가가 원망스러웠다. 마주하기 싫은 진실들 앞에서 나는 발가벗은 채 팩폭을 당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외된 사람들의 절박한 울부짖음과 다소 비이성적으로 보일 수 있는 행동들은 홍은전 작가의 목소리를 통해 나 같은 무심한 사람에게도 전해졌고 이를 바탕으로 나의 과거 행적들을 반성할 수 있었음에 마지막에는 감사함을 갖게 되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우리 반은 꽃동네로 단체 봉사를 하러 가게 되었다. 옆반 학생들은 서울랜드 환경미화 봉사 후에 놀이공원에 놀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 우리 반도 "꽃동네"라는 식물원이나 테마파크에 놀러 간다고 생각한 나는 기대감을 감추지 못했었다. 하지만 버스를 타고 2시간 걸려 도착한 꽃동네는 놀이공원이 아니었다. 입이 삐죽 튀어나와 잔뜩 짜증이 나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두 가지 선택지를 주셨다. 꽃동네에서 생활하시는 분들의 말벗이 되어드리는 봉사와 주방 설거지 봉사가 있었다. 버스 앞에 마중하러 나와 환하게 웃고 계셨던 장애우분들을 보고 낯선 두려움에 나는 망설임 없이 주방 봉사를 선택했다. 4시간 동안 집에서 거의 하지 않았던 설거지를 마치고 귀가하는 버스에서 나는 친구들에게 "꿀 빨았다!"라며 뿌듯하게 자랑했던 기억이 있다.


나는 한국외대 15학번이기 전에 부산외대 14학번이었다. 서울에서 살았기 때문에 신입생 오티에 늦게 참석할 예정이었다. 신입생의 설레는 마음으로 미리 가방을 싸놓고 고속터미널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친구들과 노느라 정신이 팔려있던 나는 핸드폰을 확인하고 부재중 통화와 문자가 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문자들을 확인해보니 괜찮냐는 문자와 카톡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네이버 메인에 속보로 부산외대 오리엔테이션 마우리나 리조트 사고 관련 기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솔직한 마음으로 처음 들었던 생각은 그곳에 참석하지 못하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뿐이었다. 돌이켜보면 너무나도 부끄럽고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입학 후에 수많은 추도식에 참석하고 정문에 걸려있는 희생자들의 영정사진을  등교마다 지나치면서 숙연해졌지만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덤덤해졌다. 그리고 같은  4 뉴스를 보다가 세월호 사건을 보게 되었다.  순간 이러한 사고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있으며, 부산외대 오리엔테이션 사건이 오버랩됨과 동시에  짧은 시간 안에 무덤덤해진  자신이 너무나도 부끄럽게 느껴졌다. 저서에서 세월호 참사 단원고 생존 학생 조태준(가명) 말한 "제가 살인자 같은 거예요."라는 글귀를 보고 너무나도 공감되고 동시에 너무나도 부끄러웠다.


2016년부터 평택 미군 기지 Camp Humphreys에서 카투사로 군 복무를 사면서 복귀할 때마다 나는 가끔 욕을 먹으면서 들어갔다. 국민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 군인으로서 내가 사람들에게 매국노라는 소리와 욕설을 들을 때마다 속이 상하기도 했고, 입대를 하고 싶어서 한 것도 아닌데 이런 소리를 들어야 하는 것에 대해 화가 나기도 했다. 끝나지 않은 대추리를 읽으면서 미군기지로 인해 삶의 쉼터를 잃고 강제 철거는 당함 아픈 사연을 가진 그들의 방식이 나에게는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하소연할 수 있는 방법이 이것뿐이었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자 원망스럽고 화가 났던 감정보다는 분단국가의 아픈 현실에 서글픈 생각이 들었다. 그들의 입장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미군 군복을 입고 옆에 태극기 패치를 붙인 한국인이 그들의 터전을 불공평하게 가로챈 원망스러운 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전의 나는 내가 우물 안 개구리이기 때문에 우물 밖 세상에 배워야만 세상에 대해 아주 작은 소리로라도 말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 내가 만난 우물 밖 사람 역시 자기만의 우물 안에 갇힌 듯 보였고, 그게 너무 당연하게 느껴졌다. 내가 그의 세계를 몰랐으니 그도 나의 세계를 모르는 게 공평하다고, 그러니까 인간은 모두 각자의 우물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존재이고 세상은 그런 우물들의 총합일 뿐이라고. (중략) 그리고 세계관이란 나의 우물이 어디쯤에 있고 다른 이들의 우물과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는 아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인가 보다 생각했다." (22)


처음부터 다시 읽으면서 "나는 우물 안 개구리였기 때문에 괜찮아"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생각조차 오만하고 치졸한 변명을 하게 되는 첫 단계이다. 공감할 수 있었다는 자만함으로 스스로 우물 안으로 들어가기를 자초하고 있는 나 자신이 한없이 초라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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