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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미 Oct 04. 2022

엄마 무화과 드세요

군산 시댁 마당에는 커다란 무화과나무가 한 그루 있었다. 첫째는 어린 날 할머니께서 따 주시던 무화과 맛을 기억한다. 직장 생활하는 엄마와 떨어져 친가에서 한 달 동안 할머니와 지냈던 다섯 살 무렵의 기억이다.


무화과나무는 양평 텃밭에서는 월동 불가한 나무임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베란다 화분에서 제법 크게 키우던 무화과나무를 양평 텃밭 볕 좋은 자리로 옮겨 심었다. 옮겨 심으면서 삽목 가지 세 개를 잘라 물에 꽂았다.

훅 가버릴지도 모를 무화과나무의 어느 날을 위한 보험용이었다. 뿌리가 내리고 역시 볕 좋은 자리에 심어 주었다. 엄마와 떨어져 지내는 다섯 살 손녀를 위해 무화과 열매를 따 주셨을 어머님을 생각했다. 어머님도 이렇게 무화과나무를 심고 가꾸셨을 것이다.


텃밭으로 옮겨 심기 전 맺혔던 작은 무화과 열매 세 개가 텃밭에서 자라면서 익었다. 그 열매 세 개 중 두 개는 아이들에게 한 개씩 들려주고, 남편과 나는 한 개를 쪼개어 나눠 먹었다. 무화과를 먹으며 첫째가 일찍 세상 뜨신 할머니와 함께 지냈던 그 한 달을 추억했다. 


"할머니는 내게 언제나 무화과 따 주시는 모습으로 남아 계셔. 어린 나를 위해 무화과나무 아래 두 발을 꼿꼿이 디디고 익은 무화과를 골라 따셨어." 

둘째는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 태어났으니 잠자코 무화과를 요모조모 살피며 먹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무화과나무가 동사할지도 모른다는 걱정부터 앞섰다. 다시 화분에 옮겨 심고 텃밭 동네 지인에게 한 해만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이듬해부터 텃밭 나들이에 시들해졌다. 보험용으로 심어 두었던 무화과 삽목 가지는 동사하여 고꾸라져 있었다. 봄에는 옻에 올라 병원 신세를 졌고 여름에는 벌에 쏘여 역시 병원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매스컴에서는 전에 없이 연일 살인진드기에 물린 노인이 유명을 달리했다는 보도가 이어졌다. 텃밭에서 풀 뽑다가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강해졌다.


일 시작 전에는 물론 일 중간에도 직접 만든 해충 기피제를 두텁게 뿌렸다. 일이 끝나면 혹 붙어 있을지 모를 특히 벌레를 털어내기 위해 온몸을 두들기듯 털었다. 집에 도착하면 먼저 샤워하기에 바빴다.


그런 날 저녁 주방에서 작은 진드기를 발견했을 때는 진심 심장이 쪼그라드는 기분이었다. 실상 처음엔 그것이 진드기인 줄도 몰랐다. 낯선 벌레여서 돋보기를 비춰 보고서야 이것이 일반 곤충류가 아님을 알게 되었다.

다리 여덟 개 달린 진드기를 텃밭이 아닌 내 집 주방에서 처음 내 눈으로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게다가 텃밭 어딘가에는 독사의 아지트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웃한 산 주인이 지나가다가 새끼 독사를 봤다고 조심하라고 알려주기도 했다.


무화과를 화분째 맡아 키우는 텃밭 이웃 지인은 잘 익은 무화과를 몇 개나 따 먹었다고 고마워했다. 화분을 집으로 가지고 온들 그이처럼 무화과를 키워 따 먹을 자신도 없었다. 그렇게 무화과는 내게서 멀어져 갔다. 어머님의 무화과도 내 화분에서 키우던 무화과도 오래 내 것일 운명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무화과를 썩 즐기는 편은 아니다. 건조 무화과를 두어 번 구입해 음식에 넣었던 적이 있었고 무화과 철엔 그냥 지나치기 서운해 한 팩 정도 사다가 맛을 보는 정도였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둘째에게는 '엄마는 무화과를 좋아해'라고 각인되었나 보다. 대학생이 되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하고 첫 과외비를 받은 날 둘째는 무화과를 사들고 들어왔다. 

"엄마, 엄마 좋아하는 무화과 사 왔어요."

둘째가 내민 것은 마트에서 어느 정도 숙성된 무화과였다. 농익은 무화과여서 약간 무른 데가 있기도 했지만 둘째가 첫 과외비로 사 왔다는 그 고마움을 무기 삼아 맛있게 먹었다.


그날 둘째도 자신이 사 온 무화과가 싱싱한 맛이 아님을 알아챘던 모양이다. 맛있다는 말이 실은 자신을 배려한 농익은 무화과에 대한 변명임을 모를 리 없었다. 하나씩 먹고 더는 손을 대지 않았던 가족들을 둘째가 기억하지 못할 리 없었다.





생일을 앞두고 말없이 무화과가 도착했다. 물어보나 마나 분명 둘째가 보낸 무화과다. 둘째에게 톡을 보냈다.

- 잘 먹을게. 신선하고 맛있는 무화과 잘 골랐네.

- 히잉, 엄마 생신 축하해용.

- 고마워.


먹기 좋게 익은 것들은 따로 한 팩 정리하여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아침에 남편과 함께 어머님 생각하며 하나씩 먹을 생각이다. 나머지는 씻고 물기 닦은 다음 꼭지 잘라내고 지퍼백에 담아 냉동실에 넣었다. 둘째가 보내 준 무화과라고 남편과 오래오래 이야기하며 하나씩 녹여 먹을 생각이다.


내 입 먼저 즐거우라고 무화과 하나 씻어 오물거려 본다. 알맞게 잘 숙성된 달달한 향기와 맛이다. 갓 대학생이 된 눈으로 마트에 진열된 무화과를 들고 오던 둘째가 아니다. 무화과 종류는 물론 엄마가 좋아할 무화과를 고를 줄도 알게 되었다. 입속에서 사르르 녹는 무화과 맛에 취한 모양이다. 과하게 달지 않은 맛이 문득 내 취향이다. 사람 입맛은 변할 수 있고 엄마 입맛도 어느 틈엔가 조금 달라졌음을 둘째는 이미 눈치채고 있었나 보다.


"우리 둘째 많이 컸네. 엄마 입맛도 미리 눈치채고. 고맙다. 잘 먹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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