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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ee yeon Jul 15. 2022

첫 유치가 빠지던 날

일상의 기록

이 이야기는 매미소리 요란하던 한여름의 어느 날, 아이의 첫 이가 빠지던 날의 풍경이다. 너무 많이 흔들려 잇몸에서 피가 나고 있던 아이의 이에 단단하게 실을 묶었다. 아이는 어딘지 모르게 조금은 불안한 눈빛을 내게 보내며 ‘엄마를 믿어도 될까?’ 하는 표정을 지어 보인다. 분홍색 여름 잠옷을 입고 잠자리에서 갓 일어난 둘째는 포동포동 살이 올라 제법 귀엽다. 보드랍고 통통한 발을 내 쪽으로 당겨와 앞에 마주 보고 앉힌 다음, 지금부터 하려는 행동에 대해 설명을 시작했다.


“아기 이가 빠지고 나야 진짜 어른 이가 나올 자리가 생기는 거야. 이렇게 피가 나는 건 이제 이가 빠질 준비가 되었다는 신호이고, 어때? 우리 오늘 아기 이를 뽑아줄까?”


아이의 맑은 눈동자는 살짝 흔들렸지만,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인다. 진갈색 퀼트 실로 흔들리고 피가 나는 아이의 이에 단단하게 묶는다. 옆에서는 첫째가 히죽거리며 동영상을 찍고 있다. 잠시 아이가 한눈을 파는 사이 나는 예고도 없이 아이의 이마를 탁! 하고 쳤다. 순간 당겨진 실과 함께 아이의 조그만 이도 함께 훌러덩 빠졌다. 3초간 어안이 벙벙하던 아이는 자신의 이가 사라진 걸 느끼고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연신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솜을 몇 분간 꽉 물고 있으라 일러주고 무릎 위에 아이를 앉혔다.

그리곤 꼭 안아주며 “우리 아가 이제 다 컸네”라는 말과 함께 통통하게 살이 오른 푸딩 같은 볼에 뽀뽀를 마구 해주었다. 내 볼을 간지럽히는 솜털, 아이의 살 냄새, 부드러운 피부의 촉감,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충만한 감정을 느끼며 불현듯 나는 못 견디게 행복했다.


무더운 날씨 탓에 입힌 인견소재의 잠옷을 입은 아이의 피부가 나의 품에 와 닿는 느낌이 몽글몽글 좋았다. 아이는 뭔가 허전한지 이가 빠진 자리에다 혀를 자꾸만 갖다 댄다. 그렇게 뺀 첫 유치는 아이의 “유치 보관책”에 넣어 두었다. 첫 번째 발치를 기념하면서..

두 딸의 유치는 모두 “유치 보관책”에 넣어 두었다. 겉모습은 작은 그림책 모양이지만 펼쳐보면 정중앙에 동그란 모양의 플라스틱이 있고 그 속이 여러 구획으로 나뉘어 있다. 돌리면 원하는 자리를 열 수 있는데, 우리는 이가 빠질 때마다 그 자리에 유치를 하나씩 보관했다. 어느 날은 첫째가 쭈쭈바를 먹다 그만 유치와 함께 삼켜버리는 바람에 하나는 영영 찾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한자리는 그렇게 비워두었다.  


아이들을 낳고 기르면서 너무 빨리 자라나는 아이들의 속도에 비해 엄마인 나는 늘 한발 늦는 것 같아 불안했다. 그냥 두면 그냥 지나쳐버릴 일상의 순간들을 잊고 싶지 않아 성장일기를 쓰기 시작했고 아이들의 유치도 보관하게 되었다. 물론 태어나 처음 입었던 내 손으로 직접 만든 배냇저고리, 생후 며칠 지나 빠진 배꼽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잘 두었다가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거나, 삶에서 가장 힘든 순간을 맞이했을 때 꺼내어 보여주려 한다. ‘너는 이렇게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한 존재라고, 지금 이 힘든 시기는 그냥 다 지나가는 과정일 뿐이라고, 그러니 너무 힘들거든 조금 쉬어가도 괜찮다고’ 나의 온 마음을 다해 위로의 말을 건네고 싶다.


돌이켜보니 두 딸의 유치는 늘 엄마인 내가 뽑아 주었다. 남편은 이마를 찰지게 때리며 한 번에 이를 능숙하게 뽑는 나를 언제나 신기해했다. 이는 치과에 가서 뽑아야 하는 거 아니냐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안다. 이가 어느 정도 흔들리기 시작하면 살짝만 건드려줘도 툭 하고 수월하게 빠진다는 것을. 그리고 아이의 이를 빼주다가 문득 나의 할머니 생각이 났다. 어린 시절 이가 흔들리기 시작하면 할머니도 직접 내 이를 빼주셨다. 이를 실로 묶고 문고리에 연결한 다음, 예고 없이 벌컥 문을 여시곤 했다. 내가 유년시절을 보낸 시골에선 다들 이렇게 이를 뽑았다.

“까치야 까치야 헌이 줄게~새이 다오” 노래를 부르며 뽑은 이를 지붕 위로 힘껏 던지고

하얗고 조그만 작은 이가 어서 고개를 내밀기를 기다렸다.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이를 뺀 그날 저녁, 나는 할머니 곁에 누워 생각했다.

‘까치가 내게 새 이를 빨리 물어다 주면 좋겠다고, 그럼 웃을 때마다 어색하게 입을 가리지 않아도 될 텐데’ 하고 말이다.


아이의 첫 유치를 뽑아주던 날 나의 유년시절의 추억을 함께 길어 올렸다. 따스했던 할머니의 품이 떠올라 잠시 행복하기도 했다. 나 또한 두 딸에게 살다가 문득 떠오르는, 소소하고 행복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주겠노라, 잠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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