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의 기록
장마가 시작되고 일주일이 넘도록 비가 이어지다 오랜만에 해가 나왔다. 무더웠지만 습하지 않은 쨍함이었으므로 내 기분도 함께 밝아지는 그런 아침이었다. 열어놓은 창으로 새소리가 들려오고, 시원한 공기가 집안을 감싸는 아침시간, 나는 늘 무언가를 읽거나 쓴다. 나를 닮아 아침잠이 없는 둘째는 부러 깨우지 않아도 스스로 일어난다. 부스스한 눈을 비비며 침대를 벗어난 아이는 이른 아침에 늘 서재에 있는 나를 찾아온다. 살며시 문을 열고 들어와 말없이 꼭 안아주고 나간다. 잠이 깰 때까지 거실에서 개를 쓰다듬던 아이는 곧장 피아노 앞으로 가 앉는다.
거실의 커다란 창 한가운데 작은 피아노가 있다. 원래는 큰아이가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함께 배우려고 산 것이었는데, 3살이었던 둘째는 오며 가며 언니의 연주를 보고, 들으며 자랐다. 이제는 자신이 일주일에 한 번 레슨을 받고 제법 연주도 한다. 큰아이가 숙제를 할 때만 피아노 앞에 앉았던 것에 반해, 둘째는 시키지 않아도 배운 곡을 연습하고, 때때로 자신이 작곡한 곡을 연주하며 실력을 뽐내기도 한다. 아이가 음악을 가까이하고, 즐겁게 연주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내겐 큰 기쁨이다.
요즘 아이가 자주 연주하는 곡은 히사이시 조의 “SUMMER"이다. 어디선가 들어본 익숙한 멜로디를 듣고 있으면 기분이 몽글몽글 해지는 느낌이다. 피아노를 배운 적도, 연주하는 법도 모르는 나는, 아이들이 연주하는 피아노 소리가 집안 가득 퍼지는 것을 좋아한다. 그 소리를 들으며 안방에서 책을 읽기도 하고, 부엌에서 아이들을 위한 요리를 하기도 한다.
비키와 엘리도 거실 소파에 늘어져 연주를 감상한다. 딱히 먹을 것이 아니면 관심 없는 녀석들이지만, 가끔 연주를 하는 아이 옆에 앉아 있기도 한다. 피아노에 관심이 있어서라기보다 그 위에 있는 작은 과자들이 목적이었겠지만, 고양이처럼 피아노 의자 위에 올라가 꼬리를 흔드는 뒷모습이 제법 사랑스럽다.
나는 두 딸이 음악을 사랑하고, 그 속에서 성장하기를 꿈꾼다.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자신을 진정으로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삶을 살기를... 예술을 늘 가까이하고 그로 인해 풍요로운 삶을 가꾸어 나가는 사람이 되기를 늘 바라왔다.
사랑하고 사랑받는 존재들 덕분에 내 삶은 충만해진다. 그러한 존재들을 보고 있노라면, 나는 더 나은 인간이 되고 싶어 견딜 수 없어진다. 시원한 아침 공기와, 아이의 다정한 피아노 소리, 그걸 반려견 두 마리와 함께 들을 수 있음에 감사해진다. 그 순간 못 견디게 행복해진다.
휘익 휘익 소리를 내며 회전하는 선풍기 너머로, 차분하게 울려 퍼지는 한여름의 SUMMER, 나른하게 누워서 나에게 몸을 내맡기는 반려견 두 마리, 내가 사랑하는 초여름의 풍경이다. 간간이 내 얼굴을 간질이는 여름 바람과, 한낮이 오기 전 조금은 선선한 실내 공기, 다정하고도 사랑스러운 아이의 연주를 들으며 잠시 눈을 감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