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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Apr 05. 2024

새벽카페에 나보다 더 자주 오는 이상한 아저씨

그분이 외로워 보이는 건 기분 탓일까


새벽 4시 30분에 일어나서 씻고 옷 입고 아내 얼굴 잠깐 슥 보고 카페로 가면 새벽 5시가 약간 지난 시간에 도착한다. 우리 동네 24시간 카페는 새벽 5시부터 아침 11시까지 모닝커피 할인도 한다. 집 근처에 이런 카페가 있다는 게 참 좋다.


이곳은 대놓고 카공족들을 겨냥한 곳이라 그런지, 스터디카페나 도서관에서 집중이 되지 않는 모든 사람들은 죄다 이리로 모여드는 것 같다. 주말 대낮이나 평일 8시 이후에 오면 거의 만석이다. 꽤 넓은 프랜차이즈 카페인데도 말이다. 자리마다 콘센트가 최소 2개 이상이며 그중 절반은 최소 4개 이상씩 있다. 좌석 하단에 2개, 등받이 쪽에 2개. 그야말로 카공족에게 최적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새벽에 오면 거의 나밖에 없다. 가끔 만취한 취객들이 습격(?)하거나, 오갈 데 없는 비행청소년들로 추정되는 어린애들이 룸 안에서 퍼질러 자고 있긴 하다. 그 밖의 평소엔 그 넓은 공간을 혼자 쓰는 기분으로 새벽카페를 즐기곤 한다.


그런데 나처럼 이곳에 자주 오는 아저씨가 한 분 있다. 항상 같은 옷차림에 귀도리를 하고 있다(가끔 귀도리만 바뀌는 것 같기도 하다). 새벽에 일하고 오는 건지, 일하기 전에 커피 한 잔 하러 오는 건지는 알 길이 없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분은 여러 가지 눈에 띄는 특징이 있었다.


첫 번째. 키오스크를 활용하지 않는다. 느낌상 키오스크를 사용할 줄 몰라서 못 쓰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직원에게 어떡해서든 한 두 마디라도 말을 더 걸고자 하는 분위기를 진하게 풍기는 분이다.


두 번째. 항상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주문하고, 항상 같은 자리에 앉는다. 지정석은 룸 안의 단체석 소파인데, 새벽엔 사람이 없어서 직원도 별다른 터치를 하지 않는 듯하다.


세 번째. 커피를 주문한 뒤, 룸 안에 들어갔다가 항상 다시 나와서 직원에게 충전기가 있냐고 물어본다. 여기서 포인트는 충전기를 달라는 게 아니라, 있냐고 물어본다는 것이다. 거의 매일 카페를 방문하는 사람이 매번 충전기가 있냐고 물어보는 게 신기했다.


네 번째. 직원에게 말을 편하게 놓는다. 새벽에 이곳 카페를 다닌 지도 1년이 넘다 보니 직원분이 바뀐 걸 여럿 봤다. 그 아저씨는 새로운 직원이 올 때마다 하루 이틀은 존칭을 쓰다가, 며칠 지나고 보면 어느새 이전의 직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말을 편하게 놓는다. 아, 사람을 가리는 것 같기도 하다. 몇몇 직원분에게는 아직도 계속 말을 놓지 않고 있으니까.


그분은 가끔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리고 있는 손님에게도 대뜸 말을 걸기도 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식이다.


"와, 모자 이쁘네요! 어디서 샀어요!?"

(목소리가 꽤 크다)


"예? 아, 이거 OOO에서 샀어요."


"이야~ 저도 나중에 사야겠네요!"


흠칫 놀란 기색이 역력하지만 당황스러움을 애써 감추고 대답하는 손님의 모습이, 등에 눈이라도 달린 듯 훤히 보이는 것 같았다.


나도 그 아저씨 못지않게 새벽마다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종종 내게 눈길을 보내곤 하던데, 의도적으로 시선을 회피해 묵살했다. 안면 트면 괜히 피곤해질 것만 같은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집중력을 최대한 활용하고픈 마음에 새벽에 일어나 카페까지 왔는데, 다른 곳에 기를 빨리긴 싫었다.


다섯 번째. 아메리카노 다 마시면 다시 카운터를 찾아가 뜨거운 물을 달라고 한다.


여섯 번째. 다 마신 커피잔을 리턴테이블에 올리면서 항상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 있다.


"커피잔 여기 놓고 간데이! 충전기도 여기 있데이!"


그분은 '여기에 놓고 간다'라는 말을 꼭 직접적으로 남기고 갔다. 직원분이 다른 일을 하느라 눈에 보이지 않을 때면, 불러내서라도 전하고 갔다.




어떻게 이리도 자세히 아냐고?


블루투스 이어폰의 볼륨을 아무리 높여도, 그 아저씨의 남다른 목청을 막아낼 재간은 없었다.


한동안 본의 아니게 그분을 지켜보다 보니 왠지 모르게 외로워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떡해서든 사람들과 한 마디라도 더 나누고 싶어 하는 분 같아 보였다. 원래 그렇게 사시는 분일 수도 있지만 말이다.


세상이 각박해진 걸까.

내 마음이 각박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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