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달보 Jul 08. 2024

팀장님이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 점심시간에 일어난 일

 

우리 회사 사무실 근처엔 갈 만한 식당이 없다. 중식, 고깃집(육회비빔밥), 한식집, 칼국수집 정도가 있긴 한데 딱히 발걸음 하고 싶지가 않은 곳들이다. 난 입맛이 까다로운 편이 아닌데도 잘 안 가게 된다. 차라리 차로 이동하는 한이 있더라도 회사 말고 우리 집 근처 식당을 가는 게 나을 정도다. 평소엔 3km 떨어진 곳에 있는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픽업한 다음 사무실 안에서 점심을 해결한다(난 사무실에서 거의 혼자 일한다).


한편, 얼마 전 사무실 근처 한식집이 있던 자리에 한식 뷔페집이 들어섰다. 주인은 바뀌었다. 가격은 7천 원. 이전 가게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주방만 조금 뜯어고친 듯했다. 34년 묵은 나의 직감으로는 식당 외관상 맛은 별로 기대되지 않아서 가서 먹어 볼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근데 팀장님은 그곳이 좋았나 보다. 한식 뷔페집이 생기고 나서부턴 밥 먹을 일 있을 때면 그곳만 들르시는 것 같았다. 맛이 기가 막힌 건 아니지만 가격도 적당하고 메뉴도 바뀌니 나름 만족하시는 듯했다. 그런 팀장님 덕분에 난 그 한식 뷔페집을 가고 싶지 않아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직접 먹어보니 딱 예상대로였다. 그저 그런 맛. 그리고 따뜻하지 않은 반찬들. 정말 그냥 배만 채우는 곳. 혼자 있으면 절대로 가지 않을 곳. 내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팀장님과 함께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었다. 오전 시간은 금방 흘러 점심때가 되었고, 마치 구내식당이라도 되는 것마냥 자연스레 한식 뷔페집을 들렀다. 간장국물에 절인 고기(메뉴 이름을 모르겠다), 계란 프라이, 스팸, 오징어볶음 등이 그날의 메뉴였다. 메인메뉴인 고기는 퍽퍽했고 나머지 음식들은 전체적으로 다 식어 있었다. 그럼에도 배고파서 한 접시 가득 덜어 먹었다.


잠시 후 등 뒤에서 출입문 종소리가 따랑따랑 울리는 게 들렸다.


"안녕하세요~ 음식 맛있어서 친구들 데려왔어요!"

카랑카랑한 여자 목소리였다.


순간 '친구들은 뭔 죄지'라며 생각했다. 그런데 그 팀이 나와 팀장님이 밥 먹고 있는 테이블 바로 옆에 앉았다. 난 접시에 코 박고 밥 먹는데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옆에 앉은 사람들이 누군지는 몰랐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말이 들려서 굳이 확인하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다.


"여기 음식 맛있어."


대체 얼마나 맛있어서 저러는 걸까. 혹시 가리는 거 없이 다 잘 먹는다고 생각했던 내 입맛이 되게 까다로운 편인 건 아닐까. 별 생각이 다 들면서 옆 테이블(그 여자분)에게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나도 모르게 살짝 흘깃거릴 뻔도 했다.


"어때? 맛있지?"


벌써 세 번째였다. 결국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봤다. 근데 의외였다. 친구들 데려왔다 그래서 진짜 친구들인 줄 알았는데 한눈에 봐도 친구관계는 아니었다. 남자 2명 여자 2명이 있었는데 직장동료들인 것 같았다. 아까부터 맛있다는 말을 계속하던 사람은 그 무리의 대표 혹은 가장 직급이 높은 사람 같아 보였다. 그 사람만 당당히 고개를 들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세 사람은 시선을 어디에 둘 지 몰라 불편한 쭈뼛쭈뼛 거리고 있었다.


어쨌거나 궁금증이 충족된 나는 다시 마저 먹던 밥을 먹었다.

 

"여기 음식 맛있지 않아?"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아, 예예. 식당이 깔끔하고.. 또 음식이 좀 다르긴 하네요."

맞은편에 있던 남자가 쥐어짜 내듯 말했다.


"괜찮은 것 같아요."

그 남자 옆에 있던 다른 여자도 한 마디 거들었다. 대장 같아 보이는 사람이 동그랗게 뜬 눈으로 빤히 쳐다보며 대답을 기다리고 있으니 마지못해 하는 말 같았다.


"그렇지? 여기가 좀 맛있어."


누가 봐도 안 맛있어하는 것 같은데 세상에서 딱 한 사람만 눈치채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혹은 알고도 모른 척하거나.




생전 처음 본 그들에게서 수직적인 조직문화가 엿보이는 건 기분 탓이었을까. 물가가 치솟으면서 요즘 점심값도 많이 올랐다. 우리 사무실 주변만 해도 대부분의 식당들이 평균 9,000원 정도는 받았다. 근데 한식뷔페는 7,000원이니 그 근방에서는 가장 싼 편이다. 설마 그래서 직원들에게 교묘한 압박을 주는 건 아닐까 하고 잠시 상상의 나래를 펼쳐봤다.


문득 내 앞에 있는 팀장님이 새삼 달리 보였다. 팀장님은 왼손으론 스마트폰 화면을 휘적거리며 온갖 뉴스기사를 탐독하고, 오른손으론 숟가락과 젓가락을 바꿔 잡으며 묵묵하게 식사를 즐기고 있었다. 팀장님과 난 밥 먹을 때 거의 대화를 나누지 않는다. 팀장님이 하는 얘기는 한결같았다. 일 얘기 아니면 수없이 반복해서 들었던 팀장님의 과거 이야기들(한 번 시작하면 40분 정도는 듣고 있어야 한다). 그런 까닭에 팀장님이 먼저 말을 걸지 않으면 난 되도록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아내 앞에서 애교 부리는 모습을 팀장님이 혹시라도 본다면 아마 놀라 자빠질 것이다. 그 정도로 팀장님 앞에서 난 과묵한 인간이다. 팀장님이 하는 말에 대꾸도 잘하지 않는다. 비단 그건 나뿐만 아니라 이전에 퇴사했던 직원들(선배들) 모두가 그랬다.


근데 팀장님의 암묵적인 '허용'이 있었기에 나를 포함한 부하직원들이 감히 그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 테이블 사람들을 보다 보니 그랬다. 여하튼 다른 건 몰라도 맘 편히 조용하게 밥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그리고 팀장님에게도.


깔끔하게 비운 접시를 퇴식구에 올린 뒤에 물 한 잔 들이켜고 식당을 나가는데, 등 뒤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또 한 번 들렸다.


"아~ 맛있어."

매거진의 이전글 시력을 잃은 덕분에 발견한 세상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