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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l 14. 2024

유도분만 깔끔하게 포기하고 제왕절개

생각보다 쉽지 않은 자연분만


출산예정일이 되었는데도 아내는 멀쩡했다. 배 나온 것만 빼면 정상인(?)으로 착각할 정도였다. 혼자서 양말도 잘 신었다. 예정일 당일에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받아보니 이상증세는 없었다. 그럼에도 마냥 기다릴 순 없어서 유도분만 날짜를 잡았다. 일단 우리 부부부터가 제왕절개할 생각이 없기도 했고, 담당 선생님도 되도록이면 자연분만을 권장하셨다.


그렇게 잡은 유도분만 날짜는 예정일로부터 9일 후였다. 사실 나와 아내는 그전에 진통이 와서 자연분만할 줄 알았다. 아무 근거는 없지만 막연하게 그리 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날이 지나도 진통은커녕 이슬(진통오기 전에 보이는 것)도 비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약속 당일날 아침에 산부인과로 찾아갔다.


내진을 받아봤더니 자궁경부도 열려 있지 않고 아기도 내려와 있지 않았다. 쉽게 말해 출산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촉진제 주사를 맞고 한나절 동안 기다렸지만 딱히 그렇다 할 진전이 없었다. 아내는 여전히 멀쩡했다. 지인들 중에 유도분만 시도했다가 결국 제왕절개한 사람들이 꽤 많았는데 그들 생각이 났다.


담당 선생님은 내일 한 번만 더 유도분만 시도를 해보자고 하셨지만, 아내와 난 둘 다 이미 유도분만은 가망이 없을 거라 판단했다. 만약 진통이 조금이라도 있었으면 차라리 버티기라도 했을 텐데, 진통이 하나도 없었으니 깔끔하게 제왕절개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아내는 제왕절개 수술을 받으러 들어갔고 난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저 아내에게 별일 없기만을 바랐다. 잠시 후 저 멀리서 갓난아기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순간 몸이 부르르 떨렸다. 그때부턴 앉아 있을 수가 없어서 오갈 데 없이 떠돌아다니는 귀신처럼 대기실을 빙빙 걸어 다녔다. 누군가 나와야 비로소 멈출 수 있을 것 같았다. 오래 지나지 않아 담당 선생님이 나왔다. "수술 잘 끝났고 마취 풀리고 있으니 조금 있다가 들어가 보세요."라는 말을 남기곤 쿨하게 돌아가셨다.


병실에 수술 끝난 아내가 누워 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아파 보였다. 끙끙 앓는 소리가 나고 경련이 오는지 몸이 떨리는 게 보였다. 손도 차가웠다. 머리를 쓰다듬고 손이라도 잡아주고 싶었지만 왠지 괜히 건드렸다가 더 아플 것도 싶은 마음에 함부로 뭘 할 수가 없었다. 근데 갑자기 아내가 내 손을 확 낚아챘다. '빨리 안 잡아주고 뭐 해!'라는 말이 귀에 들리는 것 같았다.


조금 있으니 간호사 선생님이 아내 뱃속에 10개월 간 있던 아기를 우리에게 데려왔다. 태반 뒤로 꽁꽁 숨어서 얼굴 한 번 제대로 보여주지 않고 비싸게만 굴던 그 아기였다. 낯설다. 신기하다. 쟤는 누굴 닮은걸까. 라는 생각이 든 다음에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드라마에서 봤던 감격의 눈물 따위는 흐르지 않았다. 나와 아내의 유전자를 물려받은 아기를 보고 있으면서도 부모가 됐단 실감은 나지 않았다. 다만 한 번 꽂힌 시선을 거두기가 좀처럼 힘들었을 뿐.


혹시 큰 사고를 친 건 아닐까.

내 삶은 앞으로 얼마나 달라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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