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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l 15. 2024

어쩌면 아내는 내가 알던 사람이 아닐지도 모르겠다

힘듦을 이겨내는 아내를 지켜보며 든 생각


아내가 제왕절개 수술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되도록이면 자연분만, 못해도 유도분만으로는 아이를 낳을 줄 알았다. 하지만 예정일이 일주일이 지나도 출산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고 결국 아내는 제왕절개 수술을 받게 되었다.


수술 시간은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주변인들로부터 얼마 걸리지 않는단 소린 익히 들어 알고 있었는데 정말 금방 끝나긴 했다. 수시간의 진통을 겪을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수술이 잘 끝났단 의사 선생님을 뒤로하고 아내를 보러 가니 차마 가늠할 수 없는 고통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그런 아내를 보다 보니까 제왕절개 수술도 결코 만만치 않은 대가를 치러야 하는 일인 것 같았다.


아내는 그 자리에서 1시간 30분 정도 누워 있었다. 그 후 4박 5일 동안 회복할 병실로 옮겨졌다. 수술이 갓 끝났을 때보다는 정신이 좀 돌아왔지만 배 가른 통증은 여전한 듯했다. 옆에서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피가 계속 흘러나와서 패드를 몇 번씩 갈아줘야 했다. 혼자 아이를 낳는 사람은 대체 어떻게 이 과정을 거치는 걸까 싶었다.


그렇다고 마냥 누워 있을 수만은 없었다. 회복을 좀 더 빠르게 하려면 조금씩이라도 몸을 움직여야 한다고 간호사 선생님들이 말씀해 주셨다. 사실 난 처음에 그 말을 흘려 들었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하는 것도 힘들어하는데 어떻게 몸을 움직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근데 아내는 아니었다. 제 힘으로 꼼짝도 못할 거라 생각했던 아내는 그렇게 끙끙거리면서도 몸을 움직이려고 폼을 잡았다. 간호사 선생님이 몸을 움직이면 더 빨리 회복된단 말을 굳이 하지 않았어도 원래부터 움직이려고 마음먹고 있었던 것처럼. 몸을 왼쪽으로 돌렸다 한숨 돌리고 오른쪽으로 돌렸다가 한숨 돌리고를 반복했다. 그러다 나중에는 상체를 일으키려고도 했다. 패드에 피가 흥건해도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내 조마조마했다. 말려야 할까. 냅둬야 할까. 수없이 고민했다. 힘냈으면 좋겠으면서도 적당히 하고 포기했으면 좋겠다고도 생각했다.


한편으론 그런 아내가 대단했다. 만약 나였다면 수술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회복하겠답시고 저렇게 움직이려고 애를 쓰려했을까. 아예 시도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을 것 같은데. 혹 하더라도 하루 정돈 가만히 누워 있기만 할 것 같은데.


문득 그런 아내의 모습에서 아내가 살아온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말로만 들었던 그녀의 성장과정을, 결코 순탄치 않았던 그녀의 인생이 주마등처럼 뇌리를 스쳐가는 기분이 들었다. 차마 감당키 힘든 시련 앞에서 어떤 식으로 버티고 이겨냈을지 왠지 알 것만 같았다.


아내를 말없이 지켜보며 그런 생각을 해봤다.


알고 보면 그녀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좀 더 강한 사람이 아닐까.


혹시 난 내가 알고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람을 사랑하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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