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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보 Jul 20. 2024

범죄도시 재미없다길래 안 볼라고

내가 나로 거듭나게 되는 과정


"범죄도시 재미없다길래 안 볼라고." 


어느 날, 친구들의 단톡방에서 한 친구가 한 말이었다. 그 말풍선을 보다 보니 문득 다음과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럼 재밌다고 하면 볼 건가?' 


남들이 재밌다고 하면 고민 없이 영화 티켓을 끊는 사람들. 남들이 재미없다고 하면 예매한 티켓도 취소하는 사람들. 영화를 보기도 전에 매체에서 매긴 평점으로 넘겨짚는 사람들. 자신이 직접 영화를 보며 느낀 감상보다는 영화 유튜버의 리뷰에 더 중점을 두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을 보면 예전의 내가 떠오른다. 




어릴 적 내 눈에 비친 어른들은 하나 같이 다 커 보였다. 그들은 세상 만물을 다 꿰차기라도 한 것처럼 모르는 게 없어 보였다. 어른다운 게 뭔지도 모르면서 나이 든 사람들은 모두 어른답다고 생각했다. 모르긴 몰라도 그들은 최소한 주관이 또렷하고 본인 생각대로 살아갈 줄 알았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어른 같아 보였던 이들의 나이가 되어 보니 '어른' 같은 건 환상의 존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서른 살이 넘어가도 어른답지 않은 사람은 많았다. 아니 어쩌면 어른 같은 건 세상에 아예 없는 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나마 어른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내면이 정립되고 태세가 올바른 사람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었다.


대개 사람들은 남들을 함부로 판단하질 못해 좀이 쑤시는 것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뭐가 옳고 그른지에 대한 정의부터 바로 서 있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흔히들 누구나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간다고 생각하지만, 애초에 생각 자체를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이미 어긋난 생각이었다. 내가 책을 통해 발견한 가치들이 엉터리가 아니라면 인간이 뭘 소유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단지 주인 없는 생각이 그렇게 생각하도록 생각하게 만드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너와 내가 각자 뭔가를 소유할 수 있는 건, 없던 소유권이 발현된 게 아니라 서로 간의 약속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리라.


그럼 생각은 주인이란 게 없으니 자신의 생각이 아닌 생각들로 살아가는 것이나, 자신의 생각이라고 철석같이 믿는 생각들로 살아가는 것이나 별반 차이가 없는 것일까.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도 생각한다. 예컨대 난 내가 주관이 뚜렷한 편이라고 생각하지만, 그건 주변인들에게서 "넌 주관이 뚜렷해 보이네."라는 말을 듣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리 생각하기 시작한 걸 수도 있다. 이처럼 내 생각이 진짜 내 생각인지는 알 길이 없다. 단지 내 생각이 내 생각일 거라고 믿고 안 믿고의 차이가 그나마 '내 생각'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들을 빚어낸다고 생각할 수 있을 뿐이다.




나의 지난날들을 돌이켜 보면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들을 받아들이지 않고서는 도무지 안전하게 성장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세상빛을 처음 봤을 때 날 보살펴 주실 부모님이 없었다면, 그리고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다면 과연 사회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지금처럼 무탈하게 잘 해낼 수 있었을까. 고로 내 머릿속에 자리 잡게 된 최초의 생각들은 모두 남의 것이었을 거라고 본다.


한동안은 내 생각이 아닌 생각들로 맘 편히 잘 살았다. 그러다 책을 읽으면서부터 내 생각에 대한 의심을 처음으로 하기 시작했다. 한 번 들기 시작한 의심은 걷잡을 수 없이 확장되어 갔다. 가만 보니 내가 하는 생각들이 내 생각이 아닌지 판가름할 수 있는 근거는 그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간 생각해 오던 것들이 스스로 생각해 낸 게 아니라는 걸 인지하면서부터는 머릿속에 든 개념들을 하나씩 되짚어 볼 필요가 있었다.


행복은 뭘까. 부자가 되면 진정 좋은 것일까. 가족이나 친구들은 내게 어떤 존재들일까. 내 팔과 다리는 내 것이라 할 수 있을까. 내가 '달다'라고 느끼는 것과 다른 사람들이 '달다'라고 느끼는 건 같은 느낌이 맞을까. 내 눈에 보이는 하늘색이 다른 사람의 눈에도 하늘색으로 비칠까. 죽는 게 과연 나쁜 걸까. 살아간다는 건 무엇을 의미하나.


내 생각이 아닌 것들을 솎아내기 위해 수없이 많은 생각을 해왔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하다. 독서를 시작한 지도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어가니 꽤 오랫동안 생각한 셈이다. 하지만 자신 있게 내 생각이라고 할 만한 건 아직 단 하나도 없다. 단지 내 선에서 한 번 더 걸러 생각한 것들을 그나마 내 생각이라며 주장하고 다닐 뿐이다.


근데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세상에 정답이란 건 없고, 시간이 흐르는 만큼이나 나의 생각도 천차만별로 변하니까. 그럼에도 난 지금처럼 계속 생각에 대한 생각들을 끊임없이 하는, 사유하는 인간으로 살아가고 싶다. 한편으로는 의미가 없는 일일 수도 있지만 그 과정을 통해 내 안에 '책임감'이 자라남을 느낀다. 스스로 재정의한 생각들로 살아보니 문제를 바깥에서 찾지 않게 된다. 그럼 남 탓 할 일도 줄어든다. 어떤 정보가 들어와도 곧이곧대로 따르지 않는다. 현상에 가려진 본질을 추구하게 된다.


그렇게 난 점점 내가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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