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고
하재영 / 라이프앤페이지 / 2020.12.08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부제를 보자마자 과거가 되어버린 내 집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명에 아예 '촌'이 들어간 시골에서 나고 자랐기에 성인이 되면 무조건 더 넓은 세상으로 탈출하고자 했고, 그렇게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입학하며 홀몸으로 올라왔다. 온전한 자기만의 공간은 아니었지만 2년간의 첫 기숙사 생활, 그리고 이어진 3번의 이사까지. 저자의 말처럼 처음에는 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했으나 어느덧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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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짜리 빌라 가운데 가장 아래인 1층. 무턱대고 뛰어다녀도 뭐라 할 사람이 없던 그곳은 내가 기억하는 지방에서의 첫 집이다. 워낙 어릴 때여서 사소한 건 흐릿하지만 딱 하나 잔상으로 남는 건 그 속에서도 나만이 꼭 갇힐 수 있게 아빠가 만들어 주신 박스로 된 집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생애 처음 경험했던 독립된 공간이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득 안고 들어가 내 몸 하나 딱 들어가는 그곳에서 놀고 있자면 그렇게 아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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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을 떠나 태어났던 지역,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들어선 집은 부모님의 가게 뒤편에 함께 붙어있던 큰 한 칸짜리 집이다. 어쩌면 집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구조. 부엌과 화장실을 가려면 가게로 향하는 통로를 조심스레 가로질러 건너가야만 했던 그곳은 내 공간이라 할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애착이 가는 집이다. 어쩌면 그 시절만큼 가족 모두가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했던 적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좋은 모습이든 싫은 모습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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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자금을 모으신 부모님께선 드디어 주변에 땅을 사시고 본인의 건물을 지으셨다. 멀게만 느껴졌던 '거주자' 아닌 '소유자'가 되는 꿈. 그 꿈을 이루신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와 내 동생은 각자의 방을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돌이켜 보면 그 순간에도 엄마의 공간은 없었다. 손님이 없을 때면 자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가게 안 사무실은 아빠의 공간이 되었고, 엄마는 가게에서든 집에서든 본인의 시간 없이, 끝없이 노동하셨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독서, 사색, 휴식은 수시로 멈춰졌다."라는 문장이 내 시선을 붙잡은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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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대학교에 입학하며 2년간 보낸 2인실 기숙사 생활은 동거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좋기도 했으나 온전한 독립을 원했던 나는 결국 서울살이 3년째가 되던 해부터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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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얗게 리모델링 된 공간에 홀려 냉큼 계약했다가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늘 꿉꿉했던 5평 남짓 첫 원룸, 탁 트인 경치와 넘치도록 들어오는 햇빛에 반해 들어갔으나 전혀 되지 않던 방음에 시달렸던 두 번째 원룸, 그리고 아직 5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이 많이 다녀가며 아늑하다고 말해준 현재의 자취방까지. 세 번째 집에 담길 시절의 기억으로 어떤 것이 크게 남을지 아직은 감히 예측할 수 없지만, 친애하는 나의 모든 집에게 애정 가득한 말을 들려주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