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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민 Oct 27. 2024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를 읽고

하재영 / 라이프앤페이지 / 2020.12.08

'지나온 집들에 관한 기록', 부제를 보자마자 과거가 되어버린 내 집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지명에 아예 '촌'이 들어간 시골에서 나고 자랐기에 성인이 되면 무조건 더 넓은 세상으로 탈출하고자 했고, 그렇게 서울에 있는 대학으로 입학하며 홀몸으로 올라왔다. 온전한 자기만의 공간은 아니었지만 2년간의 첫 기숙사 생활, 그리고 이어진 3번의 이사까지. 저자의 말처럼 처음에는 집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려 했으나 어느덧 그때 그 시절을 추억하는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5층짜리 빌라 가운데 가장 아래인 1층. 무턱대고 뛰어다녀도 뭐라 할 사람이 없던 그곳은 내가 기억하는 지방에서의 첫 집이다. 워낙 어릴 때여서 사소한 건 흐릿하지만 딱 하나 잔상으로 남는 건 그 속에서도 나만이 꼭 갇힐 수 있게 아빠가 만들어 주신 박스로 된 집이 있었다는 것이다. 어쩌면 생애 처음 경험했던 독립된 공간이 아니었을까. 좋아하는 장난감을 가득 안고 들어가 내 몸 하나 딱 들어가는 그곳에서 놀고 있자면 그렇게 아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곳을 떠나 태어났던 지역, 다시 고향으로 내려가 들어선 집은 부모님의 가게 뒤편에 함께 붙어있던 큰 한 칸짜리 집이다. 어쩌면 집이라고 부르기도 뭣한 구조. 부엌과 화장실을 가려면 가게로 향하는 통로를 조심스레 가로질러 건너가야만 했던 그곳은 내 공간이라 할 곳이 없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애착이 가는 집이다. 어쩌면 그 시절만큼 가족 모두가 숨김없이 모든 걸 공유했던 적은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좋은 모습이든 싫은 모습이든.

그리고 자금을 모으신 부모님께선 드디어 주변에 땅을 사시고 본인의 건물을 지으셨다. 멀게만 느껴졌던 '거주자' 아닌 '소유자'가 되는 꿈. 그 꿈을 이루신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나와 내 동생은 각자의 방을 갖게 되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였다. 돌이켜 보면 그 순간에도 엄마의 공간은 없었다. 손님이 없을 때면 자유롭게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던 가게 안 사무실은 아빠의 공간이 되었고, 엄마는 가게에서든 집에서든 본인의 시간 없이, 끝없이 노동하셨다. 그래서일까, "엄마의 독서, 사색, 휴식은 수시로 멈춰졌다."라는 문장이 내 시선을 붙잡은 듯하다.

이후 대학교에 입학하며 2년간 보낸 2인실 기숙사 생활은 동거인을 이해하고 배려하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좋기도 했으나 온전한 독립을 원했던 나는 결국 서울살이 3년째가 되던 해부터 자취를 시작하게 되었다.

새하얗게 리모델링 된 공간에 홀려 냉큼 계약했다가 햇빛이 잘 들지 않아 늘 꿉꿉했던 5평 남짓 첫 원룸, 탁 트인 경치와 넘치도록 들어오는 햇빛에 반해 들어갔으나 전혀 되지 않던 방음에 시달렸던 두 번째 원룸, 그리고 아직 5개월 남짓밖에 되지 않았지만, 주변 친구들이 많이 다녀가며 아늑하다고 말해준 현재의 자취방까지. 세 번째 집에 담길 시절의 기억으로 어떤 것이 크게 남을지 아직은 감히 예측할 수 없지만, 친애하는 나의 모든 집에게 애정 가득한 말을 들려주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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