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주독립서점 #책방하리 #편지하리 #펜팔
안녕하세요. 오늘 책방을 오픈한 ‘드디어 정말로 진짜로 책방지기’ 정란입니다. 당신, 저 지금 구독자 한 분과 그녀의 남자친구를 앞에 두고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믿어지시나요? 제가 드디어, 드디어, 드디어! 책방을 오픈한 것입니다! 두 분은 누가 봐도 이미 저와 내적 친분이 있는 사람들처럼 수상한 미소를 지으며 입장해, 정말 수상하게 좁은 책방을 어슬렁거렸습니다.
“저, 혹시…”
“네?”
“구독자이신가요?”
“네?”
“아니신가요?”
“(당황한 듯 쑥스러운 듯 수상한 미소를 지으며) 아닌데요…?”
“진짜 아니신가요?”
“(그 미소 진짜 너무 수상해요)아, 왜요?”
“D 님 아니신가요?”
“(찾았던 웃음을 터뜨리며) 맞아요. 어떻게 아셨어요?”
“(함께 웃으며) 너무 누가 봐도 D 님 같으셔서요(웃음).”
실은 오늘은 아침부터 아주 수상한 하루였습니다. 11시에 맞춰 책방에 왔더니 수상한 떡 상자와 일회용 접시, 일회용 젓가락이 있는 것입니다. 수상한 상자를 수상한 사람처럼 수상하게 한쪽으로 치우고 나서, 매입등2를 켰습니다. 그리고 김보컬을 출근시켰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떠오르는 따뜻한 클래식을 틀었고, 책방의 온도를 책임지는 히터도 일을 시작했죠. 이제 일을 시작해야 하는 건 책방지기 정란 하나였습니다. 오늘의 일은 손님맞이였는데,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제 겨우 11시 3분인데 마음이 초조했습니다. 늘 저보다 일찍 불을 켠 앞집 안경점의 불이 꺼진 것이었습니다. ‘오늘은 상가가 다 조용하려나’ ‘혼자 있게 되려나’
아, 잠깐만요! 저 지금 긴장돼서 편지를 못 쓰겠어요.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 책방에 저를 포함한 두 명이 앉아 있고, 이 작은 동네책방에 키가 큰 네 명의 어른이 어슬렁거리고 있거든요. 저는 조금 당황하고 움찔할 때 그렇듯 목과 어깨가 좀 가까워졌습니다. 어쩐지 모두 마음이 따뜻하고 다정한 분들인 것 같아요. 말 걸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리지만, 책과 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을 방해할 수는 없습니다. 이따 ‘하리하리 도장’을 찍으면서 말을 좀 붙여봐야겠어요. “떡… 드시겠어요? 시루떡으로 불리지만, 저는 이걸 조아조아떡으로 부르기로 했어요. 조아조아떡 드시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
당신. 저는 지금 이 메일을 쓸 정신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어서 씁니다. 그 수상한 아침. 잠시 후, 한 중년 남성이 수상하게 뒤뚱거리며 책방을 살폈습니다. 책방하리는 전면이 통유리로 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그 남성이 누군지 금방 알아챌 수 있었죠. 저의 막내 외삼촌이었습니다. 오늘이 오픈인 걸 알리지도 못한 무심한 조카의 책방에 첫 손님이 되어 주신 겁니다. 결과적으로 오늘의 첫 손님은 아니었습니다. 조아조아떡을 한 접시 하시고 나가셨거든요. 그래도 제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아시나요? 따뜻한 떡을 고마운 이에게 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아주 행복했습니다. 아주 감사했습니다. (나중에 다시 오셔서 책을 사 가셨습니다)
외삼촌이 책방을 떠나고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남성이 아주 수상하고 커다란 관엽식물 화분을 들고 서 있었습니다. 붉고 푸른 ‘크로톤’은 “야, 나 오늘 너 축하하려고 이 날씨에 목도리까지 하고 왔다” 같은 얼굴로 조금 불만스럽게, 그러나 사랑스럽게 안겨 있었습니다. 수상한 남성과 화분을 위해 ‘짤랑’ 책방 문을 안쪽으로 조심스럽게 열었습니다. 당연히 모르는 사람들이 올 수 있는 가게를 갖고 있으면서도, 매번 정체 모를 이들을 경계하는 이 강아지의 습성은 언제쯤 고쳐질까요? (냄새를 맡고 정체를 확인하면 곧잘 괜찮아지는 강아지니까, 걱정 말고 오셔야 합니다) 남성은 매거진 랙 옆에 화분을 둔 후, 친구가 보냈다는 말을 전해 왔습니다. 책방지기는 반사적으로 이렇게 대답했죠. “저 친구 없는데요?” 그러니까 화분을 보낼 친구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있겠죠” 대답했고, 저는 “진짜로 없어요!” 대답했습니다.
경기도 고양시에서 꽃을 주문한 이는 누구일까요? 판매처에 전화했더니 확인하고 알려준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익명일 수도 있다고요. 저는 한참 동안 전화를 기다리다 손님의 방문의 잦아든 시간에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화분의 발신자는 자신이 곧 전화를 할 테니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말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남자인가요?” “남자인 것 같아요”라는 애매한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그녀는 거짓말에 익숙지 않으면서, 수화기 건너편에서 마음이 심란한 자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사람인가 봅니다. “그냥 알려드릴까요?” “네!” 그는 저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선물, 하리’ 서비스의 신청자였습니다. 놀랍지 않나요? 그 주문 말고는 그와 책방하리 사이에 연결점이 없거든요.
‘선물, 하리’는 정말 이상한 서비스입니다. ‘선물, 하리’를 신청한 사람들은 모두 저에게 선물을 보내옵니다. 저는 돈을 받고 책을 보내는 건데 말이에요. 소미는 스탠드를, 저녁은 스피커를, 윤은 크로톤을 보냈습니다. 이 서비스, 서로에게 선물이 되어주는 서비스인 걸까요? 존재만으로도 이미 선물인 사람들이 저에게 자꾸 응원을 보냅니다. ‘편지, 하리’의 구독자인 동도 오늘 케이크를 들고 책방을 방문했습니다. 책방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요. 저는 어쩔 도리 없이 오늘도 책방하리와 함께 제 생일처럼 들뜨고 말았습니다. 중‧고등학교 친구이자 동네 친구였던 문지기 졔는, 아주 놀랍게도 오늘 저의 의상과 아주 딱 맞는 꽃다발을 들고 등장했습니다. 졔는 마치 학예회 무대에 올랐던 딸을 촬영하는 학부모처럼 저를 찍어댔습니다. 올해 벌써 세 번째 생일을 맞은 저는, 아… 그래도 나이는 안 먹은 걸로 할래요.
11시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는 책방으로 전화가 한 통 걸려 왔습니다. 책방하리의 정확한 위치를 물으셔서 설명해 드렸습니다. 도보로 오신다고 했어요. 책방하리는 전용 주차장이 없지만 도보로 이동 가능한 거리에 노상주차장과 공영주차장이 있습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면 버스 정류장도 바로 코앞이고, 주변에 택시도 많답니다. 하지만 도보로 와서 책을 들고 걷는 기분은 또 얼마나 즐거울까요? 손님 두 분은 함께 오셔서 캠핑 의자에서 음료와 조아조아떡을 드시며 독서를 하셨어요. 가져오신 쓰레기는 모두 그대로 갖고 가신 멋진 손님들이었지요(책방하리 이용수칙 참고). 독서모임에도 관심이 있으시대서 연락처를 받아 두었어요.
이때는 동과 도보 손님들만 책방에 계실 때였고, 저는 텀블러에 물을 채우기 위해 손님들께 잠시 책방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계단에서 두 번이나 넘어졌고, 손님들은 밑에서 그 소리를 다 들으셨답니다. 성대모사도 하셨어요. 샘플 편지를 받아봤던 도보 손님은 세계실수선수권대회에 대해 언급하시며, 그걸 체험(?)하신 것을 아주 재미있어 하셨답니다. 계좌번호를 찾느라 허둥대는 책방지기. 책 가격을 계산할 때 먼저 한 번 계산한 후 손님에게 더블 체크를 부탁하는 책방지기. 돈통이 없어서 일단 서랍에 넣어두는 책방지기. 잔돈이 필요할 땐 와 있던 외삼촌에게 돈을 꾸고, 책값을 받아서 다시 갚는 책방지기. 도대체… 이런 책방지기… 어떤데…? 도보 손님은 저에게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읽어 봤냐 물으셨고, 책방하리가 그곳과 느낌이 비슷하다고 하셨습니다. 기다리세요, 당신. 정란 작가의 『얼른 오세요, 책방하리입니다』를 머지않아 만나보실 수…. (웃음)
오늘은 문지기 및 손님맞이 담당 직원인 졔와 조경 담당 숙이 우연히 만난 날이기도 합니다. 둘은 아무런 연고도 없지만, 같은 회사의 직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금방 친밀해졌답니다. 졔는 자기 밑에 부하직원을 두고 임원이 되는 것이 꿈인데요, 진짜로 오고 나가는 사람 모두에게 벌떡 일어나 인사를 건네는 이 해맑은 문지기의 꿈은 이루어질까요? 책방하리는 손님들의 즐거운 꿈이 이루어지는 작고 예쁜 책방이 되면 좋겠습니다.
다른 서점에서 우연히 만난 것이 인연이 되어 책방하리를 찾아주신 미와 그의 연인(으로 추정됨), 오늘 오픈한 책방하리의 (놀랍게도 벌써) 단골손님인 영, 그녀와 함께와 나와 아주 같은 생각을 갖고 『오빠를…』을 구매해 가신 숙. 지금까지 다녀간 손님들입니다. 아침부터 떡을 배달해 준 어머니와, 그 떡을 일찍부터 주문해 준 아버지께도 깊은 감사 인사를 드립니다. 전화를 걸어와 수능 교재를 찾으신 후, 책방하리의 정체를 물어본 어느 신사분께도요. 마음으로 함께해 주신 당신께도요.
책방지기는 슬슬 다리가 저려오고 허리를 펴고 눕고 싶습니다. 집에 안쳐둔 밥이 없다는 사실은 조금 속상하지만, 조아조아떡과 케이크가 있어 걱정을 덜었습니다. 이런 때 반가운 손님이 온다면 다시 잔뜩 행복해질 것 같아요. 그러니 당신, 어서 오세요. 책방하리입니다.
추신.
동이 가족들과 먹으라고 준 케이크는 너무 배가 고파 혼자 먹으려고 개봉했는데, 케이크를 한 조각 덜자마자 놀랍게도 아버지가 오셨습니다. 저런, 책방지기가 또 문을 잠가놨었군요. 잠깐씩 2층에 다녀오면 문 여는 걸 깜빡하는 이런 책방지기… 어떤데…요? 부족한 것들을 발견했으니 잘 채워나가는 책방지기가 되겠습니다. 아버지와의 생일파티, 오늘의 즐거운 장면들은 블로그에 천천히 기록할 테니 와서 구경해 주세요! 내일 또 만나요!